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은 세계 인권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기념일이다. 여기서 ‘universal’은 ‘세계’ 보다는 ‘보편적’이라고 번역하는 편이 뜻을 더 분명하게 할 것이다. 모두 30개조로 구성된 이 선언은 그 가운데 29개조가 ‘모든 사람은(all human beings, everyone, no one)’으로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자유와 인권의 성(性), 연령, 신앙, 국적, 문화, 신분. 직업 등을 막론한 ‘보편성’을 밝히기 위한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보편주의(universalism)의 대척(對蹠) 가운데 하나가 상대주의(relativism)다. 상대주의는 어떤 문화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공동체의 정체성이나 집단적 공리(功利)를 위하여 희생시키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한다. 또 하나의 대척으로는 계급의 이익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반드시 희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주의가 있다.

인권은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의미

자유는 인간의 천성(天性)이다. 천성이므로 보편적일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 온 것도 아니고 기독교에서 온 것도 아니다. 어떤 문화도 사회도 인간의 천성을 짓누른 채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전통적 전제체제는 와해되었다. 현대의 문화적 상대주의와 사회주의도 이 운명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자유는 생존과 번식 등 인간의 생물적 욕구, 미(美)에 대한 추구 등 문화적 욕망, 수월(秀越, preeminence) 추구 등 사회적 욕망을 이루는데 필수적인 사회 환경과 거기에다 그 욕망을 이루는 데 필요한 개인의 능력을 합한 것이다.

이런 욕망은 전부 개인의 것이므로 자유의 기초는 개인주의다. “산중에 귀물은 머루나 다래, 인간의 귀물은 나 하나라” 라고 5박자의 슬프고도 경쾌하며 청승맞으면서도 낙관적인 강원도 아리랑의 노래 말과 같이 개인만이 인간의 귀물이다.

이런 개인주의적 자유는 엇비슷한 것을 욕망하는 개인들을 서로 충돌하게 한다. 17세기의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이런 충돌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war of all against all)`을 반드시 불러 온다고 보아 평화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자유를 철저하게 억압하는 전제 군주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홉스의 생각이 너무 비관적이었다는 것은 그 후 전개된 역사가 증명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가 귀중하면 다른 사람의 자유도 귀중하다는 것을 인류역사 전 기간을 통하여 지식의 근간으로서 축적해 오고 있었다. 그래서 서양에 먼저 시대의 햇볕이 들자 자유로운 시민 사회적 질서와 평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 시민 사회적 자유와 질서는 온 세계 인류 역사에 공전의 번영을 가져 왔다.

존 로크는 법의 지배 아래 있는 작은 정부를 생각하였고 개인은 다른 개인이나 사회와 국가로부터 자기의 생명, 재산, 자유를 보호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생명과 자유는 개인의 재산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9세기 사람인 J. S. 밀은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위해(危害)를 가하지 않는 한 무엇이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라는 이른 바 위해의 원칙(harm principle)을 선포하였다. 위해라는 것은 로크적 의미에서는 남의 것(생명, 재산, 자유)을 침해하는 것이다.

권리 또는 인권이라는 것은 자연이나 신이 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들 사이에 ‘내 것은 내 것, 네 것은 네 것, 그의 것은 그의 것’이라는 약속이 이루어지면 각자는 자기의 영역 에서는 아무 방해를 받지 않는 대신에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권이란 것은 모든 사람이 상호간 위해원칙을 엄격하게 준수하면서 누리는 그런 개인의 자유 이외의 아무것이 아니다.

그런데 공자는 이미 2천 5백 년 전에 이 위해원칙을 유교의 최고 도덕 항목으로 역설했다. 다름 아닌 인(仁)이 그것이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논어에서 “자신이 남에게서 당하고 싶어 하지 않은 짓을 남에게 행하지 않는 것(己所不欲 勿施於人)이 인(仁)이다.”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이를 공자의 인의 원칙이라고 부른다면 인은 곧 개인의 자유이고 인의 원칙은 밀의 위해 원칙과 일치하는 것이 된다.

18세기 스코틀랜드의 계몽사상가들은 국가의 역할은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는데 두어야 하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들이 무정부주의로 흐르지는 않았던 것은 국가가 없으면 국내외의 무법자들로부터 시민의 자유를 보호할 법을 집행할 주체가 없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철저하게 밀의 위해 원칙에 따라서 법이 만들어지고 그런 법이 지배하는 나라만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그러므로 위해원칙은 자유민주주의 원칙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인권과 자유민주주의는 그 뜻하는 바가 서로 일치한다.

평등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현실적 적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치 세력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그 하나는 국가 또는 치자(治者)의 전횡을 보호하기 위해 인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들의 행태는 소략(疏略)하게 권위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집단의 자유에 위해를 가하는 것이다. 이들의 노선은 소략하게 전체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전체주의에는 아리안 민족주의를 내 걸고 유대인을 박해한 히틀러의 나치즘, 사회주의를 내 걸고 포학한 독재를 실험했던 스탈린주의, 중심-주변 이론에 따른 국민의 배타적 평등 감정을 표밭으로 삼는 남미의 포퓰리즘, 군사모험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를 섞어 비빈 북한의 선군(先軍)주체사상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남한은 해방 이후 전두환 시대까지는 권위주의자가 정치를 지배하였다. 다행히 권위주의에서 벗어났으나 그것은 잠깐이었고 김영삼의 포퓰리즘 이후 본격적으로 호랑이 굴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정권은 주체사상을 핵심에 감춘 사람들이 권력창출의 기반이었다. 이들은 한마디로 친북성향의 좌파적 평등 포퓰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남한은 권위주의 시대를 겨우 빠져 나왔지만 불행하게도 지금 전체주의를 향해 급속하게 나아가고 있다. 권위주의가 셋이라면 전체주의는 열의 무게로 인민의 자유를 압제할 것이다. 이들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도용하면서 평등을 기치로 내 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기치 뒤에 이들은 자기들의 전체주의 지향성을 감추고 앞 시기의 권위주의를 공격한다.

