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비노’ 흐름과 맞물려 ‘답답’
친노 “사학법 양보하고 대통령 강조하는 국정 어젠다 관철하자”
비노 “민생법안 처리가 우선 … 개혁상징 사학법도 포기 못해”
사립학교법 재개정 논란의 불씨가 재점화됐다. 애초 한나라당이 던진 불씨였지만 지금은 여권 내부에서 더욱 타오를 기세다.
한나라당은 민생법안을 제외한 다른 법안들과 연계해 정기국회에서 사학법 재개정을 관철하겠다고 재확인했다. 지난 4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일부 기자들과 오찬에서 “여권에서 변화기류가 감지되는 것을 보고 김형오 원내대표에게 (사학법 재개정을) 밀어붙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한나라당이 사학법 하나로 국회의 발목을 잡은 지 열 달이 되었다. 숱한 민생법안이 표류하고 있다”며 한나라당을 비난했지만 ‘사학법 때문에 되는 일이 없는’ 답답한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학법 재개정 둘러싼 여당 내 세가지 흐름 = 사학법 재개정을 둘러싼 여당 내 흐름은 대략 세가지다.
우선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개혁의 상징이 돼 버린 ‘개정 사학법’을 다시 고치면 우리당이 설 곳이 없다며 ‘재개정 불가’를 외치는 쪽이 한 흐름이다.
여기에 사학법을 양보하는 대신 열린우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각종 민생법안과 사법·국방개혁법안 등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어젠다를 이번 정기국회에 완성하자는 쪽이 대립하고 있다. 또 한나라당의 논리대로 사학의 자율성을 해치는 개정 사학법은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곁가지로 붙어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하면 사학법 재개정 논란은 여당내부를 친노(親盧)와 비노(非盧)로 나눠 놓는다. 사학법 재개정에 긍정적인 친노 의원들은 이번 정기국회의 방점을 사법·국방개혁 법안 등 노 대통령의 국정 어젠다에 두고 있다.
‘여당이 양보해 국정을 포괄적으로 책임지는 행보가 필요하다’고 줄곧 주장한 노 대통령의 인식과 맞닿아 있다. 맨 먼저 총대를 멘 것은 김혁규 의원. 김 의원은 정기국회 시작 전인 지난달 2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한 첫 걸음으로 당·정·청이 한 몸이 되어 사학법 개정과 민생법안 국회통과란 ‘뉴딜’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친노직계 그룹의 한 의원은 “사학법 재개정 문제는 정치적인 선택이 필요한 부분이다. (사학법 재개정에 목숨 걸었던) 박근혜 전 대표를 한번 키워주자”며 사학법 재개정 주장을 우회적으로 피력했다.
‘노 대통령의 어젠다’보다 민생법안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의원들은 사학법 재개정 절대불가를 외치거나 소극적이다. 이들은 정기국회 정국의 중심에 열린우리당이 서야지 노 대통령이 흐름을 주도해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개방형 이사제를 포기하는 사학법 재개정은 절대 안 된다는 게 당내 전반적인 분위기”라며 “대통령도 당 분위기를 뻔히 알면서 사학법 양보를 자꾸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교육위 소속의 한 초선의원은 “로스쿨 등 노 대통령의 사법개혁안이 과연 사학법을 포기할 정도의 개혁 법안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개인적으로 노 대통령의 국정 어젠다를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과제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학법 재개정 불가’ 입장을 피력하는 의원 중 ‘강경파’로 불리는 정봉주 의원은 “개방형 이사제를 포기하는 수준의 사학법 재개정 안에 찬성하는 의원 수는 20~30명에 불과하다”며 “사학법을 고치고 싶으면 의총을 열어 당론변경을 시도하라”고 쏘아붙였다.
◆선택 폭 좁은 여당 신세 = “한나라당의 결재가 있어야 겨우 법안 몇 개 통과시킬 수 있다”는 김한길 원내대표의 자조 섞인 상황인식에서 드러나듯, 사학법 재개정을 두고 열린우리당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그리 넓지 않다.
관건은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을 어느 법안까지 연계하느냐는 것이다. 여당 내부가 사학법 재개정에 합의한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사법·국방개혁법안 등을 포함, 여당의 모든 법안을 통과시켜줄 가능성도 크지 않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4일 기자들과 오찬 자리에서 “사학법 재개정 문제를 다른 법안과 연계하겠다고 강조하면 열린우리당 쪽에서 사학법 처리해 줄테니 로스쿨법안 양보해 달라는 ‘역 연계전략’으로 나올 수 있는 것 아니냐. 사학법 양보한다고 반드시 다른 법안 통과시켜주겠다는 말은 하기 어렵다”며 여당의 선택을 더욱 어렵게 하는 발언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도의 전략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릴 여당 지도부가 당내 복잡한 속내차이를 녹여낼 방안을 찾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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