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육 부실, 교사에게 전가 말라"
[오마이뉴스 2005-07-11 14:14]
지난 상반기 약 25만 명의 교원들이 반대서명에 동참하며 학교 현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교원평가 문제가 일단 원점에서 재논의 해야 하는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6월 20일과 24일 교육부와 교원3단체, 학부모 2단체가 '학교 교육력 제고를 위한 특별협의회'를 구성, 이 문제에 대해 협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안에 부적격 교원 대책 문제가 새로운 협의 의제로 추가되었다. 그렇다면 그간의 교원평가 논의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가.
출발부터 잘못된 교원평가 논의
그동안 진행된 교원평가 논의는 '찬성'이냐 '반대'냐 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는 교사들이 평가를 받고 있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논의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교사는 근무평정이란 교원평가를 이미 받아 왔다. 근무평정은 교장 교감이 교사를 평가하는 제도로서, 인사승진의 자료로 사용돼 교사를 통제하는 데 막강한 위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행 교원 평가제도다. 수업, 학급운영은 물론 품성까지 평가하는, 그야말로 교사의 전체 인격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평가제도를 놔두고 마치 교원들이 평가를 전혀 받지 않는 듯 교원평가에 찬성하냐 반대하냐는 식의 논의는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다.
교원들은 근무평정은 불합리하기 때문에 폐지되거나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교장 교감의 일방적이고 주관적 평가라는 점, 평가 결과를 비공개로 한다는 점, 평가 기준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어 객관성이 없다는 점, 승진과 연계되며 상대평가여서 필연적으로 교장 교감의 측근이 좋은 점수를 독점할 수밖에 없다는 점 등 때문에 교원들 절대 다수가 불합리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교육부도 학계도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교원평가를 덧씌우려 한 무책임한 정책 때문에 교원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평가 도입 방안이 아닌 평가 개선방안을 협의 의제로 삼게 된 것이다.
교원평가가 학교교육의 질을 높일 것이다?
그동안의 논의는 교원평가가 실시되면 학교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검증된 바 없다. 이미 오랫동안 실시된 현행 근무평정제도 역시 실패했다. 교사들이 수업보다 승진을 위한 점수 얻기에 더 힘을 기울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인사승진과 연계된 교원평가는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 못할 것임은 근무평정이 잘 보여주고 있다.
교원평가에 찬성하는 논리는 영국 일본 미국 등의 교원평가 예를 들며 정당화하고 있지만, 예로 든 외국의 교원평가가 학교 교육의 질을 높여주었다는 어떤 검증된 결과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영국 같은 경우는 교원평가로 교사 기피 현상이 심화되어 외국에서 교사를 수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교원평가가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일 것인지, 오히려 떨어뜨릴 것인지에 대한 검증 없이 출발된 교원평가 논의는 합리적이지 못하며 학교 교육 부실의 책임을 교사에게 전가하는 논리이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교원평가를 실시해야 한다는 논리 자체가 교원의 질이 낮아 학교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한국 교육의 질은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여러 연구 결과들이 이를 검증해주고 있다. 그러나 미래사회를 준비해 가는 개념의 '교육' 측면에서 보면 질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교사의 자질' 문제보다 입시중심의 교육구조와 형편없이 낮은 교육여건과 환경, 학교장 및 교육 관료에 의해 통제되는 봉건적 학교교육 운영시스템에 기인하는 문제 아닌가.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입시중심의 교육구조를 개혁하고, 교육여건과 환경(수업시수, 학급당 학생수, 교육시설 환경 등)을 개선하는 한편 학교운영시스템을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해결 노력 없이 교사 개인을 평가해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발상은 성공할 수 없다. 현재의 교육구조와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교육부식의 교원평가를 도입하면 교단의 갈등 심화로 학교교육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게 될 것이 뻔하다. 또한 학부모의 요구에 따라 국가의 교육정책과 상반되는 입시중심의 교육을 강화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교육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후퇴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런 논리적 결합 때문에 교육부는 결국 교원평가 사업을 '학교 교육력 제고 사업'으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현실 평가 방안 없는 찬반 논쟁은 허구다
교원평가 논의는 구체적인 평가 방안을 놓고 그것의 합리성과 현실성에 대해 논의해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논의는 실체가 없는 허구적 논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현재까지 제시된 구체적인 교원평가 방안은 근무평정과 이번에 새로 교육부가 고안해낸 다면평가 방안이다. 그러나 근무평정은 이미 불합리성이 입증되었고, 교육부의 다면평가안 역시 현실성과 실효성 없는 탁상의 방안이라는 지적이다.
