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자유게시판 > “우리가? 왜!” 사학법 재개정 놓고 우리당 딜레마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청와대가 4월에 이어 재차 논란이 되고 있는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에 대한 당의 협조를 당부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지난 23일 밤 총리공관에서 열린 ‘당정청 4인회동’에서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사법·국방 개혁 등 시급한 개혁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사학법 재개정 문제를 전향적으로 처리해달라고 열린우리당에 요청했다.

청와대가 여당에 이런 요구를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4월 29일 여야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여당이 양보하면서 국정을 포괄적으로 책임지는 행보가 필요한 때”라며 여당의 입장변화를 촉구했다.

▲ 한나라당의 사학법 재개정 요구, 청와대의 연이은 재개정 권고 등으로 코너에 몰리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비대위 (자료사진) ⓒ뉴시스

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사법·국방개혁 입법에 대해 여야가 큰 이견을 나타내지 않고 있지만,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 문제와 여타 법안처리를 연계시키고 있는 만큼 대승적인 차원에서 여당이 한발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물론 당시 열린우리당은 “사학법은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다”며 노 대통령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현 사학법은 야당에 많은 양보를 하면서 만든 것”이라며 “그나마 ‘개방형 이사제’ 하나 남았는데 이마저 내주라는 얘기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이번에도 여당은 청와대의 주문에 대해 거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만일 열린우리당이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입장을 수용해 사학법 재개정에 나설 경우 그나마 남아있던 고정 지지층마저 잃을 수 있다는 점을 그 주된 이유로 들면서 말이다.

열린우리당은 24일 밤 열린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사학법을 재개정하지 않는다”는 기존 당론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당청간 불필요한 논란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조기에 쐐기를 박고 넘어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이 명확해졌다고 해서 열린우리당의 속사정이 편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나 청와대와 함께 국정을 이끌어야 하는 여당의 입장에서 이 문제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5월 3일 취임 100일을 맞아 그동안의 소회를 밝히는 과정에서 “(여당의 양보를 주문했을 당시) 노 대통령의 고민이 얼마나 깊은지 확인하면서 나 역시 마음이 무거웠다”며 “그날 아침부터 쉽지 않은 100시간을 보냈다”고 말할 정도였다.

당시 김 원내대표는 “이후 우리 모두가 많은 고민과 토론을 해 결국 개정 사학법을 지켜냈다”고 강조하면서, 한나라당의 저지를 뚫고 4월 임시국회에서 3·30 부동산대책 후속법안 등을 통과시킨 데 대해 “노 대통령이 고민이던 민생법안도 처리해 정말 다행스럽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4개월이 더 지난 8월 말의 상황은 또 다르다. 당이 청와대의 사학법 재개정 협조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적지 않은 문제점들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동안 당청은 대통령 인사와 뉴딜행보에 대한 이견, 그리고 바다이야기 논란을 둘러싼 정부의 사과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이런 가운데 사학법 재개정 문제로 당청갈등이 재점화될 경우 당은 또다시 혼돈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여당의 입장에서는 예상되는 정기국회의 파행도 부담스럽다. 이미 한나라당은 수차례에 걸쳐 사학법의 재개정을 전제조건으로 내걸면서 국회의 발목을 잡아왔다. 이에 비춰봤을 때 9월 정기국회의 파행운영을 어렵지 않게 예상해볼 수 있다.

문제는 이번에 국회파행이 재연될 경우 열린우리당이 느껴야 하는 부담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울 것이라는 데에 있다. 상대적으로 회기가 길뿐만 아니라 바다이야기 등 정국현안과 맞물려서 여당에 대한 압박수위를 한층 더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여당 내 일각에서는 “사학법 재개정과 민생법안간 뉴딜이 필요하다”며 사학법 재개정 불가라는 종전 당론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은 2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당정청이 한몸이 돼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한 첫걸음으로 ‘사학법 재개정’과 ‘민생법안 국회통과’라는 뉴딜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며 당내 여론과 배치되는 주장을 했다.

현재 열린우리당, 특히 사학법 재개정에 대한 협상을 담당해야 할 원내대표단은 “우리가 사학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곤혹스러운 상황에 내몰리는지 모르겠다”며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웅래 열린우리당 공보부대표는 “내년에 대선정국이 펼쳐지는 만큼 올 정기국회를 일할 수 있는 마지막 국회로 봐야 한다”며 “각종 민생·개혁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다소 못마땅해도 타협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민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이어서 노 공보부대표는 “국회의 입법기능이 마비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도 “하지만 사학법 재개정은 열린우리당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고 언급, 당분간 이 부분에 대한 당 입장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기도 했다.
최한성 ([email protected]) 기자
588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