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투데이] 권위있는 정부의 약속
[머니투데이 류석기상하이지사장 겸 특파원?]중국인들은 숫자에 강하다. 20자리를 넘는 통장번호
가 3,4자리 간격의 하이픈(-)도 없이 죽 나열돼 있어도 읽거나 배껴쓰는데 실수하지 않는다. 일
상회화에 유난히 많이 나오는 하나부터 열까지의 숫자 발음을 바로 알아듣고 기억할 수 있다면
중국어의 기본을 익힌 것으로 평가된다. 장삼이사(張三李四), 오장육부(五臟六腑) 같은 4자성어
에도 나타나듯 중국 문화에서 숫자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독재국가의 하향식 명령 체계에서 숫자의 의미는 무시무시하다. 북한 노동당이나 히틀러 나치의
지령 몇호, 몇호니 하는 것들은 공포감부터 안기는 효과가 있다. 2차대전중 독소전쟁에서 스탈
린의 명령 227호-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는 전선 이탈자에 대한 즉결처분을 의미했다. 몇마디
구호로 압축해 목표를 단순명확히 제시하는 정치 프로파간다 수법이다.
중국 공산당과 국무원은 "농촌공작 진일보 강화와 농업 종합생산 능력 제고에 관한 공산당 중앙
과 국무원의 정책의견"을 올해 ‘1호문건’으로 채택했다고 최근 공식 발표했다.
농촌ㆍ농업ㆍ농민의 3농(農) 문제가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당정의 최대 정책과제인 1호 문건으
로 채택된 것이다. 농업문제는 1982년부터 5년 연속 1호문건으로 발표됐다가 지난해 18년만에 다
시 1호문건에 올랐다. 개혁ㆍ개방이후 동부 연안도시의 발전을 밀고온 중국이 더이상 농촌의 낙
후를 외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산물이다.
지난해 1호문건은 어찌 됐을까. 중국정부는 연초 농민 수입보전을 위해 곡물류를 포함한 농산물
가격을 1년전보다 20% 인상했다.
반면 국내외 여건은 이를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다. 먼저 성장과열을 막기위해 전반적
인 긴축기조가 불가피했다. 1호문건을 지키려면 3농(農)은 긴축의 예외여야 했다. 지난해 중국이
연착륙에 성공할 것인지, 급격한 침체로 이어질 지는 세계경제의 관심사였다.
배럴당 50달러를 넘나드는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고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이 겹치면서 소비자물
가가 한때 4개월 연속 5%를 웃돌았다. 1.4분기에 전년 동기대비 20.1% 올랐던 식량 가격은 단경
기인 8월들어 31.8%까지 폭등하기도 했다. 위안화 절상 압력도 파상공세로 되풀이됐다. 9월초 장
쩌민 중앙군사위 주석이 사임하고 후진타오가 승계하는 실질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중국정부가 올해 다시 3농정책을 강조하는 1호문건을 채택한 것은 지난 1년간의 성과에 자신감
을 가진다는 반증이다. 자오쯔양 전 총서기의 사망에 즈음해 별 소요없이 장례식을 마치게 된 배
경에는 공산당이 약속을 지킨다는 인민들의 믿음 때문일지 모른다.
출범 3년째인 우리 참여정부에도 ‘1호문건’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을까. 노무현대통령은 2003
년2월 취임사에서 ‘평화와 번영과 도약’을 약속했다. 2004년 신년사에서는 ‘민생과 경제’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고 올해 신년사는 ‘동반성장을 통한 도약’을 강조했다.
민주헌정을 채택한 우리나라에 권위주의 정부는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민주적 절차로 선출된
정부라도 ‘권위가 있는 정부’라야 한다.
한번 밝힌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정부라야 권위를 가질 수 있다.
류석기상하이지사장 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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