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삭제하시겠습니까?
집을 이사하거나 사무실 책상을 옮기는 날은 여러가지를
배우는 날이다. 특히 새
로운 시작을 위해서
는 많이 버려야 한다는 것을 새삼 배운다.
이것저것 뒤적이다 보면 참 별 게 다 있다. 십년도 더 지난
컴퓨터 입문서가 구
석에 있었는가 하면 나
중에 봐야지 하며 모아둔 빛 바랜 잡지도 있다. 의욕에 불타
잔뜩 출력해 놓은
프린트물도 있다.
Delete의 기쁨을 배운 이후 버린다고 버리지만 아직도 구석에
이렇게들 웅크리고
있었다. 추억도 있지
만 미련도 적지 않다. 마침 12월이다. 그냥 시간의 연속일
뿐이지만 12월이 지나
다시 1월이 되는게
얼마나 감사한가? 적어도 1년에 한번씩은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고 모으는 일에 매달린다. 신문을
구독하고, 책을 사고, 파일을
다운로드 받고, 홈페
이지를 출력하고 북마크한다. 그러나 정작 놓치는 것이
있다. 버리고 지우는 일
이다. 컴퓨터와 인터
넷 때문에 이 증상(?)은 더 심해졌다. 쌓아도 별로 표가
안나니 일단 모으고 본
다. 이미 있는 것을
또 찾아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대부분 다시 보지
않는다.
문제는 이렇게 쌓인 덩어리들이 단지 공간만 차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처리
하지 못한 정보는 우
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 책상위에 쌓인 서류 더미를 볼 때
- 책꽂이에서 읽어야 할 책들을 볼때
- 다이어리에서 할 일 목록을 볼 때
- 컴퓨터 속에서 자료를 찾으며 헤맬 때
우리는 불안해진다. 다음날에도 같은 모습으로 만나면
불안은 더해진다. 정보는
절대로 스스로 줄어들
지 않는다. 더 쌓일 뿐이다. 오늘은 오늘의 정보가, 내일은
내일의 정보가 더 나
타난다.
정보는 지식의 재료다. 정보는 사람 속에서 무르익어 지식이
되고 지혜가 된다.
지식은 책꽂이나 컴퓨
터에서 만들어지 않는다. 배추만 쌓아놓는다고 저절로
김치가 되겠는가?
산더미 정보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또한 혼란스럽게 한다.
선택과 집중을 방해
한다. 너무 많은 것
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 무언가 쌓이면 다른 것을 넣을 수가
없다. 우리는 선택
해야 한다. 지식과 지
혜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배우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집중하기 위해서는 지워야
한다. 흔들리지 않고
전진하려면 무시해야
한다.
그러면 잘 버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명확한 목표가 필요하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보의 아
우성을 잠재우는 최고
의 무기는 분명한 목표다.
둘째, 지식의 틀이 필요하다. 틀이 없으면 구별하지 못한다.
틀이 없으면 멀리
볼 수 없다. 언제나
눈 앞의 정보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언제나 단타에 집착하며
모든 공에 방망이를
가져간다. 작은 틀이
라도 좋다. 틀을 세우고 시작하자. 그에 맞춰 정보를
판단하자. 현장 속에서 틀
도 개선되고 탁월해 진
다.
셋째, 정보 출처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정보는
매체를 통해 온다.
책, 신문, 주위 사람
등. '무슨 말을 하나?' 이상으로 '누가 말하나?'가 중요하다.
평소 눈여겨 볼 대
상 매체(사람)을 파악
하고 우선 순위를 정해 놓아야 한다.
넷째, 정보의 가치 판단이 필요하다. 정보마다 가치가
다르다. 값싼 정보에 공간
과 마음의 자리를 주
는 것은 큰 실수다. 특히 미래 가치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이 정보는 나의 미
래와 관련이 있는
가?'라는 질문이 좋은 해답을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삭제 시한(時限)이 필요하다. 어디에나 빈틈은
있다. 여러 원칙에도
불구하고 정보는 조금
씩 쌓여간다. 자기만의 시한을 정해서 쌓인 정보를 다시
판단하고 지우는 시간을
가진다. 정보는 과정
이며 재료다. 다시 보지 않은 정보는, 지식으로 바뀌지 못한
정보는 쓸모가 없
다.
Delete 키를 누르는 소리는 쾌감을 준다. 불안이 사라지는
소리다. 지혜를 주는
소리다. 할 일 목록
을 지워갈 때도 그렇고 정보 더미들을 처리할 때도 그렇다.
모든 것을 쌓아놓고
모든 것에 매달린다
면 얼마나 불행할까? 사랑과 이별의 고통을 영원히 생생하게
기억한다면 누가 다
시 멋진 사랑에 빠지
고 결혼을 하겠는가?
세상에는 모아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있다. 이 둘을
제대로 구별하는 사람은
성공에서 멀지 않
다. 정보와 지식을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지식은 모을수록
좋다. 그러나 정보는
버릴수록 좋다. 삭제
는 자유를 준다. 미련을 못 버리면 미련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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