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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조 교수, "나는 인민군이었다"

“1945년 해방후 좌, 우파의 대립과 오늘의 좌, 우파 대립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과거 좌, 우파 대립은 사회주의에 대한 추상적인 지적 호기심차원으로 갈라진 반면 최근의 대립은 어느 때 보다도 폭발적이고 긴박하고 위험스럽습니다”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난 1967년부터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1995년 정년퇴임하고 현재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한승조 교수(75)의 나라걱정은 남다르다. 그는 “저는 대학생때 인민군으로 끌려가 직접 전쟁을 치루기도 하면서 공산주의가 어떤 것인가를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 실상을 지금의 젊은이들이 알아야 합니다”라고 강조한다.

피끓는 청년시절 해방과 함께 불어 닥친 마르크스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에 깊은 고민과 방황을 경험하고 젊은이들과 한평생 대학 캠퍼스를 지키다가 최근 다시 이념의 대립으로 분열되고 있는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노교수의 안타까운 심정을 들어 본다.

10월 중순 화창한 가을 날씨의 오후. 한 교수를 서울역 앞 후암동 화원 2층의 작은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 교수의 실제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순진한 미소는 한평생 젊은 대학생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러나 온화하고 지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시국을 보는 견해는 날카로왔다.

10월 시청앞 집회는 보수가 다시 일어서는 기회

“10월 초 시청앞에서 모인 보안법 폐지 반대 집회는 이 사회의 보수가 다시 일어서는 기회가 됐습니다. 이날 내가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있었는데 지하철이 꽉 막혀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30만이 모인 것이 사실이예요.” 한 교수는 기자를 보자마자 약간 흥분되는 어조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 사회가 해방 후 좌, 우 대립의 시대와 비교, 무엇이 다를까요?

1945년 해방 후 새롭게 마르크스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이 들어왔습니다. 지적인 젊은이들에게는 호기심이 가는 새로운 이념이었죠. 당시 건국준비위원회, 인민위원회, 민청 등이 좌파 이념을 심으면서 젊은이들에게 다가섰습니다. 새국가 건설의 이미지로 신선하게 다가온 좌파 이념에 똑똑한 젊은이들이 호기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당시 보수는 뚜렷이 정립된 이론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승만씨가 보수의 기치를 들고 있었으나 남북협상을 주도하는 김구선생 등과 협상과 대화를 거절해 되레 과격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즉 당시 미. 소 양국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이념적 충돌로 인한 혼란을 같이 겪었으나 다분히 지적이고 추상적인 면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좌, 우 대립은 매우 격렬하고 긴박하고 언제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어 걱정입니다. 나라가 뻐개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벌써 사학법으로 인해 내년에 학생모집을 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학교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폭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언론법에서 한개 신문이 시장 점유율의 30%, 세 개 신문이 60%를 넘으면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시장경제를 무시하는 이성이 없는 짓입니다. 이렇게 서로 대립으로 치달으면 엄청난 폭동, 민란의 결과도 올 수 있습니다.

학교 강당에서 강제로 의용군으로 끌려가

-청년시절 실제로 인민군으로 공산주의를 겪지 않으셨습니까?

1950년 7월 고려대 정치과 3학년 재학 중에 7월 학교에서 학생들을 소집을 했습니다. 당시 집이 창신동이었는데 6월 25일 전쟁이 터진 후 학교도 궁금하고 학우들 소식도 들을 겸 학교 강당으로 나갔습니다. 약 200여명이 모였는데 갑자기 우리 모두 의용군으로 입대를 하자고 부추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강당의 양쪽 입구를 막고 모두 한꺼번에 의용군으로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집에는 알리지도 못하고 졸지에 인민군이 된 것이지요.

당시 저의 가족은 아들 3형제중 제가 막내였습니다. 위 두 형님은 이미 장가를 가서 한 집에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속으로 “3 형제중 하나는 군대에 가야지 안가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장가간 형들 보다는 내가 가는 것이 낫겠다고 여겨 순순히 인민군대에 갔습니다. 사실 도망갈 수도 없었고요. 어느 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열흘 동안 훈련을 받았습니다. 물론 총도 없었고 수준이 말이 아니었죠.

