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한나라당 대표선거 결과에 대해 이재오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지지자들이 한나라당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외견상 박근혜지지자들과 이명박지지자들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일부에서는 한나라당 지도부가 5공세력으로 도배되었다고 혹평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보수화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기도 한다. 5.31선거에서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보내주었던 성원을 배반한 것이라고도 하고, 한나라당이 승리에 도취해 오만해졌다고도 한다.
다들 맞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오만하고, 변화할 줄을 모른다. 한나라당이 언제 국민들의 어려움을 살뜰히 살피고, 지지자들의 심정을 앞장서 이해해 준 적이 있었던가. 한나라당 의원들의 변명과 항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부분 정치꾼에 불과하다.
일부 애국심과 국민에 대한 연민을 품고 있는 의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을 용기와 열정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관록과 짬밥수에 눌려 제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보면서 대표후보들에게 닭싸움을 멈추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내 눈에는 그들의 행태가 닭싸움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런 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본질에는 차이가 없다. 모처럼 벌인 잔치에 소금을 뿌려대는 것이 마음이 내키지 않아 더 이상 거론은 하지 않았지만, 이재오나 강재섭이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들이 선거기간내내 한 일이라곤 ‘5공 수구꼴통론‘과 ’빨갱이론‘으로 상대를 흠집내고 매도하는 일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년을 한솥밥을 먹으면서도 아직도 수구꼴통과 빨갱이로 나뉘어 서로 물어뜯고 있는 정당이 바로 한나라당이다. 갈등과 이견을 용해시켜 나가야할 정치가 그들에게는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한솥밥을 먹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무슨 국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어낼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
5.31 지방선거로 표출된 국민들의 분노를 어떻게 정치라는 그릇에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고, 어떻게 당을 이끌어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창출하겠다는 비전은 눈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박근혜편이니, 이명박편이니 하는 문제로 서로 손가락질 해대는 것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나마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는 대의원 동원 권한이 있는 국회의원이나 선거구 위원장들과 끼리끼리 담합하고 표를 거래하는 일로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한나라당이 갖고 있는 한계이고, 우리 정치계가 갖고 있는 한계이다. 애초부터 다음 대선후보의 출마를 금지시킬 때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한계이기도 하다. 차떼고, 포떼고... 쫄과 병들끼리 도토리 키재기하는 대회가 아니었던가! 여기에 박근혜계 빼고, 이명박계 빼고, 민주화계 빼고, 5공계 빼고... 그러고 참신한 인재가 당대표에 선출되기를 바랐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최고위원에 선출된 분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그것이 이번 한나라당 대표 선출이 갖고 있던 한계였다. 그러니 이번 선거에 불만을 갖고 있는 분들은 처음부터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오늘 한나라당의 모습이 못내 실망스럽지만,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다음 대선에서의 승리다. 당 개혁은 그 다음의 일이다.)
5공꼴통론과 빨갱이론의 닭싸움도 중요한 변수였지만, 이번 선거의 결정적 요인은 다 알다시피 박근혜와 이명박의 선거개입이다. 아무리 본인들이 부인한다고 해도 이번 선거는 대리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아니 잘잘못을 떠나서 지극히 자연스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뒤로 물러나 선거에 뒷짐지고 있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무책임한 행위이다. 적어도 국가를 이끌어 가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있고, 비전이 있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가장 국민과 국가를 위해 좋은 선택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당연히 매사 적극적이고 책임이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 대표의 선출은 다음 대권경쟁에 아주 중요한 변수이고, 따라서 책임있는 후보라면 적극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단지 누가 좀더 표시가 났고, 누가 좀더 표시가 덜 났을 뿐이다.
이번 선거가 박근혜가 개입되어 졌느니, 이명박이 먼저 개입하여 할 수없이 개입했느니 하는 것은 푸념이고 핑계에 불과하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나 이명박이나 응당 개입할 곳에 개입했던 것이고, 개입의 결과 박근혜가 승리했다.
이러한 박근혜의 승리 역시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5.31선거에서의 대승은 누가 뭐래도 박근혜의 공이고, 그 승리후 한달만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박근혜가 승리할 것은 당연한 것이다. 더욱이 박근혜는 그 전 2년이상 당대표에 있었던 사람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명박측에서 보아도 선전했다고 볼 수 있다. 짧은 시간동안 근소한 차이까지 접근했다는 것은 앞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박근혜가 강재섭을 지원했다는 것이 약간의 의외성은 있었지만, 그것도 정치세계의 속성이 아니겠는가.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길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 또한 정치세계의 당연한 논리일 뿐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와서 섭섭하다느니 배신감을 느낀다느니 하는 푸념은 스스로의 품위를 더욱 떨어뜨리는 일일 뿐이다.
한나라당의 새 지도부는 어차피 다음 대선까지 과도적 조직에 불과하다. 또한 선거정국에 들어가게 되면 현재의 한나라당 지도부보다는 대선후보간의 협의기구에 의해 한나라당이 운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정책보다는 대선후보들의 선거공약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대선후보들이 뉴스의 초점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라면 현 한나라당 지도부는 기껏 짧으면 6개월, 올해 말의 정기국회까지가 그 수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한시적 지도부의 선출에 그 지지자들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에게도 좋지 않을 영향을 미칠 뿐이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에 강경보수적 색채가 강한 분들이 당선되었다고 한나라당이 이제와 달리 강경보수로 갈 것이라는 것도 지나친 편견이다. 아니 근본적으로 누가 강경보수세력인가? 정형근조차도 요즈음 이빨빠진 호랑이처럼 흐물대고 있는 판국에 한나라당이 강경보수로 회귀할 것이란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이번 최고위원에 진입은 실패했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개혁적 소장파들의 약진이었다. 이번 한나라당 대표선거는 오히려 그 반작용으로 균형을 맞추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음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니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이번 한나라당 대표 선거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여 한나라당이 혼란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거에서의 승패는 병가지상사와 같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이번에 가볍게 스파링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의 스파링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탈당이니 분당이니 하는 얘기가 나온다면, 앞으로 본선 경기에 가기도 전에 자멸하고 말 것이다.
새 지도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성공적인 경선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표출된 갈등을 여하히 해소시키느냐는 점이 성공적 경선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데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일단 승리한 것은 박근혜진영이지만,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이명박진영의 반발 역시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이미 대선 경쟁은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이들의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할 것이고, 한나라당 새 지도부는 이러한 갈등에 대한 끊임없는 조정과 접점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즉, 새 지도부는 스스로의 주장으로 당을 이끌어가겠다는 생각보다, 대선주자간의 중재자 역할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성공적으로 할 때 한나라당은 보수 우익의 중심으로 용광로처럼 타오를 것이고, 그렇지 못하고 갈등을 증폭해 나간다면 한나라당은 그 기능을 잃고 순식간에 식물정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오도 당무에 복귀해야 한다. 당대표로서의 개인적인 영광보다 대선의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그에게 부여된 사명이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대표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은 그의 오만이고 욕심에 불과하다. 이번에 선출된 한나라당의 새 지도부 모두가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보다 큰 목적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겠다는 자세를 갖기를 바란다.
2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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