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404 수, 맑음
13920404 - 정몽주의 죽음, 부산시민의 죽음
1337년에 태어난 포은 정몽주는 615년 전인 오늘 개성 선죽교에서 피를 흘리고 죽었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의 세력에 의해. 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쇠퇴한 고려왕조를 지키기 위해 버틸 대로 버티다가 순국한 것이다.
정몽주인들 고려가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왕조임을 어찌 몰랐겠는가. “그래도 이성계의 조선건국에는 나 반대하노라.”라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여기에 그 순국의 가치가 있다. 이성계 세력에 이길 자신이 있다고 믿고 저항하다가 죽었다면 그 죽음은 그다지 가치가 없다고 본다. 물론 정몽주 개인 본위로 따지면 바보짓이고 손해 보는 장사다. 정몽주마저 없었다고 치자. 얼마나 “더럽게 망한 고려”가 될 것인가!
자신의 일신상의 이해득실을 떠나서 대의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집단은 경멸 받아 마땅하다고 믿는다.
615년 전의 당당한 영혼에 경의를 보낸다. 국화 999송이를 바친다.
오늘은 또 53년 전에 부산의 부산진에 큰불이 나서 134명의 착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 날이기도 하다. 이 134명 중에는 오래 살았다면 큰 도둑이 될 사람,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가 될 사람, 창녀가 될 여자, 위대한 예술가가 될 사람 등등 온갖 사람이 다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이들에게 더 이상의 삶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들의 죽음은 누구 탓일까? 본인들의 부주의 탓? 조상들이 지은 죄 값? 불을 일으킨 어떤 한 사람만의 과오 탓? 간단히 대답하기가 참 어렵다.
그러나 나는 다음과 같이 판단한다.
“적의 침략을 받는 나라의 참담한 비극이 그 나라의 국방을 소홀히 한 지도자의 죄 값으로 받는 벌이듯이 부산진 지역을 화재 무방비지역으로 방치한 그 지역 행정당국자들의 죄 값”이라고.
평소에 소방시설을 제대로 했다면 그렇게까지 많이 죽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오늘은 내가 미스 홍을 두 가지 큼직한 거짓말로 꼬신 후, 서울 종로5가에 있는 종로성당에서 미시즈 홍으로 만든 지 37년 되는 날이다. 지금 이 시간쯤 문경댁과 나는 신혼여행이랍시고 찾아간 온양온천장에서 목욕을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의 지난 세월을 대강 결산하면, 포은 정몽주처럼 거룩하게 죽지도 않았고, 부산진 화재 희생자들처럼 허무하게 죽지도 않고, 참말로 싱겁게 37년을 보냈다. 가시밭 길도 아니고 꽃길도 아닌 길을 맨발로 9만 리쯤 걸어온 기분이다.
사위가 청계산 기슭의 어느 식당에서 사 준 점심(곤드레 밥)을 문경댁과 함께 잘 얻어먹고 돌아왔다.
아멘!
2038에 쓰기를 마침.
***
정몽주(鄭夢周) : 1337～1392. 고려말의 문신, 학자. 초명 몽란(夢蘭), 몽룡(夢龍). 字 달가(達可). 호 포은(圃隱). 시호 문충(文忠). 본관 연일(延日). 영천(永川) 출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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