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 뿌리는 사나이’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3개월 동안 대북 삐라 살포를 중단한다”고 했다. 가파르게 치닫던 남북 삐라 국면에 갑자기 적막이 찾아든 느낌이다. “3개월 뒤 북에 변화가 없으면 몇 십배 더 독하게 뿌린다”고 했다. 늘 당해왔던 남에게 북한 카드가 생긴듯한 착각이 생긴다. 중앙SUNDAY가 박대표를 단독 인터뷰 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는 22일 “대북 삐라 살포를 3개월간 중단한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이날 ‘자유북한운동연합’의 거여동 사무실에서 중앙SUNDAY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21일 저녁 연합회 임원 총회에서 이런 방침이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중단 이유로 ▶북한에 정책 선택 기회를 주고 ▶북한 주장에 영향 받는 일부 국민에게 판단 시간을 제공하며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 결정에 정책적 공간과 시간적 여유를 제공한다는 등 세 가지를 꼽았다.

박 대표는 또 “3개월간 ▶박왕자씨 총격 살해 사건에 북한이 공식 사과하는지 ▶노동신문·중앙방송 등 북한 언론이 대남 비방을 중지하는지 ▶북한 당국이 탈북자를 강제 북송해 정치범 수용소에 투옥하는 행위를 중단하는지 등 세 가지를 집중해 살필 것”이라며 “전향적으로 나오면 삐라 살포를 완전 중단하겠지만 아니면 3월부터 몇십 배 더 강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함께 삐라 살포를 해 온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도 이 방향을 이해하고 있다”며 “최 대표와 함께 25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하고 이런 방침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표에 따르면 납북자가족모임은 최근 살포된 삐라 가운데 15만 장을 제작하는 형태로 공동 작업을 했다. 기독북한인연합 이민복 대표도 전단지를 살포하지만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문제 삼는 삐라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의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북 전단지 살포로 야기됐던 최근의 남북 긴장 상황은 3개월간의 휴지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게 됐다.

다음은 박 대표와의 일문일답.

-결정 과정은.
“총회에서 ‘타협하지 말자. 협회가 있는 순간까지 가자’는 주장이 대세였다. 우리는 북에서 ‘적에게 추호도 타협하지 마라. 조그만 양보도 죽음을 부른다’는 식으로 배웠다. 그러니 김정일이 추호도 양보하지 않는데 우리가 왜 그러느냐고 하더라. 설득이 쉽지 않았다.”

-끝까지 간다는 입장이 전격 바뀌었다.
“고민이 많았다. 나도 김정일의 공갈·협박에 움츠러들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북한 주민의 알 권리도 지키고, 우리 헌법에 있는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를 김정일의 협박 때문에 접어야 하느냐는 고민을 했다. 그럼에도 결정은 그렇게 했다. 특히 일부 국민이 우리 단체가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점을 살펴볼 시간을 줘야 한다고 봤다. 이 대통령도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 하지 않았나.”

-김정일의 압력에 굴복한 것 아닌가.
“아니다. 정부는 김정일의 협박에 움츠러들었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바라는 선택을 유도하기 위해 상대에게 시간적 여유,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3개월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것이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다. 그러니 정부에 시간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회원과 후원자들은 3개월 뒤 다시 봐주기를 바란다.”

-미국의 지원 단체도 동의했나.
“디펜스 포럼의 수전 숄티 대표에겐 아직 안 알렸다. 숄티는 어떤 조건이든 해야 한다는 자세다.”

-겨울엔 북풍 때문에 못 한다고 했다. 그러니 3개월 중단은 의미 없는 것 아닌가.
“겨울에도 10일 중 2~3일은 남에서 북으로 바람이 분다. 21일 삐라를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 3개월간 그런 것도 완전 중단하겠다는 뜻이다.”

-전단 살포를 중지하면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박왕자씨 살해를 사과할 것 같은가.
“삐라를 중단한다고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오진 않을 것이다. 또 다른 협박을 하고 박씨 살해도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삐라를 탓하는 것은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이고 실제 목적은 다른 데 있다. 3개월 동안 보면 흑백이 가려질 것이다.

-전단지는 책임이 없다는 뜻인가.
“삐라 때문에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개성공단이 중단될 것처럼 말한다. 사실이라면 이미 2004년에 그렇게 됐어야 했다. 지금껏 가만히 있다 뒤늦게 전단지에 책임을 덮는 것은 북한의 술책이다.”

-전단지 살포 5년을 평가하면.
“어렵고, 힘들고, 외로운 과정이었다.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 북한 정권이 공포스러워하게 됐고, 많은 국민도 삐라를 알게 됐다.”

-북이 3개 조건에서 전향적으로 안 나오면 어떻게 할 건가.
“몇십 배 더 강하게 할 것이다. 이번에는 북한 돈 5000원을 삐라에 넣으려 한다. 북한 주민 평균 월급이 3000원이니 아주 큰돈이다. 지금 넣고 있는 1달러는 암달러로 바꿔야 하니까 불편하다는 말이 있다. 북한 주민의 관심을 엄청나게 끌고 효과도 더 날 것이다. 얼마 전 국경 지역의 북한 주민과 중국 휴대전화로 통화했더니 삐라가 주로 떨어지는 황해도에서는 ‘돈 삐라’를 구하려고 난리라고 한다. 양강도·함경도 주민이 황해도로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과정에서 소문이 퍼지는 것 같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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