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정진홍 씨 밥은 먹고 다니십니까?
오로지 상대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노무현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오
2005-01-31 10:20 하재근 컬럼니스트
무려 7차에 걸친 전쟁 끝에 고려는 몽골제국/원나라에 무릎 꿇었고 고려 안에는 원나라에 접근해 권세를 휘두르는 무리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좋게 말해 친원파, 정확히 표현해 부원배(附元輩)라 한다. 고려의 전통적인 귀족들과 이들 부원배 무리들은 국가의 모든 권세, 부귀를 과점, 세세토록 대물림을 하며 그들만의 에덴을 누렸다.
그러던 고려에 공민왕이 등장한다. 공민왕은 고려에 퍼진 몽골풍을 일소하고 자주성을 회복하려 한다. 여기에 더하여 권문세족에 의해 안으로 곪아들어가고 있던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한다. 성리학으로 무장한 중소지주층 지식인들, 즉 신진사대부는 공민왕 때부터 국가일신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왕과 신진사대부는 과거제를 추진한다. 권문세족은 모든 역량을 기울여 과거제에 저항했다. 과거제를 통하면 자신들의 벼슬을 자식들에게 편하게 대물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제는 결국 정착됐고 권문세족은 사라졌다. 귀족에서 사대부로 주류가 완전히 교체된 것이다.
만약 이 사실을 신진사대부가 권문세족을 치기 위한 정략적인 목적으로 과거제를 추진했다며 과거제 실시를 단순히 그 허다한 정쟁의 한 항목쯤으로 서술하는 역사가가 있다면 그는 얼간이일 것이다. 당연히 그런 역사가는 없다. 과거제 실시는 역사에서 엄연히 ‘개혁정책’으로 기록된다. 무엇보다도 과거제는 권문세족의 특권을 신진사대부가 뺏어가지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의 룰을 확립하자는 제도다. 특권을 사이에 둔 증오의 다툼이 아니라 특권 자체를 없애고 시스템으로 가자는 역사의 진보인 것이다.
부원배들을 처단한 건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과거에서 벗어나 새나라를 건설하려면 당연히 부원배들을 쳐야 했다. 과거 청산 없인 미래도 없다.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 아닌가. 공민왕이 부원배들을 친 사실을 서술할 때 정쟁의 일환으로 쓰는 역사가가 있다면 역시 얼간이일 것이다. 물론 그런 터무니없는 얼간이 역사가는 없다. 부원배 처단은 개혁을 위한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역사엔 기록된다.
그런데 2005년 벽두에 난데없는 얼간이가 나타났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인 ‘정진홍’이라는 사람이다. 정진홍은 “노무현이 박정희 이길 수 없는 이유”라는 중앙 시평에서 박정희는 절대적 목표만 보고 간 사람인데 비해 노무현은 오로지 이길 상대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노무현의 개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얼간이’적 시각을 과시했다. 그 모든 것은 ‘정쟁’의 일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치 과거제 실시가 정쟁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권문세족은 아마도 그렇게 느꼈을 거다. “최근 신진사대부가 주장하는 과거제는 모두 우리 권문세족 죽이기를 위해 기획된 것에 불과해. 모두 정략적 음모야.”
과거제는 위에 말했듯 누구를 죽이고 그 사람 것을 뺏어 다른 사람이 가지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스템을 만드는 개혁이다. 그걸 특정인 죽이기에 불과하다고 오해하는 사람은 그 특정인의 이해에 너무 깊게 발을 들여놓고 있는 거다. 특권이 살면 공평이 죽고, 공평이 살면 특권이 죽는데 이 양자의 관계를 정쟁으로만 파악하는 것이 권문세가부터 조선일보까지 쭉 이어지는 특권층의 시각이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구호는 원칙과 상식이다. 진보진영에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극적 배려가 없는 원칙이 야속하겠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노무현은 지금 남의 것을 뺏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옛날에 임금의 아들은 무조건 정1품이었다. 재상과 같은 반열이다. 물론 봉건적 특권이다. 김영삼의 아들도 정1품이었다. 김대중의 아들도 정1품이었다. 노무현은 자기 아들에게 정1품을 주기 위해 권력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 아들이라고 자동적으로 정1품이 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권력을 쓰고 있다.
