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까?//'태극기 휘날리며'와 '벤허'(1차수정)
***
뒤쪽에 세 문단을 추가하고,
후반부의 많은 부분을 삭제, 가필, 수정 함//041011//***
북한 땅에서 인민학교를 다닐 때부터 나는 자주 지각생이었다. 등교 길에 학교와 집 사이의 중간지점에 있던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사지 않으면서 도 한없이 어정댄 탓으로 등교시간이 자주 늦어져서 교실 복도 밖에 서 있다가 담임이 눈짓하시면 뒷문을 열고 들어간 날, 참 많았었다.
남들이 오래 전에 거의 다 보았다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오늘 나는 지각생답게 보았다. 우리 집 문경댁이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와서.
"태극기 휘날리며"를 대단한 걸작이라고 모두들 입을 모아 찬사를 던지고 외국에서도 상영되는 모양이다. 육박전을 실감나게 보여 준 장면이 많았던 점은 감독이나 출연자들에게 찬사를 던지고 싶다. 형제애의 우여곡절과 그 승화 과정을 적절히 조절한 스토리 전개는 시나리오 덕택이겠지만, 이 역시 잘 된 점으로 보아주고 싶다.
그러나 나는 좀 안타깝다. 인민군이 퇴각하고 국군이 진주한 어떤 마을에서 우익 마을 청년들이 흥분한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인민군 편을 들었던 마을 사람과 본의 아니게 저 쪽 편을 든 애꿎은 양민들을 구별하지 않고 마구 "좌익 쪽 부역자"로 몰아 학살하는 장면만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즉 그 반대 쪽 장면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625 때의 민간인 학살은 실제로는 좌익집단 쪽이 압도적으로 더 심했거늘!
만일 이 영화가
1. 좌익들의 우익 학살 → 2. 그 보복으로 우익들의 좌익 학살 → 3. 그 보복의 보복으로 좌익들의 우익 학살, 이렇게 엎치락뒤치락 되풀이되는 학살장면이 나왔더라면 드라마틱한 사건 전개로써 앞뒤가 꽉 짜인 "예술영화", 또는 "걸작영화"로 승격하게 되었을 것이다.
"많은 곽객을 동원한 영화"라는 모자만 아니라, "예술영화"라는 모자, 또 "걸작영화"라는 모자까지 써서, "삼관왕(三冠王)"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과연 걸작영화인가, 예술영화일까?
감독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한자숙어로 말하여 "천려일실(千慮一失)"에 해당되는 어리석음을 저지른 셈이라고 본다. 이 감독이 발전적 성찰력이 있는, 제대로 된 예술가라면, 어제 오늘쯤 우익 쪽의 학살 장면만 삽입한 것을 크게 후회할 것이다.
물론 이 감독이 북쪽 동네의 김정일 아바이 동무로부터 적당한 기회에 훈장을 탈 궁리 끝에 일부러 이렇게 일방적인 학살장면을 보여 주었다면 더 할 말이 없다.
내 체험 중심으로 좀더 이야기해 본다.
나의 고향 단천(端川)읍내 가까이의 '송골마을'에서 큰 부자로 사셨던 큰고모부는 일제시대부터 대단한 부자이셨다. 국군이 1950년 10월 하순 어느 날 ― 우리 고향 단천군의 이웃 군(郡)인 이원(利原)군 근처까지 진격했을 무렵 ― 에 "국방군이 들어오면 반동분자가 될 위험률이 아주 높은 부르주아 지주"라는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내무서원(남한의 경찰에 해당)의 도끼에 찍혀 참살 당하셨다.
또한 함경남도 도청소재지인 함흥(咸興)의 감옥에서는 국군이 진주하기 직전에 감옥의 죄수들 대다수를 반동분자라고 학살한 후 매장 작업을 하다가 급하니까 남은 시체들을 우물에 처박아 넣은 만행까지 저질렀다.
동족끼리의 상승적(相乘的) 학살비극은 남북한 여기 저기에서 수없이 많았으며, 그 비율은 좌익 쪽이 단연 더 많았다는 것은 천하가 다 인정하는 사실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살장면이 "태극기 휘날리며"의 중요 소재나 테마가 아니라고 가볍게 묵살하며, 흥행 성적이 좋았다는 이유만으로 교만에 빠졌을는지도 모르는 그 어떤 감독, 이 사람에게 내 고모부 이야기가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또 하나 더 절실한 이야기가 있다.
내 어린 시절, 가장 따르고 존경했던 셋째 숙부 ― 한의사였지만 그런 돈벌이보다는 서북청년단장으로서 빨갱이들을 잡는 성전(聖戰)의 전위대장이셨던 ― 께서는 1950년 6월 28일 밤, 서울 을지로 6가의 한약방에서 인민군에 의해 납치당하셨다. 서울에서 즉결 처분된 것인지, 북한 땅 어느 강제노동수용소까지 납치하여 오랜 세월 고통을 주다가 학살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 말로는 밝힐 수 없다. "납치, 납북"만이 확실하다.
이런 숙부를 둔 조카인 나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만든 감독을 "애꾸눈 감독"으로 명명(命名)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전하고 싶다.
대한민국 영화 감독들이 거의 다 이런 안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외눈박이 예술가들인가?
대한민국은 어디로 굴러가는 것일까?
이야기가 길어졌으므로, 요점 정리를 해 본다.
1. 나는 세계적 명화인 《벤허》를 세 번 보았다.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지면 한 번쯤 더 보고 싶다.
《태극기 휘말리며》를 만든 감독은 《벤허》 수준의 명화를 만들 자신이 있는가, 없는가?
2. 《태극기 휘날리며》에는 참혹하고 격렬한 전투장면 ― 주로 근접전, 즉 육박전 ― 은 물론, 피난민이나 전시중 민간인들의 초췌한 모습도 잘 묘사하기는 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몇 십 배 또는 몇 백 배였다고 오늘의 젊은이들은 알고 있어야 고나의 시대를 보낸 어른들에 대한 예절을 지킨 셈이 되지 않을까?
3. 《태극기 휘날리며》는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총상으로 피를 흘리는 처절한 장면이 너무 자주 나와서가 아니다. 얄팍한 감동만 주기 때문이다.
굵직하게, 강렬하게 감동을 주는 주제를 다룬 참다운 예술영화를 피땀 흘려 만들어내는 "위대한 예술가"는 이 땅의 정치풍토 때문에 영원히 안 나타날까? //04한글날 + 041011달//
134344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