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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때 유행] ‘땡시장’이 돌아왔다
폐업社, 작년同期 두배…현금확보 하려고 재고품 쏟아내

국내 경기가 심각한 침체의 늪에 빠져들면서 기업들이 창고마다 잔뜩 쌓인 재고품 처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긴축경영을 넘어 아예 사업을 접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고품 할인 판매나 파산기업 제품 정리를 중계하는 이른바 ‘땡처리 시장’이 IMF경제위기 때 못지않게 성업하고 있다.

◆ 자진 폐업하는 회사 늘어

IT 거품 붕괴 이후 적자에 시달려온 벤처캐피털 회사인 C사는 최근 드디어 폐업을 결정했다. 이 회사 주주들은 작년 말 남아 있던 현금 50여억원을 지분에 따라 나눠 가진 데 이어 조만간 몇개 벤처기업에 투자된 자금이 회수되는 대로 청산(淸算) 절차를 밝을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요즘은 한마디로 투자할 만한 환경도 안 되고 그럴 만한 기업도 없다”면서 “회사를 계속 끌고 가면서 적자를 키우느니 이쯤에서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주주들의 공통 의견”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벤처기업 I사는 지난해 가을 이후 직원이 하나도 없는 ‘껍데기’ 회사가 됐다. 아직 폐업은 안 했지만 100여명이던 직원과 생산설비를 모두 정리해 사업 명의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벤처투자회사인 소프트뱅크코리아 문규학 사장은 “올해 벤처를 포함한 중소기업들의 자진 폐업사례가 IMF위기 이후 어느 때보다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서초동에 있는 법률사무소마다 폐업이나 회사정리 절차를 묻는 기업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으며 법원에 파산(破産)을 신청하는 기업도 꾸준히 늘고 있다.

2월 말 현재 서울지방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업체수는 10여개, 화의(和議)나 법정관리까지 포함하면 35개나 된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좋은합동법률사무소’ 이웅 변호사는 “중소업체들이 경기가 더욱 나빠질 것으로 판단해 자진 폐업이나 회사정리 절차를 문의하는 경우가 잦다”고 했고, 법무법인 세종 박용석 변호사는 “올 들어 거래소 상장 기업이나 코스닥 등록 기업으로부터도 회사 정리와 관련한 문의를 여러 차례 받았다”면서 “경기 변동의 특성상 문을 닫는 기업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 다시 뜨는 ‘땡처리 시장’

지난 IMF 외환위기 당시 성황을 이뤘던 ‘땡처리 시장’이 최근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과 부산, 울산, 천안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20여개의 ‘땡시장’이 한꺼번에 열렸다. 특히 부산 지역에는 이날 두 개 시장이 동시에 열리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실제로 지방 업체 중 부도가 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고, 살아 있는 업체들은 재고 물량을 줄이고 원가에라도 현금을 건지기 위해 재고품들을 덤핑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부산 온천동 ‘스파쇼핑’에서 열리고 있는 ‘폐업, 부도, 경매상품, 완전 대처분’ 행사를 기획한 플라자기획 김태현 부장은 “작년에는 한달에 1~2회 정도 행사를 했는데, 올해 들어 10일 단위로 전국 4~5곳에서 일제히 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땡처리 시장을 기획하는 기획사는 지난 IMF 직후 100여개였지만, 지금은 중·대형 기획사 20여개가 남아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작년 하반기 이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대규모 할인 행사를 열고 있는 성진기획 박은수 사장은 “IMF를 겪은 교훈 때문에 의류회사들이 재고를 많이 쌓지 않았는데도 최근 땡 물건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경기가 심각하게 침체됐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행사장에는 재고나 부도 상품뿐만 아니라 제일모직 LG패션 등 일류 의류회사들의 봄 신상품과 버버리 아디다스 같은 외제 최신 제품들도 ‘할인 50~70%’를 내걸고 나오기도 한다. 한 제일모직 판매 직원은 “지금은 재고를 갖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빨리 현금으로 회수하고 싶은 것은 본사 방침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황의 골이 깊다 보니 땡처리 시장도 이전 같지 않다. 예전엔 3~4일 이상 손님들이 북새통을 이뤘지만, 요즘은 둘째 날만 되면 발길이 뚝 끊어진다는 것. 두원 엔터테인먼트 이현동 사장은 “방문 손님 숫자는 똑 같아도 하루 매출이 과거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면서 “불황이 땡처리 시장을 만들었지만 땡처리 시장도 불황의 영향을 심하게 받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張一鉉기자 [email protected] )

(金起弘기자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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