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한 소년의 자수 >

함병선 참모장은 귀순자가 면담을 요청하여 귀순자 수용소로 소년을 찾아가 몸수색을 하고 차에 태워 데리고 왔다.

소년은 참모장실에 들어와도 주저함이 없이 의젓하게 함병선 참모장에게 인사를 하였다.

소년의 얼굴은 창백하였다. 그리고 몸은 깡말랐고 입은 옷은 다 헤졌으며 신발도 발가락이 나와 있었다. 함병선 참모장이 소년을 보니 참으로 불쌍하였다.

'소년은 나이가 몇살이지?'

'17세입니다.'

'이름은?'

'김정진입니다.'

'집은 어디지?'

'대정입니다.'

'학교는?'

'오현중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나를 만자고자 했던 이유는?'

'저는 이덕구 사령관님의 경호원이었습니다.'

이 말에 함 중령은 깜짝 놀랐다.

'아니, 자네가 경호원이라니... 그럼 자네는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아나?'

'저는 그런 것은 모릅니다. 저의 집은 가난해서 할 일이 없고 앞으로 살아가기가 막막했는데 어떤 친구가 앞으로 좋은 세상이 온다고 해서

 "그럼 좋은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하고 물으니 " 땅을 많이 가진 사람 것을 빼앗아서 우리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어 농사일을 해서 먹고살게 해주는데

이 일을 하는 분이 김달삼, 이덕구, 박헌영, 김일성 장군이 한다."고 하기에 그런 고마운 분들도 있는가 하여 저는 이덕구 사령관님을 정성껏 받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덕구 사령관님이 제주도를 완전히 해방시켜 똑같이 나누어주는 좋은 세상이 올 것 같지 않고 또 진압군 수가 많고 무기가 많아 도저히 해방군이 이길 것 같지도 않고 이제는 친구들도 다 죽고 몇명만 남았는데 먹지 못해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아 귀순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함 중령은 기가 막혔다.

'그러면 왜 나를 만나려 하였지?'

'이덕구 사령관님이 이기지 못할 바에야 그분을 위해서나 진압군을 위해서나 도민을 위해서 싸움이 빨리 끝나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모든 정보를 제공하려고 왔습니다.

특히 이덕구 사령관님만 사용하는 특별병기창, 보급창 등을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덕구 사령관님이 숨어다니는 제1아지트에서 제4 아지트까지 알려줄테니 4군데를 동시에 기습하는데 이덕구 사령관님을 죽이지 않는 조건입니다.'

김정진의 말을 듣고 있는 함 중령은 정진이 나이 어린데도 똑똑하고 그 생각함의 진솔함에 충격을 받았고 그런 아이가 좌익이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너는 왜 이덕구를 죽이지 말라고 하지?'

'이덕구 사령관님은 저를 동생같이 생각하고 참으로 저에게 잘해주었습니다. 제가 그분과 같이 죽어야 하는데 죽으면 뭣합니까?  살아야지요. 제가 한번은 사령관님께 도저히 진압군을 이길 수 없으니 같이 자수하자고 하니까 "정진아, 나는 사령관이니 그렇게는 못한다.  나는 여기서 끝까지 있다가 죽을 것이다.  정진아, 너는 오늘 귀순을 해라. 그리고 아무 말을 하지 말고 집에 가서 부모님 잘 섬겨라." 하고 등을 두들겨주며 떠나는 사령관님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저는 그 분이 살아서 그 분을 형님으로 모시고 그 분과 같이 살고 싶어요!'

말을 하는 정진이를 보고 있는 함 중령도 어느 새 눈물이 고였다.

'알았다. 내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너의 사령관을 자수하게 해서 너와 같이 살게 해주마. 내가 이 약속을 꼭 지키겠다. 그런데 그 분은 사령관이고 국군을 많이 죽여서 내 힘으로는 못하고 이승만 대통령께서 정진이의 참뜻을 이해하고 살려주면 정진이와 살 수 있을 거다. 최선을 다해 보자!'

소년은 함 중령의 대답에 만족한 듯 언제 울었느냐고 활짝 웃었다.

곧 2대대장이 왔다. 함 중령은 2대대장을 앉게 한 후 김정진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여기 있는 김정진 소년이 이덕구 경호원이었는데 이 소년이 이덕구의 병기창과 보급창 그리고 아지트를 지금 설명할테니 잘 듣고 즉시 동시에 기습하도록 하라.'

함 중령의 설명을 들은 2대대장은 김정진을 놀랍다는 듯 바라보다 김정진의 설명을 다 듣고 부대로 돌아가 2대대 장병들을 다 모아놓고 작전지시를 하였다.

진압군은 즉시 출동하여 어승생악 지하 방공호에 있는 이덕구의 병기창과 보급창을 급습하였다. 병기창을 급습한 진압군은 방공호 안에 370여정의 소총과 실탄과 많은 군수품이 있는 것에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진압군은 경찰과 국군의 군수품이 어떻게 이렇게 많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은 국군 안의 빨갱이들 짓이야! 어떻게 이렇게 많은 군수품이 있을 수 있어?  이거 장개석 군대같구먼! 이러다가 나라 망하겠어!'

장교들은 탄식하였다. 이후부터 이덕구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 재기를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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