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부총리급 인사가 '천안함 사건은 北 소행'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게 된 경위

중국의 쉬자루(許嘉璐) 전 전인대 부위원장(현 중화사회구조기금회 이사장)이 '천안함 사건은 北 소행'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시간과 장소는 2010년 8월31일 오전 서울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였다.

한국의 21세기 한중교류협회(이사장 김한규)와 중국의 인민외교학회(회장 楊文昌)이 공동 주최한 '제10차 한중 지도자포럼'의 개막식에서 쉬 이사장이 축사를 하러 나섰다. 포럼에 참석한 3~4명의 한국측 참석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말쑥한 양복 차림의 쉬 이사장은 먼저 한중수교 18주년과 한중포럼 10주년을 축하한 뒤, 경색된 한반도 정세를 타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천안함 사태'에 대해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북한의 천안함 사건에 대해 중국도 우려를 금치못하고 있으며, 이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진심이다. 기원전 5세기경 나온 고사에 따르면, 성문에 불이 나면 그 불을 끄기 위해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 물고기가 죽게된다'는 '지어지앙(池魚之殃)’이란 고사가 있다. 한반도에 문제가 발생하면 가까운 이웃인 중국도 영향을 받게된다. 유엔 안보리가 남북 양측의 대화를 촉구했듯이, 중국은 남북한이 냉정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 천안함 사건으로 야기된 긴장국면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6자회담을 재개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정전협정으로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이것은 또한 동북하의 평화와 안정발전의 기초이다. 중국의 이러한 임장은 역사를 통해 증명될 것이다. 중국의 화(和/조화)는 5000년 문화의 정수이다. 한중이 교류를 통해 동북아 평화안정을 수호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쉬 이사장은 중국에서 유명한 훈고학자로, 북경사범대 부총장과 북경시 정협부주석을 거쳐 전국인민대표자대회(全人大·한국의 국회) 부위원장(부총리급·2000~2008년)을 지낸 고위급 인사이다. 중국에서는 현직에서 퇴임하더라도 국가의 연금지급과 대외활동 측면에서 현직과 같은 부총리급 대우를 받는다. 이날 포럼 행사에는 중국 인민외교학회의 양원창 회장이 중국측 단장으로 참석했으나, 그는 외교부 부부장(차관)을 지낸 인물이기 때문에 행사 내내 쉬자루 이사장이 상석에 앉았다고 한다.

쉬 이사장이 말한 ‘북한의 천안함 사건’란 표현에 대해 포럼에 참석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안인해 교수는 “‘북한이 저지른 천안함 사건’이란 뜻으로 이해했다”며 쉬 이사장의 축사 후 그에게 “그같은 발언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측 책임을 중국도 인정하는 것이냐”고 물었으나 쉬 이사장은 외교적 파장을 우려한 듯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국내의 한 국책연구소 책임자도 쉬 이사장의 발언을 듣고 특이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전 토론에서 안 교수가 이 문제를 쉬 이사장에게 질문했을 때, 쉬 이사장은 통역을 통해 질문 내용을 듣고 옆에 앉은 양원창 회장과 귀엣말을 주고받으며 빙긋이 웃음을 지었으나 안 교수의 질문에 즉답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포럼 참석자들은 쉬 이사장이 중국 고위층에서만 공유되는 천안함 사태의 진상에 관한 고급정보를 통해 북한의 짓임을 알고 있던 상황에서 축사 도중 자기도 모르게 그 내용을 발설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중국은 지난 5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방한 기간 중 “중국은 책임있는 국가로서 누구도 비호하지 않을 것이며, 사태의 시시비비를 가려 정의를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그후 천안함 국제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유엔 안보리에서도 북한을 감싸는 의장성명에 찬성해, 한국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날 포럼에서는 또 중국이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는 외교노선을 택한 것으로 보고 우려하고 있다는 발언도 나왔다.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의 치바오량(戚保良) 한반도연구실 주임은 “한반도가 분열돼 있고 대국에 포위돼 있다는 점에서 중국은 그동안 한미동맹의 유지를 이해하고, 한미동맹을 한중관계 발전의 장애물로 여기지 않았으나, 최근 한국은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 미국에 의존하여 중국을 견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전세계가 다변화되는 속에서 한국이 냉전적 사고를 벗어나 개방적이고 서로 윈윈하는 새로운 사고의 외교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현대국제관계연구원은 중국 국무원 산하의 최대 외교문제 싱크탱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