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법칙… 많이 듣고 조금 말한다.
브리핑보다 급한 게 현장
#1.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이천 냉동창고 폭발사고 다음날인 지난 8일 다른 일정을 뒤로하고 참사현장을 전격 방문했다. 먼저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한 이 당선인은 곧바로 화재현장으로 달려갔다. 당초 계획에는 빈소 방문 후 이천시청에 들러 브리핑부터 들을 예정이었다. 이 당선인은 "사람이 여럿 상했는데 지금 브리핑이 급하나" 며 현장행(行)을 재촉했다.
#2. 지난 2일 이 당선인은 경제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주요 경제연구소장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당선인이 얘기한 시간은 회의 말미에 10여 분이 고작. 두 시간 동안 연구소장들 의견을 경청했다.
#3. 이 당선인은 정책공약을 생산할 때 일류국가비전위원회와 당 정책위 선대위 정책팀 등을 서로 경쟁시켰다. 같은 일을 두 사람 이상에게 경쟁시키는 인사스타일 때문에 이 당선인에게는 `2인자`가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4. 이 당선인은 지난 8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왕세자에게 서한을 보내 T-50 고등훈련기가 UAE 차세대 고등훈련기로 선정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취임도 하기 전부터 실속 챙기기 세일즈 외교에 나선 것이다.
이 당선인의 정권인수 행보가 한 달여 동안 이어지면서 `MB 스타일`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회의, 일정, 업무추진 방식 등 여러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는 다른 특색을 나타낸다.
MB스타일을 한 마디로 말하면 소위 `최고경영자(CEO)형 리더십`이다. 현대건설 회장 등 경영자 시절부터 쌓아온 업무처리 방식과 대외활동 방향이 당선인이 된 후에도 상당 부분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요약하면 △노무현 대통령과 정반대로, 말하기보다 듣기를 즐겨하는 간담회나 회의 방식 △뻔한 브리핑이나 회의보다 현장으로 달려가는 `현장 중심주의` △격식보다 실리나 내용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사고방식` △경쟁을 우선하는 `인사스타일` △휴일이나 퇴근시간도 안 가리고 일에 매달리는 `지독한 워커홀릭(workaholicㆍ일 중독)` 등이 꼽힌다.
◆ 10분 말하고 두 시간 듣는다
= 지난 2일은 이 당선인이 처음으로 경제연구소장들과 대면한 날이었다. 원래는 간담회 첫 순서로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경제현안 프레젠테이션을 하도록 계획돼 있었고 약 20분짜리 발표내용을 미리 준비했다.
그런데 KDI는 간담회가 임박해 프레젠테이션이 전격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평소 격의 없는 질의응답 형태로 회의를 진행하길 좋아하는 `MB 스타일`답게 이날도 참석한 각 연구소장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듣고 마지막에 몇 마디 하는 식으로 회의가 구성됐다. 이 당선인이 얘기를 들은 시간은 약 120분, 말한 시간은 10분이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 간부 출신인 한 인수위원은 MB 회의스타일을 `속전속결형`이라고 회고했다. 워낙 속독가인 그는 회의 보고서를 받으면 목차를 보고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 사선형으로 쓱 훑어본 뒤 바로 궁금한 점을 파고들어 질문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이 당선인 회의스타일은 노 대통령과 사뭇 대조적이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을 지낸 한 공무원은 "노 대통령은 회의에서 판단 근거와 배경, 원인, 논리, 현황과 문제점 등을 상세히 짚어보길 선호하는 타입"이라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파워포인트와 성우 더빙이 들어간 동영상 등을 십분 활용해 참석자들과 현안 배경에 대해 함께 숙지한 뒤 회의에 들어갈 때가 많다. 노 대통령은 또 본인 의견을 피력하는 데 회의시간 중 상당 부분을 할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전 브리핑을 생략하는 MB식 스타일을 두고 일부에선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당선인이 나중에 국무회의 등을 주재할 때 사전 설명 절차를 생략하다시피 하면 사전 지식이 없는 다른 참석자들은 토론에 낄 기회조차 얻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 `현장에 가봤어`
= "현장 가봤어?" 이 당선인이 CEO는 물론 서울시장 재직 시절 부하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울산 미포조선소 설립에 반대했던 부하 직원들에게 "언제 해봤어?"라고 따져물었던 고 정주영 명예회장 어투를 쏙 빼닮았다.
