지친다. 이명박 정권이 대북정책의 원칙마저 훌훌 던져버리고 김정일을 만나는 티켓 한 장 따내려고 애걸복걸하는 모습에! 김정일은 MB가 해외 순방으로 대한민국을 비운 틈을 놓치지 않고 서해 북방한계선에 대고 대포질을 펑펑 해댔다. 당연히 대통령의 입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 영해에 단 한 방이라도 떨어지면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 이런 담대한 불호령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대통령의 기본이다. 그러나? 기대에 대한 거침없는 배반, “김정일 위원장을 연내에 만날 것 같다”고? 더 기막힌 언급, “만나는 데 조건이 없어야 한다.” 무력 시위에 정상회담하자고 나오는 대한민국 대통령.
2008년 7월11일을 기억한다. 금강산 관광에 나섰다가 사살당한 주부 박왕자씨 피살 사건, 그날 MB는 국회에 나가 전면적인 대북대화를 제안했다. 이젠 지쳐 버렸다. 역시 김정일은 한반도 현대사에 기록될 전략의 대가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을 유혹해 정권 유지비를 챙기고 핵실험에 미사일 개발, 아직도 그는 배고프다. 다음 유혹의 대상은 MB. 대포 몇방에 정상회담 하자고 물러서게 만드는 김정일의 노회하고 비열한 지략. 국가 유지에 대한 혼(魂)이 빈약한 대한민국 대통령에게는 통할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가 말했다. 군주가 외부의 적에 대응하지 못하면 국민으로부터 조롱받는다고.
이미 MB는 김정일의 서울 답방 카드도 버렸다. 지난해 11월27일 ‘대통령과의 대화’, “이번 한번만은 굳이 서울이 아니어도 된다.” 그러면? 김정일이 정상회담 장소를 평양이라도 괜찮아할까? 단언컨대, 김정일은 금강산을 회담 장소로 관철시키려할 것이다. 왜? 남쪽 관광객이 실어나르는 달러박스가 중단돼 통치 비용이 파탄에 이르고 있다. 정상회담의 기본 입장료부터 단단히 챙기고, MB를 만나면 북한 퍼주기를 달리 표현한 ‘그랜드 바겐’에 관해 논의하자고 매달릴 것이다. MB는 어제 “남북정상회담에는 대가가 없다. 확고한 원칙이 없으면 성사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정일이 대가도 없는 정상회담을 왜 하겠는가? 김정일은 대한민국 국내 정국을 훤히 꿰뚫고 있다. MB가 세종시 수정 문제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면 전환용 카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세종시 물타기’임을. MB의 정상회담 발언에 민주당과 좌파 정당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그걸 노린 것, 좌파의 상용카드를 빼내어 지지도 호전의 소재로 활용하는 MB식 역발상. 중도실용론처럼. 김정일이 웃고 있을 것이다. MB의 본심이 아니라고. 대통령만 되면 김정일을 만나야 거국적인 대통령이 되는 줄 착각하는 한국 대통령의 ‘김정일 편집증’-이걸 대한민국 대통령부터 고치지 않고서는 절대 북핵 폐기를 할 수 없다.
MB는 김정일을 만난 뒤 ‘빈손’이 되어 대한민국 땅으로 돌아올 공산이 커 보인다. 물론 김정일은 선물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MB 귀국 길에 국군포로나 납북자 몇 분과 함께 휴전선을 넘게 할지도 모른다. 또 웃기는 쇼. MB는 절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김정일이 김대중과 노무현을 평가하는 것과 MB를 보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김대중 노무현은 동지이지만, MB는 다르다. 북한 땅에서 정상회담이 이뤄진다고 해도 애를 먹일 것이다. 굴욕을 느끼게 만들 것!
원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재검토해야 한다. 소련 제국을 지도상에서 지워버린 로널드 레이건의 리더십이 북핵 폐기를 실현해야 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교본이 된다. 첫째, 시류에 따라 바뀌지 않는 원칙(timeless principles). 북핵 폐기와 국군포로·납북자 송환, 지금까지 주장해온대로 두가지만 의제로 삼아라!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상회담 카드는 버려야 한다. 둘째, 두려움없는 지도력(fearless leadership). 김정일과의 기싸움에 져서는 안된다! 김정일의 서울 답방을 압박해야 한다. 서울에도 오지 못할 건강 상태이고, 그런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하는 신용불량자와 손 잡는 건 무의미하다. 그래서 북핵이 해결될 리가 없다. MB가 빈손으로 돌아오고 모욕을 당하면 대한민국의 굴욕! 대한민국의 굴욕이 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윤창중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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