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다닐 무렵 고대 신방과에 윤용 교수라는 양반이 있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손자래나 조카래나 하여간 그걸 대단한 프라이드로 가진 양반이었고, 당시 교수들로서는 보기 드물게 학생들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고 나아가 그에 합류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죠.

고대와 동아일보의 주인인 김씨 집안의 마름 집안 출신이라는 설이 있는 이모 전 총장이 연임을 기도했을 때, 학생들과 함께 본관 앞에 드러누웠던 열혈 교수님이셨습니다. 항의 표시로 머리를 박박 깎을 정도였으니 알쪼죠. "구로구청에서 70명이 죽었다!!"는 유인물을 당신의 돈으로 찍어 수업 시간에 배포하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구로구청 사망자 70명설은 학생운동진영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사안이라 별 호응은 얻지 못하기는 했지만요.
이런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교수님이었음에도 솔직히 말하면 학생들로부터 그렇게 존경을 받은 편은 못되었던 것 같습니다. 좋게 말하면 외로운 돈키호테였지만... 나쁘게 말하면 음... 굳이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분의 행동에 수반되어야 할 철학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어느날 통계학과 친구녀석이 절 부릅니다. 형민아 대출 좀 해 줄래? 나 2시에 미팅이거든. 맨입에는 안된다. 띠발노마 저녁 사줄께 무슨 수업이냐 윤용 교수 매스컴론, 정경대 5층 대강의실이다.... 대충 이런 수작이 오고 간 뒤 저는 난생 처음으로 윤용 교수님을 뵈러 갔지요.

학원민주화 싸움 뒤 삭발한 머리는 여지없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수업 시작..... 그 분이 강단에 오르시지는 않고 갑자기 빼곡히 들어찬 아이들에게 유인물을 나눠 주시네요. 이게 뭐야 이게 뭐야 무슨 페이퍼쯤 되나 싶어서 아이들은 우우 몰려들어서 가져갑니다. 이런 데는 동작 기차게 빠른 저는 이미 한 장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건....... 윤용 교수의 자작시였습니다.
제목 "양키야 가라~~~~~~~"

한 대 맞은 듯이 멍한 눈길로 교수님을 올려다보는데 교수님이 눈을 지그시 감으시더니 한 손을 머리에 얹으십니다. 그리고 비분강개의 어조로 시를 읽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야아아앙키야 가아아아아라.... 네 나아아라로 가아라.... 네 정액같은 코 카 콜 라와 해액무기를 가지고.....

한동안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얼음물을 끼얹은 듯한 강의실의 맨앞에서 교수님은 자아도취에 빠져서는 자작시를 암송하셨습니다. 양키는 가라~!!~~`양키는 가라~~~~ 그게 마지막 소절이었던 모양인데....

그때 한구석에서 큭큭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저 있는 쪽이었는데 절대로 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통통하고 안경쓰고 푸른색잠바 입고, 머리 안감은지 사흘째였던 운동화차림의 저와 같은 사학과 학생이었는데 하여간 절대로 저는 아닙니다. 끝내 그 녀석이 책상에 엎어지면서 웃기 시작하면서 불경스럽게도 강의실은 폭소의 도가니로 화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미제의 각을 뜨자던 아이들까지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었습니다. 어찌나 웃었는지... 그날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마 시 읽은 다음 바로 수업 종료였던가.. 하여간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나오다가 미제의 각 뜨기 좋아하는 후배가 있어 등덜미를 잡고 물었죠.
"야 딴 사람 웃어도 넌 웃으면 안되지."
"아니 형은 어떤 교수가 수업시간에 '자아아보오온가여 가라~~~~ 이이일하지 않는자는 머어억지도 마라~~~(윤용교수님 흉내내며) 하면 안웃을 거유?"
"...... (뜻밖의 반격에 침묵)"
"아무데서나 양키고홈 하면 당연히 웃지. 누가 들어주나?"

윤용 교수님은 간혹 강의실 성명서를 통해 대단한 반미의식을 선보이셨습니다. 코카콜라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는둥,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저 양반 미국서 공부할때 어지간히 데었나보다 농담을 나눌 정도였지요. 그때 성명서 중에 그런 구절이 있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미국은 만악의 근원"

저는 이 말이 윤용 교수가 창조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반미를 외치는 사람들의 입과 글에서 차용을 한 개념이라고 보지요. 이를테면 "팝송은 우리 민족 문화를 죽이기 위해 미 제국주의가 조직적으로 유포시킨 문화침략의 첨병이었다."는 식이지요. 비틀즈부터 마이클 잭슨까지 졸지에 문화침략 첨병으로 입대시키는 이 억지에 누군가 반발이라도 할라치면 "결과적으로 팝송 때문에 우리 고유의 노래문화가 사장된 건 사실 아니냐"며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는 결과론을 들고 나왔던 사람들이 있었고, 요즘도 있더군요. 범대위 집회 나가 보니.

한 스님이 계시더군요. 그 분도 시를 암송하시던데 어쩌면 옛날 윤용 교수님의 분위기를 빼어닮았던지 저 촬영하다가 쓰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입막고 웃느라 질식할 뻔 했다니까요 쩝.

반미를 외치는 것은 자유이고, 반미가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정치적 판단입니다. 존중합니다.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 후배가 한 말입니다.
"아무데서나 양키고홈 외치면 당연히 웃지.누가 들어 주나?"
누가 들어 주는 상황에서도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즉자적인, 상식적인 분노로 이룩된 촛불의 파도 앞에서 "이땅이 뉘땅인데 대사관을 못가느냐?" 따위의 어설픈 선동으로 사람들의 귀를 쑤신다면 사람들은 그 귀 막고 떠날 겁니다.

참.. 최대의 코미디가 하나 더 남아 있네요. 윤용 교수님은 지금 요즘 온갖 헛소문과 3류소설과 반 김대중 노무현 감정으로 거의 미쳐 버린 듯한 사이트, MBC PD의 양심선언 ("MBC는 전라도 향우회입니다!!라는 지랄 옆차기)부터 유명한 국정원 직원의 양심선언까지 없는게 없는, 창사랑 아해들이 존경해마지않는 사이트, '부패추방연대' (약칭 부추연)의 대표입니다.

지금도 고대 교수냐구요? 웬걸요 10년 전에 쫓겨났죠. 신방과 학생회가 체면 때문에 윤용 교수님 해직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긴 했지만 그 누구도 앞장서서 윤용 교수님의 복직을 외치진 않았답니다. 그 뒤에 국회의원 한 번 나와서 윤봉길 의사 의 후예임을 줄기차게 외쳐대다가 낙선한 뒤엔...... 소식을 모르겠더니 뜻밖에 부추장사를 하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