열흘 후에는 무기도 없이 경상도 낙동강 전선으로 보내졌습니다. 낮에는 유엔군 비행기 때문에 산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만 걸어갔죠. 하루 주먹밥 하나로 허기를 달래면서 고생 끝에 전선으로 갔습니다. 총도 없이 무슨 전쟁을 제대로 했겠습니까? 겨우 참호를 지키다가 포탄이 떨어지면서 모두 죽고 혼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정신없이 뛰는데 총알이 빗발쳤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총알이 빗발치는데 왜 안 맞지?”라는 생각을 하는데 역시 오른쪽 발에 총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죽을 고생을 다해 인민군 막사를 찾아갔고 저는 후송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한여름인데 부상당한 상처는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해 구더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기다시피 해서 안동까지 가서 화물기차를 타고 북으로 향했습니다. 이 화물기차가 그대로 평양까지 갔으면 아마 저는 북에서 한평생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차가 가다가 고장이 났습니다. 영등포에서 멈춘 거예요. 저는 당시 집에 연락을 못해서 안부만 전하고 북으로 갈려고 기차에서 무조건 내렸습니다. 당시 탈영병은 즉시 총살을 당하고 또 나로 인해 가족들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도망갈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부모님께 북으로 간다고 인사를 드리고 싶었죠.

새벽에 역을 절룩거리면서 빠져나왔습니다. 거리에는 아무 것도 지나다니는 것이 없었어요. 그런데 멀리서 ‘땡, 땡, 땡’ 소리가 들리면서 궤도 전차가 오는 거예요. 앞을 가로막고 무조건 올라탔어요. 그래서 청량리까지 오고 집으로 찾아가게 됐습니다. 집에서는 몇 달간 소식이 없다가 제가 나타나니 난리가 났습니다. 인사만 하고 밥 한 그릇 먹고 다시 역으로 갈려고 하는데 제대로 걸음도 못 걷겠는 거예요. 그래도 절룩거리면서 걷는데 아버지가 앞을 막는 겁니다. 미군이 인천으로 들어와 서울로 올라오고 있으니 북으로 가지 말고 숨으라는 거예요. 아버지의 만류로 서울에 남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인민군 생활을 생각하면 깜짝깜짝 놀라고 합니다.

-인민군까지 생생한 경험을 하셨는데 공산주의의 특징이 있다면?

공산주의는 겉으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잘살고 평등한 것으로 위장하지만 속은 무서운 독재, 흉악, 극악합니다. 무조건 반동보수로 몰리면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공개 처단합니다. 노동자, 농민의 계층을 이용, 무자비한 보복을 단행합니다. 위선과 거짓으로 포장, 도저히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북한 김정일과 대화를 하면 10번이면 10번 다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입니다. 도저히 이길 수가 없습니다. 또 공산주의는 인간성이 없고 인간을 수단화 시킵니다. 차별화 계급화 시켜 성분이 나쁘면 살아나지를 못합니다.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공산주의가 얼마나 위선이고 무서운 가를 요즘 젊은이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선동 선전전술에 지금 우리가 말려들어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해 막연한 기대와 호기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거의 전쟁 당시 그들의 만행을 보고 치를 떨었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겪어본 사람들은 얼마나 공산당이 무서운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사회를 좌파로 이끄는 두목 세력을 우선 없애야

-현재 우리 사회가 좌, 우파로 나누어져 반목을 하고 있습니다. 해결 방안은 없을까요?

우선 우리 사회의 좌파들을 뒤에서 조장, 이끌고 있는 두목의 세력을 없애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김정일 세력을 추출해야 합니다. 이 세력이 모든 악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이들의 위장, 위선전술에 속아 넘어가고 있습니다. 악의 근원인 김정일 세력을 추출해야 합니다.

또 좌파중에서 진정으로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사회주의와는 서로 타협하여 접근점을 찾아야 합니다. 영국도 노동당과 보수당이 서로 잘 견제하고 공존하고 있으며 미국도 공화당, 민주당이 서로 역할을 맡아 나라를 이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보수와 진보가 서로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을 해야 합니다.

특히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공산주의의 허구를 알려줘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급하게 서두르면 젊은이들이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계속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의 집에도 386 자녀들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흥분해서 타이르는 위주로 강압적으로 공산주의의 폐단을 알리려 했으나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말씨를 태연히 하고 조금씩 변화를 시키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나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미래는 젊은이들입니다. 이들에게 건전한 보수를 알리는 것을 게을리 하면 나라는 망합니다. 우리가 이들을 포용하고 진실을 알려줘야 합니다. 세계가 다 해보고 망한 공산주의가 다시 한국에서 살아나는 일은 반드시 없어야 합니다. 건전 보수에도 힘을 함께 모아야 합니다. 우리의 할 일이 이 시대에 너무 중요합니다. 저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 젊은이들이 바로 설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장장 2시간 이상 열변을 토해내는 한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생기가 돌았다. 이 시대 젊은이들을 향한 애정은 식을 줄 몰랐다. 한 교수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뒤로 하고 기자는 방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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