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경찰청 기자실. 노무현 대통령 사돈 민경찬씨 사건을 담당한 경찰청 이상원 특수수사과장은 최기문 청장까지 함께한 기자간담회에서 “오늘(2일) 청와대로부터 전화가 와 민씨에 대한 내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과장은 천연덕스럽게 “내용을 전혀 몰라 신문 스크랩을 하며 파악 중이다. 아무 조치도 취한 게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찰청의 이같은 설명은 하루만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특수수사과는 이미 지난달 30일 청와대로부터 ‘민씨의 펀딩 과정에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라’는 내용의 ‘하명 공문’까지 받았다. 이어 31일에는 민씨에 대해 출국금지까지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과장은 3일 “지난달 30일은 ‘내사’고, 2일은 ‘수사라기보다는 본격적인 내사’”라며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기에 급급했다. 그마저 청와대가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는 말이 나오자 “그렇다면 수사에 들어갔다고 봐도 된다”며 말을 다시 바꾸었다.
현란한 말바꾸기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 대한 경찰의 수사 의지는 도대체 찾아볼 수 없었다. 경찰청 관계자들은 아예 “(이번 수사는) 잘해야 본전” “혐의가 없으면 내사 종결할 수 있다” “차라리 검찰이 가져가면 좋겠다”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벌써부터 청와대 눈치를 보아가며 적당히 사건을 마무리짓겠다는 속내로 읽힌다.
경찰의 이같은 태도는 ‘눈치없고 성역없는’ 수사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검찰의 행보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경찰은 요즘 틈만 나면 ‘경찰 수사권 독립’을 부르짖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 친인척 비리 사건 수사에 나서는 경찰의 ‘눈치보기’는 스스로 이같은 주장을 무색케 하고 있다. 경찰은 ‘살아있는 권력’과 그 주변에 대해서도 엄정한 수사잣대를 들이댈 수 있어야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음을 곱씹어야 할 때다. 경찰이 섬기고 봉사해야 할 대상은 청와대가 아니라 국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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