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새 쌀값 30배 오르고 단속 나선 관리 총 맞기도
북한의 화폐개혁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11월 30일 전격 단행한 후 두 달여 동안 물가 폭등과 시장 폐쇄 조치 등을 둘러싸고 평양은 물론 지방 도시 곳곳에서 극심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게 정부 당국과 대북 민간단체의 전언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항의에 나선 주민들이 몰려 소요 사태에 가까운 상황이 발생하고, 시장 단속에 나섰던 관리가 폭행·살해당하는 일도 벌어졌다는 얘기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물가 폭등이다. 북한 당국은 화폐개혁을 내놓으면서 물가를 잡겠다고 공언했다. “2002년 7월 수준이 될 것”(조성현 조선중앙은행 책임부원 12월 4일 조선신보 인터뷰)이라고 말해 그해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오른 물가를 되돌릴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국정가격이 고시된 직후부터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다. 쌀은 12월 초 kg당 20원에서 1월 말 600원으로 30배 폭등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식량 공급이 부족한 함경도 지역을 중심으로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소문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대북 인권단체인 ‘좋은 벗들’(이사장 법륜 스님)은 소식지를 통해 “함남 단천시의 인민반마다 굶주림 때문에 일하러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사망자도 하루에 1~2명씩 나왔다”고 전했다. 또 “굶어죽는 사람이 다음으로 많은 곳이 함북 청진시”라고 말해 동해 북부지역의 식량 사정이 심각한 상태임을 나타냈다. 소식지는 “지난달 20일 인민무력부에서 후방총국(군수지원 담당) 국장급 지휘관 등이 참가한 군량미 확보회의가 열렸다”고 전했다. 북한 군부에서도 식량 조달에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가 지난해 10월 제안한 ‘옥수수 1만t 지원’ 계획을 북한이 뒤늦게 받아들인 것도 이런 내부 사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화폐개혁 조치와 함께 북한은 달러·위안화 등 외화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방북 외국인들도 외화를 북한 돈으로 바꿔 사용해야 한다. 북한 당국은 올 들어 주요 도시에서 ‘돈 장사꾼’으로 불리는 환전상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믿을 것은 달러뿐’이란 인식이 여전해 30원이던 달러 시세는 530원으로 올랐다. 시장 폐쇄 조치에 항의한 상인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탈북자 단체인 ‘NK지식인 연대’는 “양강도 혜산 농민시장에서 주민들이 총을 빼앗아 난사하는 바람에 단속에 나선 보안원이 중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정부 당국은 탈북자와 민간단체가 전하는 북한 내부 동향이 일부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화폐개혁의 시행착오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최근 “우리 인민들이 강냉이밥을 먹고 있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프다”고 말한 것은 ‘인민 생활’을 챙기고 있음을 부각시키면서 화폐개혁 후유증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풀이한다.
김정일은 1월 한 달간 모두 25차례의 공개활동을 벌였다. 8차례의 군 관련 행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광산·제철소·식료품 공장 등 경제 관련 현지지도였다. 민생 관련 경공업 제품을 담당하는 여동생 김경희 노동당 부장을 대동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화폐개혁이 성공하려면 물품 공급 확대가 필수적”이라며 “핵 포기와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지 않는 한 화폐개혁으로 심화된 경제난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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