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봉으로 여기는 북한의 안하무인(眼下無人)적 행태가 도를 넘어선 느낌이다. 자유아시아 방송의 12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3일 중국 심양에서 남한의 NGO 즉 비정부 기구 민간단체 대표자들을 불러 위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새해에 이들 단체들이 북한에 지원할 규모를 일방적으로 통고했다고 한다.
자유아시아 방송에 따르면,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대한민국 통일부에 등록된 NGO 즉 비정부 기구 단체 대표들과 북측의 아태평화위원회 관계자, 민족 화해협의회 참사관들이 중국 심양의 칠보산 호텔에서 만났다고 한다. 회의에 참가했던 한 남측 관계자는 북측을 대표한 민화협과 아태평화위원회 관계자들이 마치 면접을 보는 것처럼 고압적인 자세로 남측 관계자들에게 질문했고, 새해 대북 지원 규모와 지원 규모의 증액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북측 관계자들은 남측 단체에서 내년에 북측에 얼마를 지원할 것인지를 추궁하듯 따졌고, 남측 관계자가 북측의 탁아소 시설 보완을 위해 새해에 3억원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하자 “그 정도 액수로 때깔이나 나겠냐”고 말하며 100만 달러(10억원) 이상을 지원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북측 관계자들은 또 새해부터는 남측의 민간기구들이 지원할 대상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고, 북측이 지정하는 시설에 요구하는 액수를 지원하도록 일방적으로 통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남북 면담에는 남한의 최대 대북지원 NGO 단체인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본부와 한민족 복지재단은 물론 그 산하의 각 단체 대표들도 개별적으로 참가했다고 한다. 이번 남북 면담을 주도한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는 통일 전선부의 통제를 받는 기관이다. 통전부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서울을 방문해 여러 가지 억측을 자아냈던 김양건 부장이 이끄는, 대한민국의 파괴를 획책하는 김정일의 직할 조직이다.
문제는, 북한 측의 이러한 태도가 지난 10년 간 끝없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2006년 7월 중순에 열렸던 남북 장관급 회담이다. 7월 13일 오후 양측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회담이 결렬되었는데, 북한 측 대표였던 권호웅이 회담결렬의 책임 당사자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先軍)정치가 남측의 안전도 도모해 주고, 남측의 광범위한 대중이 선군의 덕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선군정치는 모든 것을 군사력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김 위원장의 정치 구호로,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민생보다 군사력 증강 우선 등이 선군정치에 따른 것이다. 북한이 장관급회담에서 선군정치를 언급한 적은 있지만 남한 국민이 선군정치의 덕을 보고 있다고 발언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북측은 또 8·15 평양 행사 때 남측 대표단이 ‘성지(聖地)’를 방문하는 것을 제한하지 말라고 했다. 북한의 성지란 김일성 주석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혁명열사릉 등을 말하는 것이다. 북측은 이어 내년부터 한미합동군사연습 중지와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면서 쌀 50만ｔ 차관 제공과 경공업 원자재 제공을 요구했다.
이러한 발언의 진의는 무엇인가. 딱 잘라 말해 ‘대한민국이 번영하는 것은 북한이 핵무기로 대한민국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값을 쳐내라’는 것이다. 조직폭력배들이 상인들을 위협하여 이른바 ‘보호료’를 갈취하는 정신자세와 하등 다를 일이 없는 것이다.
이번 NGO 협박사건은 대한민국 정부를 협박하던 북한이 이제 민간단체에게까지 협박대상을 확대했다는 분명한 신호다. 그 다음은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될 터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북한의 적대행위를 우호적인 협상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발상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무력시위를 벌인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이상의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지원을 하더라도 상호주의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20년간 남북대화를 이끈 송영대 전 통일부 차관은 2006년 7월 당시 “권단장이 남측에 와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우리 정부를 우습게 알고 희롱한 처사이자 국민을 무시한 행위”라며 “북측이 회담장을 자신들의 선전장으로 만들면서 남한의 국론을 친북(親北)과 반북(反北)으로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말하고, “회담장에서 그런 주장을 듣고 있는 정부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대남관계는 김정일이 직접 담당하기 때문에 권호웅의 말은 김정일의 말이나 다름없다”며 “군사적 위협을 통해 남측을 미국과 갈라놓고 돈이나 뜯어내려는 행위를 민족 전체의 안보를 위한 것이라 말하는 것은 명백한 기만행위”라고 논평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점잖게 상대를 나무라고, 그래도 상대가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면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한다. 국제정치는 냉혹한 게임이다. 명백한 모욕을 당하고도 여전히 굴종하는 모습을 보이는 나라를 제대로 대접해 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북한 당국자들은 자신들이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데도 여전히 모든 요구사항을 수용하는 대한민국 단체들을 보고, 다음에는 거의 틀림없이 지금보다 강요의 수위를 높일 것이다. 민간단체라고는 하지만, 그들이 발행한 약속어음은 결국 고스란히 대한민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 아래서도 북한의 강압적 요구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고 믿는 NGO가 있다면, 자기 개인 재산부터 북한에 같다주고 민족화합이든 봉사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바란다. 대한민국 국민은, 북한 당국자가 마음 놓고 모욕해도 괜찮은 존재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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