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떨려서 시무(視務)할 수가 없소
도산은 겸허(謙虛)한 사람이었다.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았다.
오만 불손한 마음과 유아독존의 영웅 주의적 태도는 도산에게서 추호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두뇌와 언변과 통솔력과 용기와 덕성이 뛰어난 인격이었지만 절대 자만하거나 뽐내는 일이 없었다.
그는 앞에 나서서 떠드는 사람이 아니고 뒤에 서서 묵묵히 자기 직분을 다하는 분이었다.
그는 스스로 높이는 자가 아니고 스스로 낮추는 자였다.
수고는 자신이 하고 명예와 공은 남에게 돌리는 것이 도산의 철학이다.
사람은 자기 능력에 겨운 자리를 맡으면 실수와 잘못을 범하기 쉽다.
자기 능력 안에서 여유 있게 일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다.
다음 이야기는 도산의 겸허의 덕을 잘 나타낸다.
1919년 도산은 상해 임시정부의 노동 총판으로서 나랏일을 보았다.
모두 그를 대통령 대리의 후보자로 추천하였다.
도산은 그 자리를 끝내 사양하였다.
그러나 결국 도산을 대통령 대리로 선정하였다.
그때 도산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잠시라도 대통령 대리의 명목을 띠고는 몸이 떨려서 시무(視務)할 수가 없소.”
이것이 나라의 중책을 맡은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국사를 담당하는 자의 정신 자세다.
나같이 능력이 없고 인격이 모자라는 사람은 그처럼 높은 자리에 앉으면 송구하고 미안하고
몸이 떨려서 일을 할 수가 없다는 도산의 이 겸허한 말은 공인(公人)의 금언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국가의 기강이 흐려졌고 위정자와 공무원의 마음가짐이 땅에 떨어졌다.
나같이 부족한 자가 어떻게 그런 중책을 감당할 수가 있으랴 하는 겸허한 마음과 자세를 찾아볼 수가 없다.
자존망대(自尊妄大)의 오만불손에 빠진 자가 허다하다.
악인이 선인을 구축하는 사회적 그레샴의 법칙이 창궐한다.
그럴수록 겸허한 마음, 겸허한 사람이 아쉽다.
'안창호 평전'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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