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만화 /1/ W. 부시와 M. 노
# 0.
백악관 집무실
부시가 창문 쪽을 향해 의자를 돌려놓고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우리 사랑스러운 큰머슴 노씨가 출입문에 엉거주춤 서 있다.
노 : 노크를 분명히 했었는데, 왜 들어오라는 말씀도 안 하시고…….
# 1.
부시 :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면서 손목 시계를 본다> 어허! 비행장까지 마중 나가려고 했는디……. 쯧, 쯧, 쯧!<신문은 치우고 계속 의자에 앉아 창문쪽을 본다> 깜빡 졸았구먼!
# 2.
노 : 어디에 앉을까요?
부시 : <의자에서 일어나 돌아서, 기지개를 켜면서> 아무 데나 앉으소, 마!
# 3.
두 사람, 소파에 마주 앉아있다. 통역 대동.
부시 : 내 시간은 금싸라기 시간 정도가 아니라 다이아몬드 시간이라오. 아무한테나 낭비하기엔 너무나 아깝소이다. 그래서 아주 간단히 말하리다.
노 : 예에, 예! 알아모시겠나이다.
# 4.
부시 : 미국 군대는 아무리 천대를 받아도 미국의 국가이익 때문에 한반도를 안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그거 사실인가요?
노 : <머리를 긁으면서> 저는 워낙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이라서 ……. 거시기, 그거 거시기하지만, 사실은 사실이지요.
# 5.
부시 : 지난 60년 동안 미국이 한국에서 얻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되나요, 아니면 그 반대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였다고 보나요? 미국이 한국의 식민지였다고 보나요? 어느 나라 사람들이 상대국에 더 많이 이주해서 산다고 보시오?
노 : <난처한 입정이라는 표정을 짓고> 그건 주판으로 덧셈 뺄셈을 해 보아야겠는데요? 저는 상고 출신이라서 주판 하나는 끝내 주지요.
# 6.
부시 : '주판'이라는 것, 그거 무어요?
노 : <두 손으로 주판알을 건드리는 흉내를 내면서> 말하자면, 동양에서만 사용하는 옛날 계산기지요.
# 7.
부시 : 그럼, 그 계산은 무척 느릴 터인즉, 나중에 하소. 우선 말해 둘 것은 당신과 당신네 국민이 원하면, 주한미군, 그거 반 년 이내에 다 철수할 생각임을 선언하는 바이오. 심지어 공군까지. 미국은 땅이 넓어서 군 기지를 구하기는 아주 쉽소이다. 막사는 천막을 치면 되니까 한 달 이내에 철수할 수도 있지요. 공군기는 태평양 지역의 각 기지에 분산시키면 되고. <잠시> 55초 이내에 대답해 주소.<돌아앉아 벽시계를 쳐다본다>
# 8.
벽시계의 초침이 50초를 가리키고 있다.
노 : 저어… 거시기, 주한미군, 그거 철수해도 좋습니다.
# 9.
부시 : <태연한 표정으로> 주한 미국기업들도 함께 철수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미국기업이 아닌 다른 나라 기업들도 철수할 것이외다. 그래도 좋소? 그 후부터는 한국 자동차들도 미국에서 팔아먹기 힘들어질 꺼요. 그래도 좋소?
노 : <비로소 놀란 표정>
10.
부시 : 가서 국민들한테 허락 받고 다시 알려 주소. 당신은 워낙 변덕이 심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니까 난 바보처럼 당신의 입이 뱉은 그 말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소. 대한민국 국회까지 이 문제를 동의해 주어야만 미군 철수는 도의상 가능할 것이오. 한때 맹방이었던 의리를 우리 미국 한쪽만이라도 지켜야지요.
# 11.
노, 부시의 소매 자락에 매달린다.
통역관들 외면한다.
# 12.
노 : <부시의 등 쪽에 기어올라 부시의 목에 팔을 감고> 부탁해요. 부시형님!
한국 경제가 파탄이 일어나는 것은 내 재산이 아니니까 걱정할 것 없지만, 김정일이 넘어오면 저는 왕초 노릇을 더 이상 못합니다. 갈 곳이 없당께로! 그랑께 주한미군은 그냥 계셔 주시는 것으로 거시기 해 주이소, 마! 아까 어리석은 제가 경솔한 말을 뱉었나이다. 오늘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 입을 내 손으로 인두질 할 것입니다.
# 13.
부시 : <빙그레 미소지으면서> 미군철수 공동선언문을 낭독하고 헤어지려고 했더니 사정이 달라졌구먼!
그런데 '인두'는 또 무어요?
# 14.
노 : <평온한 얼굴이 되어> 인두란, 요즘은 안 쓰지만 예전에 한국 아낙네들이 한복 동정이나 고름<목과 가슴을 가리키며>을 다리미질 할 때 쓴 소형 손 다리미라고 알고 계시면 되겠나이다.
# 15.
부시 : 오늘, 나, 한국의 주판과 인두를 배운 값으로 당신의 가벼운 입을 용서해 주리다.
노 : 이 은혜 절대로 잊지 않겠나이다. 늙으나 젊으나 사자는 사자요, 똑똑하나 멍청하나 다람쥐는 다람쥐로다. 아∼ 멘! //050607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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