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딴에는 머리에 든 게 있다는 학교선생님들로부터 무슨 1급 국가기밀인 것처럼 들은 말이 생각난다.

그것은 “여러분을 포함한 우리국민은 알고 보면 모두 빚쟁이야. 나라 빚이 얼만 줄 알어? 우리나라는 전부 빚으로 사는 셈이지” 식으로 우리가 태생적으로 빚의 족쇄에 매어있는 식민지라는 식의 비아냥이었다.

그런데, ‘1급 기밀’치고는 너무 귀가 따갑도록 너무 자주 들었던 게 신기하다.

그러면서 또 한편 들었던 해괴한 1급 기밀이 있었으니, 그것은 “북한이 실은 남한보다 잘 산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거짓말이겠지’하며 넘겼는데, 왠지 그딴 소리 하는 인간들이 “북한에는 전 국민이 무상으로 건강검진을 한다. 너는 한번이라도 받아봤냐?”는 식으로 딴에는 아는 티 더럽게 내고 다니며 남 가르치듯 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러다가 성년이 될 무렵,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나쁜 표현을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 기업주들은 겉보기엔 떵떵거리지만 실은 전부 빚쟁이들”이라고 하면서, “업종을 가리지 않고 문어발식 성장을 꽤한다”는 악평이었다.

하도 자주 들었던 말이라 예사롭게 넘겼는데, 좌파정권 10년을 겪고 나니까 젊어서 배웠던 것과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을 반추하다보니 이러한 말들의 “숨은 의도”를 이제야 알 듯한 것도 재미난 일이다.

우선, “우리 국민 모두가 빚쟁이”란 소리는 비단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경기조절과 국가개발을 위하여 국채발행, 차관도입으로 빚은 다 있더라는 것이다.

그걸 우리만 있는 것처럼 떠드니까 우리가 태생적으로 뭔가 잘못된 것처럼 오해되더라는 것이다.

사실 요즈음 왠만한 가정은 대부분 아파트에 융자를 끼고 있는데, 이를 두고 자기만 빚쟁이라며 자책하던가.

융자란 게 없는 게 편한 건 맞지만, 있다고 비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산다”는 소리도 알고 보면, 우리가 대일배상금, 월남파병송금, 서독 광부-간호사 송금으로 경제개발에 매진하기 전까지 일제가 남긴 적산시설로 북한의 1인당 소득이 높았던 것은 사실이며, 이런한 상황은 1969년에야 반전되었고 그 후 중동진출과 수출드라이브의 가속화로 북한을 멀찌감치 따돌린 지 오래이며, 지금은 적산시설 마모로 인하여 북한이 굶주리는 지경인데도 아직도 1969년 이전의 부분적 사실을 가지고 사람을 농락하는 소리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도 무서운 예방주사 잘 맞고 방역차 꽁무니 따라다니면서 때 묻은 의복소독 잘하고 자랐는데, 북한의 “무상 건강검진”이 뭐 그리 대순가.

건강검진도 그 내용과 수준이 문제 아닌가.

성년이 될 무렵 들었던 우리나라 기업의 “부채”와 “문어발식 성장”도 그렇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대부분 기업은 부채를 안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은행이 돈 굴리며 사는 것이었고, 업황의 변동에 따른 위험을 예방하고자 사업다각화를 위하여 고유 업종과 다른 부문에 손대는 것은 비일비재한 사실 아닌가.

외국기업이 하면 “업종다각화”라며 찬사를 보내던데, 도대체 ‘문어발식 성장’과의 차이점을 모르겠다.

포트폴리오라고 하여 개인도 부동산, 주식, 예금, 채권 등 자산보유형태를 다양화하는데, 맨날 경기변동을 몸소 겪으면서 무슨 ‘업종전문화’라는 굴레로 기업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가짜 “1급 기밀”로 “부분적 사실의 부각에 의한 전체적 상황의 왜곡”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아마도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는 세력에 의한 선전선동의 일환이리라.

그들이 북괴집단이든 남한 내 좌익집단이든 간에 이러한 체제부정 선동에 걸려든 것을 모르는 무지한 중생들은 지금도 자기가 뭔가 대단한 것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여 남 가르치려들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야기되었을까?

바로 남에 의해 해방된 8.15 광복을 우리에 의해 성립된 건국보다 더 공론화시켰기 때문이다.

마치 막연하게 엉뚱한 6월 6일을 현충일로 쐬고는 짙게 피 맺힌 6.25날은 흐리멍텅하게 전쟁프로나 보는 것처럼 말이다.

남에 의한 해방 가지고 3세대나 지나서 왜 그리 숨은 독립투사 많은지 몰라도, 이념전쟁을 은폐하고자 실제 독립운동가들로 구성된 건국세력을 아직도 친일파로 매도하는 새빨간 선동을 퇴치하지 않고는 8.15는 앞으로 계속 “미친 병 도지는 날”(狂復節)로 작용할 것이다. <끝>

<부 추 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