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앞에선 형제도 없는 세상에
세상을 살면서 때로는 `역설의 진리"가 가슴에 와닳을 때가 있다.
강하고 용감하기보다 부드럽고 겸손하기가 더 어렵다. 높고 화려한 자리보다 낮고 욕된 자리를
취하기가 더 어렵다. 똑똑한 사람보다 어리석은 사람 되기가 더 어렵다.
또 있다. 말을 잘 하는 것보다 더듬는 게 훨씬 어렵다.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해 정책당국을 상
대로 바른말 잘하기로 소문난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20일 제주도
에서 특별강연을 통해 말의 성찬을 벌였다.
"정부는 전지전능한 손이 아니다. 정부는 자기 자식도 마음대로 못하면서 국민들한테 호령하고
신경질만 낸다. 정부가 사냥개라면 기업은 토끼다. 배 고픈 것은 나라가 해결해야 하지만 배 아
픈 것은 시장이 해결해야 한다."
이틀 후 박용성 회장은 서울에서 다시 한번 기자들과 마주섰다. 이번에는 박 회장 자신의 형이
기도 한 박용오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겸 전 두산그룹 회장에 대해 일갈하고 나섰다.
박용오 전회장이 전날 경영권 이양에 반발해 검찰에 투서를 한 데 대한 그룹 차원의 입장과 대
응책을 밝힌 자리로, 화려한 말잔치가 이어졌다.
"이번 사태는 형제들 간 재산권 분쟁이 아니라 (박용오씨의) 두산산업개발 경영권 탈취 미수사
건이다. (박용오씨가) 언젠가 제정신이 돌아오리라 생각했는데 결국 욕심을 드러내 제동을 걸었
다. (박용오씨가) 가물에 콩 나듯 회사에 나왔는데 비자금을 언제 조사했는지 알고 싶다. (돈 앞
에 형제 없다는 말은 틀렸고) 원칙 앞에는 형제도 없다."
`역설의 진리"에 해당하는 말은 또 있다. 사랑보다 이별이 더 어렵다. 자신이 좋아하고 눈앞에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두번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 지금 떠나면 그것으로 관계가 끝나는 사람을 챙겨주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SK그
룹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SK그룹은 채권단과의 약속에 따라 최근 계열사인 SK생명을 미래에셋그룹에 팔았다. 2000년 보험
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국민생명과 한덕생명을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시켰지만 2003년 SK네트
웍스의 회계분식 사건이 터졌고, 그 마무리 작업으로 알짜배기 생보사를 팔게 됐다.
SK는 이번에 생보 자회사를 매각한 대금 중 100여억원을 떼어 1100여명의 직원에게 월급여의 50
0%에 해당하는 특별위로금을 나눠주기로 했다. 사장을 포함한 임원들에게는 이와 별도로 보상을
해줬다. 더욱이 SK는 임직원들에 대한 보상을 자신들이 직접 하지 않고 매매계약 후 2개월 안에
하도록 함으로써 새주인을 배려했다.
가진 자가 더 가지려 하고, 돈 앞에선 형제도 없는 세상에 결별하는 임직원들에 대한 SK의 소리
없는 배려는 투서와 `파일"이 난무하는 요즘 시원한 바람 같은 이야기다.
*SK생명 이야기를 끝으로 `금융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8월부터는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여러
분을 찾아 뵙겠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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