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은 아니지만 내 아내는 영문학도이고 해외유학파다.
거기서 어학코스 마스터하고 대학원 시험 합격한 후 잠시 귀국했을 때,
내가 대학원 시켜준다고 구슬려서 결혼한 게 벌써 중년에 접어든 지도 몇 년 흘렀다.
마치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훔쳐다 숨기기보다 아예 소각한 셈이다.
내 의지가 굳어서(?) 대학원 안(?)시켜줬다.
그동안 나의 박봉과 술주정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이젠 내가 주정부릴 체력도 안 되고 해서 평온한 상태다.
내 아내는 결혼 후 유치원과 초등학생 영어 교육으로 부업을 지속하였다.
그런 아내가 요즈음 인수위에서 떠드는 영어전용교사에 대하여 얘기를 했다. 돈 좀 벌어볼려고...
그런데, 문제가 많았다. 그가 주장하길...
첫째, 테솔 시험 전형료가 무려 300만원이 넘는단다. 장난이 아니다.
일반 국민들의 생활수준과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은가.
아니면 인수위원장 자신의 인생역정에 표준을 설정한 독선은 아닌가.
둘째, 아이들에게 지식콘텐츠도 없는 상태에서 영어전용 교육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광합성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광합성에 관하여 영어로 떠들어봐야 공염불이라는 것이다.
셋째, 회화나 발음 위주로 배운 애들은 어휘가 딸려서 나중엔 한정된 범위의 똑 같은 소리 밖에 안 하더라는 것이다.
즉, 콘텐츠에 비례한 어휘를 습득하지 않으면, 언제나 길안내 수준 영어 하다가 지겨워서 때려치운다는 것이다.
어릴 때 영어신동이라는 애들 많이 봤다. 그 신동이 왜 나이를 먹어서 영어바보가 되는지 생각해보라.
물론 발음이야 좋지만, 콘텐츠의 부족으로 별로 쓰일 곳은 없더라는 것이다.
그에 따른 나의 생각도 그렇다.
첫째, 영어를 써먹지 못할 사람에게는 나중에 영어가 필요할 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적정수준만 교육시키고,
영어를 써먹고 살 사람에게는 지식 콘텐츠에 비례한 어휘와 회화 등 활용교육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를 써먹는다는 것은 업무설명, 금전계약 및 신분문제를 영어로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가령 엔지니어이면 적어도 설비나 견본품의 영문 매뉴얼, 카탈로그, 사용법은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요, 일상어휘가 아니 전문어휘도 알아야 한다.
둘째, 영어 써먹지 못할 사람에게 영어를 강요하면, 오히려 다른 분야에서 자기계발할 여지만 박탈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길안내 수준의 영어도 사용하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그 사람들에게 영어전문가 소동은 헛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한해에 수만 명 배출되는 국내대학 영문과와 영어교육과 출신자들 놔두고,
또 무슨 학위니 자격 소동인가 말이다. 그것도 돈이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고...
국내대학 영문과와 영어교육과 교육과정을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개선하면 될 일 아닌가.
그게 훨씬 싸게 먹히는 것 아닐까.
넷째, 꼭 YS집권 시절을 되돌아보는 것 같다.
그때도 "10년 이상 영어 배우고도 외국인 앞에 자기소개도 못한다."는 소리가 유행하였다. 지금과 똑같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국제화 원년이니 떠들다가, 결국 영어 사교육비만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그러고도 지금 또 이 지경이다.
그 사교육비가 지금 저출산 시대의 단초가 된 점을 상기하라.
(예전에 사학 투쟁할 때도 나는 한탄했었다. 사학보다 사교육비가 국민들에게 더 절실하게 와 닿는 부분이기에.)
구한말에 멀쩡한 군대는 봉급도 안 주면서 보이스카우트 같은 엉뚱한 별기군 만든 소동을 상기해보라.
뭣 하러 국내대학 영문과와 영어교육과 학생들 상대로 벌이면 될 일을 가지고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인 양 온천지 영어 난리를 피운단 말인가.
이젠 좀 진정하자.
필요한 사람에게 확실하게 교육시키고, 필요하지 않는 사람에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기본수준으로 선을 긋자.
미적분도 못 푸는 서울대 이공계 신입생 문제도 이슈라면 더 큰 이슈다.
자기이름 한자로 못쓰는 대학생 문제도 이슈라면 이슈다.
영어 하나만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영어교육 문제는 이제 정권만 바뀌면 무슨 큰 모순 발견한양 떠들기 좋은 단골메뉴가 되었다.
그때마다 영어실력 괜찮은 사람들은 덩달아 “주입식 암기교육” 어쩌고,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 어쩌고 했다.
영어 측면에서 자기 머리 좋은 것 자랑하는 것 밖에 안 된다.
그러나, 명심하라.
일본과 한국은 세계에서 영어를 가장 못하는 나라라는 점을.
그래도 일본이 잘 사는 것은 영어 못하는 일본은 일본어로 배운 자기분야의 콘텐츠가 우리보다 몇 배 풍부하기 대문이다.
그 사람들 한국에 와서 영어회화는 잘 안 되어도 영어간판 보고 알아서 돌아다닌다.
영어 안 되는 사람, 영어 필요 없는 사람에게 한국어로라도 자기분야 콘텐츠 개발하게 좀 놔둬라.
영어 필요한 사람에게 영어를 확실하게 교육시키는 법을 개발하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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