이미 학교현장에선 '동료장학' 또는 '연구수업'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공개수업이 진행되어 왔지만, 이미 형식화되어 그 유효성에 많은 교사들의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동료 교원들이 1~2회 수업을 참관하여 수업의 전문성 평가하겠다는 발상을 내온 것이다. 이 얼마나 탁상의 방안인가. 교사의 83%가 공개수업 참관 방식으로는 수업능력을 평가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고, 62.5%가 연구수업이나 공개수업이 평소수업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시행해도 보여주기 수업을 형식적으로 평가하는 실효성 없는 제도가 될 수밖에 없다. 학부모, 학생의 평가참여 문제 역시 평가주체로서 적절성에 대한 학술적 검증 없이 졸속적인 아이디어 차원에서 입안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 수준의 교원평가 방안이 3개 학회에서 1년간 엄청난 예산을 들여 연구해 나온 방안이라는 데 현장 교사들은 실소하고 있다.
근무평정과 다면평가가 현실 적합성이 없는 교원평가 방안이라면, 새로운 합리적인 평가방안이 연구되어 나오지 않는 한 교원평가 논의는 허상을 놓고 논의하는 것일 뿐이다. 때문에 교원평가 개선방안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부적격교원' 대책 필요 공감... '마녀사냥'식은 곤란
6월 24일 교육부와 교원단체, 학부모단체는 ‘부적격 교원’ 대책을 마련하기로 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책은 합의한 바 없다. 논의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부적격 교원 관련 논의도, 교원평가 논의처럼 마녀사냥식의 허구적 논리로 위험성이 다분하다. 6.24 합의가 부적격 교원 '대책 수립을 논의'하기로 한 것인데도 많은 언론이 '부적격 교원 퇴출'이라는 식으로 제목을 뽑아 접근하고 있는 것이 이를 예고한다.
'부적격 교원 대책'은 교원의 권익과 신분에 관련된 문제로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교원 역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로부터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당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몇 가지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부적격 교원'이란 개념의 모호성 때문에 생길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처벌 위주의 '부적격 교원' 대책을 세운다면, 부정, 비리, 성폭력 등 명백한 '행위' 중심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행위 없는 처벌은 있을 수 없다. 행위 중심으로 개념화하면 비교적 공정하고 합리적인 대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지도능력부족교원', '무능교원' 등 추상화된 개념으로 확대하면 객관적인 기준 마련이 어렵다. 교육관에 따라 동일한 교원을 우수 교원으로 볼 수도 있고, 무능 교원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상화된 개념으로 접근하면 교원들의 인권과 교권이 심각하게 훼손당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둘째 교원평가를 통해 부적격 교원을 가려내겠다는 접근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소위 부적격 교원을 판별해내는 평가방안 마련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고, 극소수의 소위 부적격 교원을 가려내기 위해 모든 교원에게 교원평가를 실시한다는 것 자체가 교원의 사기를 떨어뜨려 역작용을 불러올 위험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때문에 6.24 합의는 교원평가 방안과 별도로 부적격 교원 대책을 수립하기로 한 것이다.
셋째, '처벌'보다 '예방'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간 부정비리 교원에 대한 처벌제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학 재단, 교육관료 등의 비호 아래 부정비리를 척결하기 위한 제도가 가동되지 못했다. 발생한 부정비리 행위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벌로 부정비리를 막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부정비리가 발생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학교와 관료사회가 투명하게 운영된다면 많은 문제들이 교원들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성폭력 등의 범법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운영의 민주화와 투명화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끝으로 부적격 교원 대책은 인권 침해 요소가 없도록 그리고 반교육적 부작용이 나나타지 않도록 합리적이고 신중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부정비리 행위자라도 무조건 퇴출시켜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심각한 인권침해일 수 있다. 비리 정도에 따라 적절한 수위의 처벌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부는 수업을 하기 어려운 신체적, 정신적 질환자를 부적격 교원의 범주에 포함시키겠다는 발언을 한 바 있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인권적 측면에서 장애인 교사의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고, 장애인 교사가 교단에 서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 교육적 행위이다. 교사에 대한 징계와 제제는 인권적 측면만 아니라, 교육적 측면까지 고려해야 한다. 교원 정책 자체가 이미 교육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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