그들이 내거는 평등민주주의는 지금 남한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최대의 현실적 적(敵)이 되어 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자들을 지나간 권위주의에 부역한 자 내지 수혜자라고 공격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지나간 권위주의는 자유를 억압하는데 지금의 전체주의 지향자들 보다 덜 가혹했기 때문에 생잔(生殘)해서 다소 번성할 수까지 있었던 것이 지금의 자유와 자유시장경제다.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려는 좌파적 개혁법들

자유, 인권, 위해원칙 등을 판별시약(判別試藥)으로 삼으면 이 남한의 현 평등민주주의 정권이 사용하는 어떤 도구가 인민의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는지 그 정체를 분명하게 판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지난 9월에 발효한 성매매 특별법부터 보자. 자기들의 직업을 국가에 의하여 빼앗긴 섹스업 종사여성들이 강력한 항의 시위를 벌이자 한 변호사가 “그러면 도둑질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도 잡아 가서는 안 되는 것인가”라고 힐문(詰問)한 것이 신문에 소개되었다.

성매매가 도둑질과 다른 것은 이 때문에 그 누구도 생명, 재산, 자유가 위해(危害) 당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도둑질은 상대방의 재산권을 위해한다는 점에서 성매매와 다르다. 성매매가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도덕심을 위하여 남에게 위해를 끼친 일 없는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이 가장 먼저 고려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한 대학교수는 국가보안법과 그 철폐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유대 율법과 그것을 고수하던 당시의 보수주의자와 같다는 레토릭을 썼다. 국가보안법이 남한의 군사정부들에 의해서 악용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것을 철폐한다는 것은 그 대학교수가 가르친 학생들 가운데 장차 어떤 범죄자가 나왔다고 해서 그 대학을 폐교하거나 그 교수를 파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남한의 국가보안법의 목적은 김정일 체제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것을 막는 것 그것 한 가지 뿐이다. 그리고 이 큰 목적은 이 법 덕분으로 잘 달성되어 왔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종교의 자유를 보호하는 역사상의 유일한 체제다. 김정일 체제는 종교를 억압하는 것을 그 체제의 사명 가운데 하나로 선포하고 있다. 예수를 죽인 로마 총독 빌라도에 마땅히 비유될 사람은 김정일이다. 그에게 알게 모르게 동조하고 있는 남한의 소위 개혁세력이야 말로 바리새교에 비유되어야 할 것이다.

사립학교법과 정기간행물법 개정은 로크의 세 가지 가운데 재산권과 자유권을 공공연히 유린해 보겠다는 기획이다. 교육과 신문은 공공성을 띤다는 이유로 모든 교육기관과 신문을 정권이 지정하는 세력에게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공공성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에 따르면 결코 개인의 권리를 밟고 그 위에 서서는 안 된다.

교육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개인의 권리이며 공공성을 이유로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의 자유는 교육하는 쪽의 자유와 교육 받는 쪽의 자유가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이 두 자유는 선택의 문제로 넘어 간다. 교육기관은 자기가 좋아하는 교사(敎師)를 선택할 수 있다. 교사는 자기가 좋아하는 교육기관을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원하는 교육과목과 내용을 선택하여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을 받는 쪽은 학부모나 학생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는 자기가 원하는 학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교육의 자유다. 더구나 교육기관이 사유재산일 때는 그 재산권을 결코 국가가 간섭할 수 없다.

언론의 자유와 관련된 정기간행물에 대한 법률 개정안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 통째로 뽑혀 나갈 수도 있는 극도로 심각한 위협이다. 언론의 자유는 국가라는 폭력적 존재에 대하여 생명, 재산, 자유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堡壘)다. 주장과 보도의 중점을 기존 언론과 차별화하고 싶은 사람은 이 손쉬운 정보화시대에 독자적인 언론을 새로 만들면 된다.

이런 대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반(反)자유민주주의 좌파 세력들이 현재 이러한 대안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고 대드는 것은 반대의 목소리를 전부 없애겠다는 악독한 언론 장악 음모다. 명백한 위해(危害) 행위다. 자신이 남에게서 당하기를 가장 싫어하는 것을 가려서 남에게 행하자는 것이다. 사기업 언론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사유재산이라는 점을 중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다 자기들이 사적(私的)으로 만들어 낸 공공성을 덧씌우려 하고 있다.

친일(親日)한 사람들을 정죄(定罪) 대상으로 하는 과거사 청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면 살아 있는 대상자는 아무도 없는 법률이 되고 말 것이다. 역사를 법률 앞에 세우려는 것으로 돈키호테가 풍차를 악의 거인이라고 보고 공격했던 것과 비슷하다. 돈키호테의 마음 한 쪽에는 미화(美化) 심리가 작동하여 남의 집 하녀를 둘씨니아 공주라고 상상하였다. 과거사법이 환상하고 있는 둘씨니아 공주는 아마도 그 진위를 알 수 없는 항일 투사인 김일성일 것이다.

이런 법들의 폐지와 제정이 남북정상회담과 연방제 성사라는 장편 연극의 플롯과 소도구의 일부라는 근심스러운 관측은 접어 두자.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현실만으로 이야기하더라도 지금 좌파는 남한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하나씩 허물고 있다. 인민의 생명, 재산, 자유에 관한 개인의 권리, 즉 인권을 해체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기업원 12/9
미래한국 2004-12-11 오후 1: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