노무현의 시장주의를 이렇게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시장주의는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시스템이다, 적어도 이념적으로는. 노무현은 인간이 한 발명 중 가장 위대한 게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했다. 프랑스 대혁명은 모든 봉권적 특권을 폐지하고 사람들을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으로 만들어 시장주의사회를 가능케 한 사건이다. 물론 시장주의는 결과적으로 다시 특권을 불러오지만 처음엔 기존의 특권구조를 부수는 기제로 출발한 거다. 노무현의 정책은 일관되게 봉건적 특권구조와의 전쟁으로 나타난다.
해방이후 유일하게 제대로 된 정부였던 김대중 정권 때도 온갖 특권이 횡행했다. 테헤란 벨리 금융 브로커들 사이에선 “전라도 사람을 끼지 않으면 성사되는 일이 없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 됐다. 그 이전엔 당연히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은 황제였고 그 측근들은 세도정치가였다. 김영삼이 괘씸죄로 현대를 말려 죽을 지경까지 내몰아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다.
바로 그 현대가 이번 대선에서도 노무현에게 칼을 꽂았지만 털끝만큼의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노무현은 한나라당의 정치자금줄을 뺏어 자기가 꽤찬 것이 아니라 정치구조 자체를 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역대 정권에서 금단의 비밀이었던 대선자금을 자기가 먼저 수사받았고, 물론 정권의 개였던 검찰도 독립시켰다. 실세중의 실세여야 할 대통령 최측근들도 가장 먼저 수사받았다. 과거 대통령의 자금을 책임지고 끝까지 보호받은 이원조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구속된 안희정을 비교해 보라.
대통령 직계 그룹은 지금 유례없는 역차별을 받고 있다.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인 노사모, 국민의힘, 라디오21의 활동가들은 가중되는 경제적 어려움에 주저앉거나 속앓이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친노그룹에서 권력형 비리가 터졌다는 뉴스는커녕 그런 의혹조차 없다. 비리를 저지를 권력을 뺐은 것이 아니라 그런 일 자체가 없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공민왕이 새고려를 만들 때 무엇보다도 먼저 부원배들을 치고 과거의 흔적을 일소한 것은 개혁의 일환으로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진홍은 과거사, 일제시대사 진상규명을 특정인, 특정세력 죽이기만을 위한 정쟁으로 폄하하고 있다. 문화재에서 군사독재의 흔적을 일소하려는 노력들이 꽤나 고까웠나보다.
광화문 현판을 떼려면 아예 광화문을 부수라고 찌질대고 있다. 특권을 없애고 새시대를 열기 위한 시스템 개혁을 자기를 죽이기 위한 정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기득권층, 그리고 그 기득권층에 기생해 이름을 파는 사이비 지식인들이 이 전환기에 창궐하는 것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정진홍 눈에 비친 노무현은 바로 정진홍 자신이다. 자기가 모든 걸 정략적으로만 보니까 시스템 만들기, 역사바로잡기조차 특정인 죽이기를 위한 정략으로밖에 해석하지 못하는 거다. 중앙 시평에 실린 그의 활짝 웃는 얼굴이 안쓰럽다. 그는 고려말 부원배 무리들에 기생해 살던 식객서생들과 동류로 훗날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욕되게 기억되기에는 지나치게 화사한 표정이어서 더더욱 안쓰럽다.
지식인 정진홍 씨, 그래 밥은 먹고 다니십니까?
뱀발 : 물론 콘크리트 광화문은 언젠가 부숴야 한다. 정진홍 씨 조금만 기다리시라. 사회분위기가 무르익고 예산이 확보되면 콘크리트 광화문을 부술 날이 올 테니. 그날이 오거들랑 부디 우는 소리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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