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거의 모든 고교가 내신성적 부풀리기를 한 것으로 알려지 고 있다. 인문계 고교의 3학년을 기준으로 90점 이상인 ‘수’를 받은 학생의 비율이 15%를 넘는 과목이 1개라도 있는 학교가 전 국 1252개 고교 중 1230개교 98.2%나 되고, 757개교 60.5%가 12 개 과목의 성적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적 부풀리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수’를 받았지만 과목석차에서 최하위인 경우도 있고, 1등이 100명이 넘는 과목도 많으며, 수강인원 138명 중 134명이 1등인 경우와 같은 터무니없는 사례도 많았다.
내신성적 부풀리기는 시험 문제를 쉽게 내거나 출제 범위를 축소 하고, 문제를 사전에 찍어주는 것과 같은 비교육적 방법으로 자 행되고 있다. 심한 경우 시험을 치른 뒤 답안지를 다시 나눠주고 틀린 답을 고쳐 쓰게 했다니 더 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가장 교육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할 학교와 교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 었는지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내신이 대학입시에서 변별력이 있는 자료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학교간에 학교 내에서 학생간에 변별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에서 학교간의 변별력은 고교를 등급화할 우려가 있다는 이 유로 인정되지 않고 있고, 학교 내 학생간의 변별력은 내신성적 부풀리기로 무력화되어 버렸다. 그러니 대학입시에서 내신이 제 구실을 못하고 불신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내신성적 관리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책 임이다. 정부의 대학입시 정책은 대학별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 여입학제 금지라는 ‘3불’에 기조를 두고 있다.
여기에 절대평가에 의한 고교의 내신 평어(評語)를 대학 입시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유(類)의 정책으로 고교에서 는 학생들의 내신성적이 마냥 부풀려지고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 재하는 고교간의 학력 격차가 무시되어 내신의 공정성과 신뢰성 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경쟁력 있는 교육과 공교육의 정상화를 저해하 게 될 것이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피해를 끼치게 될 것이 다. 또한 대학에서는 변별력이 떨어지는 내신성적의 반영 비율을 최소화하고 논술과 심층면접을 강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각 대학들이 이러한 방법만으로 변별력을 제 대로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하겠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런 저 런 방법을 써보고 있을 뿐이다.
내신의 불신은 학교 교육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도덕성을 의심받 게 하며, 사회적 공정성을 상실하게 하여 공교육의 정상화를 가 로막는다. 교육이 도덕성을 상실할 때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은 목 적을 뒷전으로 한 채 수단만을 앞세우게 될 것이다. 목적과 수단 이 전도된 모습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사회의 위기라 할 것이다.
내신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교에서 행해지는 성적 부풀리기를 차단하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학교간의 학력 격차를 시정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전교생의 90% 이상이 수능 상위 10% 내에 드는 학교가 있는 반면 에 이 범위 내에 드는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는 학교도 상당하다 는 현실을 외면만 해 가지고 문제가 해결될 일은 아니다. 상처는 곪아서 터지고 있는데 아무런 처방을 하지 않고 있으니 답답하 기만 하다.
진정으로 이러한 방안을 강구하기가 어렵다면 대학이 우수한 인 재를 자발적으로 선발할 수 있도록 학생 선발 권한만이라도 돌 려줘야 한다. 자율과 경쟁, 그리고 정의를 잃어버린 교육과 사회 는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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