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妙淸의 亂’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 2004.09.06 18:27 21' / 수정 : 2004.09.06 20:56 07'
▲ 황태연 교수
아테네 태극전사들의 투혼에 고무된 국민들은 상큼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다시 일터에서 힘껏 뛰고 있다. 그러나 현 정권은 국민의 열의에 아랑곳없이 여러 방면에서 나라를 어렵게 하고 있다.
과거청산과 遷都추진 닮은꼴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00년간 유례없는 희생을 치렀던 대한국민을 ‘보신(保身)만’ 아는 사람들로 모독하며, 국민반대에도 굽히지 않고 천도를 강행하고, 남북을 싸잡아 ‘분열세력’으로 몰아 민족 정통성을 호도하더니, 이젠 사법부에 맞서 대체법률 없는 국보법 폐지를 일방 주장한다. 탄핵 법정에서 ‘호헌 의무를 다하라’는 헌재의 준엄한 경고를 받은 대통령이 다시 다른 헌법기관을 무시하고 나선 것이다. 정권 수뇌들은 위선적으로 한국을 ‘친일파 자손이 떵떵거리는’ 친미 사대주의 나라로 비하하며 정략적 과거청산에 열을 올리고, 여당 대표는 자신이 남로당 수뇌인양 박정희 소령의 자수를 ‘배신’으로 질타한다.
이를 보노라면 절로 고려 때 ‘묘청(妙淸)의 난(亂)’이 떠오른다. 1127년 북벌론과 대중영합적 도참설(圖讖說)로 왕을 현혹시켜 권력을 잡은 묘청은 개경(開京)세력을 서경(西京·평양)세력으로 교체하려는 정치 공세로서 친금(親金) 사대노선을 비난하고 ‘친금파’에 대한 과거청산과 서경 천도를 추진했다. 이에 개경세력은 대국이 소국을 섬기는 ‘사소(事小)’는 하늘을 즐겁게 하는 ‘인(仁)’이고, ‘사대(事大)’는 하늘을 두려워하는 ‘지(智)’라는 맹자의 교린국론(交隣國論)을 내세우며 묘청의 북벌론과 북진 천도를 ‘역천(逆天)’으로 탄핵하였다. 묘청은 이로써 왕의 신임을 잃었음에도 굽히지 않고 1135년 난을 일으켜 최후를 맞았다.
현 정권도 ‘지배세력 교체’를 말한다. 변방 의식에서 대한민국 정통세력을 바꾸려는 일련의 대중영합적 ‘개혁’ 기도는 국기(國基)를 바꾸는 헌정 치환 행위로서 묘청의 난과 흡사한 양상이다.
한국에는 친일파 외에도 항일투사를 낳고 품었던 ‘바다 같은 민중’이 있다. 이 중에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독립헌금증서를 간직하고 있다. 진정한 과거청산은 이 자랑스런 증서부터 보상하고 사대 ‘주의’라는 일제 개념 등 식민잔재를 극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되레 정권은 ‘친일과 항일’의 이분법으로 자랑은 덮고 치부만 부풀려 386주사파(主思派)는 가리는 부정적·당파적 과거청산으로 역주행하고, 일제의 ‘사대주의’ 개념과 ‘반미자주’의 주체사상으로 한미동맹의 지혜를 흔들어댄다.
대중영합으로 代議政治 否定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자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회의 대의로 비로소 ‘구성되는’ 것이고 의회 의사는 ‘국민의사’로 의제(擬制)된다. 그러나 자연적 떼거리를 ‘국민’으로 받드는 좌익도참설에 빠진 정권수뇌들은 피켓에 대한 순종을 ‘민주적 양심’으로, 떼거리 정치를 ‘민주정치’로 여기며, 피로 지킨 의회민주정에 대해 반란을 감행해 왔다.
탄핵정국에서 촛불과 방송 테러의 협공으로 공론장과 국회를 제압하여 총선에서 ‘재미를 본’ 여당은 “양심에 따르는” 국회의원(헌법 제45조)을 겨냥하여 특권제한·소환·기명투표 등 대중영합적 위헌 입법을 기도한다. 독립적 의원(representative)을 떼거리의 하수인(deputy)으로, 국회를 소비에트 거수기(擧手機)로 격하시키는 이 좌익도참설적 ‘개악’은 바로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반란이다. 또 시장과 소유질서를 침해하는 대중영합적 아파트·학교·신문 정책도, 국민을 거역하는 반시대적 남하 천도도, 다 난(亂)의 형국이다.
‘묘청의 난’이 제정신을 차린 왕의 진노에 1년여도 못 갔던 것처럼 이 난도 날로 커가는 국민의 원성에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시대착오와 남하 천도의 역(逆)주행이 뒤엉킨 이 난은 결국 북진 천도를 내걸었던 ‘묘청의 난’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다.
강머시기 ƒˆ은 인간만 교수로 있는 대학인줄 알았는데, 예리하게 분석해주신 황교수님의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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