이 당선인은 경영자 중에서도 유독 현장을 중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무슨 일이 터지면 회의를 물리고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간다.
이 당선인은 태안 기름유출 사고현장, 이천 냉동창고 화재현장, 고 최요삼 선수 빈소 등을 모두 찾았다. 특히 당초 이 당선인 일정에 들어 있지 않았는데도 일정을 바꾸면서까지 이 현장들을 찾았다.
지난 8일 이 당선인은 이천 화재현장을 찾았을 때 일정을 바꿔 유가족을 위로한 후 화재현장으로 바로 달려갔다. 이어 마스크, 장화, 헬멧 등을 쓰고 직접 화재현장을 둘러보면서 화재 개요와 조사 현황에 대한 얘기들을 물었다.
◆ 영업까지 나서는 `실속형`
= 이 당선인은 지난 8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왕세자에게 서한을 보내 T-50 고등훈련기가 UAE 차세대 고등훈련기로 선정될 수 있도록 관심과 배려를 부탁했다. 이 당선인은 특히 서한에서 T-50 훈련기 구매가 양국 간 협력 관계를 보다 확고히 구축하는 데 도움일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아부다비 왕세자에게 방한을 요청했다. 이 당선인이 취임도 하기 전부터 세일즈에 나선 것이다. 형식보다 실속을 중시하는 `CEO형 대통령`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당선인은 지난 4일 북한 문제에 정통한 미국 유력 인사들을 만났다. 보좌진에서는 양측 간 대화를 위해 통역자를 대기시켰다. 하지만 이 당선인은 통역자를 뒤로 한 채 참석자들과 직접 영어로 인사를 나눴다. 통역 없는 대화로 상황이 부드러워지자 미국 측 참석자는 직접 농담을 건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인사는 `경쟁`이 최우선
= 이명박 당선인은 최근 "내 측근은 전부 호남 출신"이라고 했다. 그만큼 연고를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수위 김대식 위원과 김백준 자문위원 그리고 당선인 비서실 추부길 정책기획팀장 등이 호남 출신이고 최측근 정두언 의원도 부모님 고향이 호남이다.
이 당선인 핵심 측근은 "성과와 능력을 보고 사람을 쓰는 분이라 연고는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선 기준으로는 그 일에 맞는 사람이냐를 가장 먼저 보고 다음은 성과다. 또 인사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하게 결정하고 한 번 쓰면 끝까지 힘을 실어주는 편이다.
이경숙 인수위원장만 하더라도 "인수위원장 제의를 취임 직전에 받았다. 언론을 통해 짐작만 했다"고 말한다. 같은 일을 두 사람 이상에게 시켜 끝없이 경쟁을 유도하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용인술이다.
그래서 이 당선인에게는 2인자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항상 2인자가 2~3명 이상 있기 때문이다.
회의석상에서 질책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업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지 문책하는 것이 아니다. 측근들 사이에서는 "꾸지람 많이 듣는 사람이 측근이다. 질책 안 받는 사람은 눈 밖에 났다고 보면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 선대위 회의 때 정두언 의원과 곽승준 위원이 가장 많이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 설날 연휴도 하루만 쉰다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당선인 비서실은 설날 연휴 닷새 중 당일인 7일 하루만 쉬기로 잠정 결정했다.
인수위는 당초 부처 업무보고를 1월 10일까지 받겠다고 발표했다가 몇 시간 만에 일정을 이틀 앞당겨 8일까지 마무리 짓겠다고 번복했다. 토ㆍ일요일까지 업부보고를 받는 것으로 계획해 이틀을 앞당긴 것이다.
처리해야 할 일과 목표가 정해지면 밤낮 가리지 않고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게 이 당선인 스타일이다. 대선레이스가 시작된 이래 1년 반 정도 동안 하루종일 집에서 푹 쉰 날은 겨우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설진훈 기자 / 이진명 기자 / 김규식 기자 /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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