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통령평가위원회가 지난해 말 실시한 역대 대통령 10인의 평가 결과 김대중 대통령이 자질면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반면, 도덕성에서는 꼴찌에서 세 번째로 평가됐다. 이 순위는 꼴찌가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이고 보면 헌정을 유린한 독재자와 같은 수준의 평가로, 결코 명예로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인사관리 능력 항목에서는 김 대통령에 이어 윤보선·허정·최규하 대통령이 뒷 순위를 차지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꼴찌나 다름없는 평가 결과다.
장상, 장대환 두 국무총리서리의 인사파동에서 보여 주듯 김 대통령의 인사문제는 임기 내내 구설수에 올랐고 시비 거리가 되었다. 정권출범 이후 잦았던 개각과 낙하산 인사, 그리고 편중인사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인재 풀의 빈약은 재탕 삼탕으로 구태인물을 중용하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이는 결국 김 대통령의 지근거리 인사 외에는 믿지 못한다는 왜곡된 이미지를 심기에 충분했다.
퇴임을 사흘 앞둔 시점에 김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못해 퇴임 후를 걱정하며 안타까워 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설상가상으로 임기를 일주일 남기고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는 퇴임하는 노(老)정치인의 어깨를 더 짓누르는 충격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임기중 사회안전망 구축의 실패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면 김 대통령은 임기 내내 구설수와 악재의 연속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집권 초기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벤처육성정책이 결과적으로 권력과 유착하면서 비리만 양산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른바 ‘게이트공화국’으로 비아냥 받는 권력형 비리사건은 전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진승현 게이트를 시작으로 정현준·이용호·윤태식·최규선 게이트에 이르기까지 온갖 의혹과 소문, 추악한 비리가 난무했다.
특히 대통령의 두 아들이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등 전임 YS정권과 같은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그만큼 권력 주변인사들의 도덕성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IMF를 겪으면서 직장에서 내몰리고 길거리에 나앉으며 근근이 버티고 있는 서민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박탈감과 허탈감을 주었다.
최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출국권유’ 발언은 또 한차례 ‘국민의 정부’의 대표적인 금융부패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25조원에 달하는 비자금 조성과 42조원의 분식회계의 장본인이 정권의 비호 없이 출국이 가능했겠느냐가 대체적인 시각이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대중정부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는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마저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의혹에 휘말려 구설수에 올랐다. 이 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의 진전이라는 화려한 치적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지만 이마저 빛이 바랜 처지가 됐다.
얼마전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조차 김 대통령의 불행한 종말을 예고하며 국민들로부터 조롱과 무시를 받으며 정치생명을 마무리하고 있다는 보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참으로 수치스럽고 불만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가운데 김 대통령은 동교동의 한 서민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나마 퇴임 후 기거할 사저마저 초호화 판이라는 논란을 받아왔던 터라 편안할 리 없다. 다행히 사저 바로 옆에 있는 아태재단은 학교법인으로 기부됐다지만, 연면적이 199평이나 되는 사저와 155평이 되는 부속건물이 퇴임하는 노정치인의 사저로서는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무슨 이유인지 대통령직에서 퇴임하면 너나할 것 없이 궁궐 같은 새 집을 짓는다. 정도의 차는 있을지 모르지만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 때도 그랬음은 물론이다. 결코 물려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국민들은 호화사저에서 품위유지나 하며 군림하는 전직 대통령을 원하는 게 아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처럼 무주택서민을 위한 ‘사랑의 집짓기운동’을 하며 노동현장에 참여하여 간소한 잠자리와 숙식을 해결하는 그런 친근한 전직대통령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이래저래 김 대통령의 퇴장 길은 험로를 예고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퇴임 후가 더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을 갖는다는 것이 우리 정치에서는 아직도 사치스런 일인 모양이다.
중부일보 2003년 10월 24일 조창용/인천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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