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북한관광기
평양을 거쳐 백두산 천지연을 돌아보고 (3·끝)

백두산에 오르는 일은 원래 10월1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스케줄을 하루 앞당겼다. 아침식사를 6시에 하고 숙소를 떠난 것이 7시였다. 평양 순안 비행장으로 나가 북측의 고려 민항편으로 백두산 삼지연 공항으로 향했다. 북한 땅을 이륙하여 북한 땅에 있는 공항에 내려보기는 처음이어서 1시간에 걸친 북한 국내선 비행은 또 다른 경험이 되었다.

 
▲ 백두산 천지
 
150석은 됨직한 기내에서 소임을 다하고 있는 여자승무원들의 친절은 인상적이었다. 짐을 받아 챙겨 주는 일이며 좌석을 안내하는 모습은 비교적 상냥하고 세련되어 보이기도 하였다. 연령이 많아 보이지도 않았고, 교육과 훈련과 경험이 겸비한 승무원들로 보였다.

고도를 낮추며 삼지연 비행장에 접근하는 기내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니 백두산 기슭의 산림은 노란 색으로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비행기는 한없이 펼쳐진 백두산 기슭에 접근하면서 고도를 계속 낮추면서 산림 위를 나르고 있었다. 이윽고 비행기는 목적한 삼지연 비행장에 착륙하였고 기내를 나오니 찬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웃깃을 여미면서 준비해간 장갑도 꺼내 손에 꼈다.

깊은 산 속에 위치한 비행장이어서 그런지 비행장의 경계를 이루는 철조망도 없고 그저 콘크리트 바닥과 풀밭과의 경계가 고작이었다. 빈번한 이착륙이 없어서인지 청사며 주위의 분위기며 모두가 한산했다. 다만 몇 사람 제복을 입은 이들이 우리들을 맞아주고 안내하는 것뿐이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5대의 버스에 각기 분승하고 산림 사이로 많이 패어 있고 좁은 아스팔트길을 조금 달리고 나니 비포장(非鋪裝)도로가 시작되었다. 평지를 달리는 것 같은데 서서히 백두산에 오르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달리고 달려도 길 양쪽에는 끊임없이 울창한 산림이 들어서 이어져 간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볼 때 노란색으로 보였던 나무들이 잇갈나무(낙엽송)였음을 알았다. 그 아름드리나무들이 수 없이 하늘로 꼿꼿하게 치솟아 있고 수십 키로는 그렇게 치솟은 채로 큰 산림을 이루고 있었다. 군데군데 전나무도 보였고 자작나무도 높이 올라 갈수록 눈에 띄었다.

얼마를 달렸는지 산의 고도가 높아지면서 귀는 멍멍해졌고 나무의 크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무는 더 있지 않고 저 아래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잡초만 있는 지대를 지나니 돌과 흙뿐인 길은 점점 가파르기 시작한다. 굽이굽이 돌면서 자동차는 힘겹게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 같았다. 드디어 차 한대가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멈추니 나머지 차에 분승하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을 200여 미터 바라보이는 장소에서 일단 하차하여 정상에 오르는 새로운 통과절차(마치 국경초소를 연상케 했다)를 밟고 나서 승차를 하고 마지막 정상을 향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화석돌로 벽돌처럼 규격을 지게 만들어 보도 불럭처럼 깔아놓은 길을 따라 차는 계속 오르고 있다. 마침내 눈이 얇게 덮여 있는 정상에 올랐다. 가장 깊은 곳은 312.7m나 된다는 천지연(天池淵)도 눈 아래 펼쳐졌다.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 2,750m가 되는 지점이었다.

백두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있어 오늘처럼 날씨조건이 잘 맞기란 흔치 않다고 한다. 비바람도 없고 구름도 산정을 덮지 않아 좋은 시야를 갖게 되는 것은 행운이라고 한다.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한 곳이 이곳 백두산 산정의 날씨였다.

감격과 감사의 시간을 보내고 아내와 함께 다시 천지연으로 내려가는 케이블카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계단으로 된 길도 있고 케이블카를 이용하기도 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계단을 이용하면 오르내리는 데에 1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중국 연변 쪽으로는 산정에서 천지연에 내려 갈 수 없다고 한다. 마침내 천지연에 발을 딛고 손을 담그고 그물을 떠서 한 모금 마셨다.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백두 정상과 천지에 담긴 물을 밟고 마시고 나니 고대하고 원하던 한 가지 일이 성취 된 듯 하였다.

이 정상 위에서는 남과 북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같이 어우러지고 껴안고 손을 잡기도 하고 손뼉을 마주치기도 하면서 백두 정상에 오른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이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출되고 있었다. 발끝과 발끝이 맞닿은 만큼 어깨를 같이 하고 서로 얼싸안은 그 사이에 남과 북의 거리는 잠시 없어진 듯 했다. 백두 산정은 그래서 우리나라의 영봉(靈峰)이요 자랑이 되는 산 이였던가 하는 생각에 잠시 젖어 보면서 한편, 그 산정에 큰물을 담고 있는 천지는 배달의 백의민족(白衣民族)을 향하여 무엇인가 잉태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오박육일의 북한 관광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 들어가 정해진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노라니, 지난 일들이 주마등같이 스쳐 지난다. 보고 듣고 한 일들을 종합 할 때 한마디로 “북한은 변화하고 있다”였다.

시골길, 산골길도 그대로 보여줘

우선 6·25때나 그 이전에 북한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을 저들은 오랫동안 배신자(背信者)로 낙인찍고 상종 못할 사람들로 여기고 지내왔다. 지금 그들은 그 배신자라는 사람들을 관광객으로 오히려 어서 오시라요 하면서 환영하고 있다. 반갑습니다 하면서 맞아드리고 있는 것이다. 관광 버스안에서 고향 소식이며 궁금한 것을 묻는 일들에 대해서 성의 있게 대답해 주는 그 모습에서 이미 그들은 고향을 저버린 배신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자수성가해서 찾아온 고향사람처럼 고분고분하게 대한다는 느낌마저 들게 하고 있다. 이는 바야흐로 실향민과 북한 동포들 간에 50년만의 화해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암시하는 것 아닐까?

그들에게는 치부(恥部)가 되고 보여주기를 극히 꺼려하던 모든 부문을 스스럼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체제경쟁에서 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기에 이번의 관광 길은 쭉쭉 뻗은 고속도로만 달리게 하는 것이 아니고, 흙먼지 몹시도 날리는 시골길, 산골길을 오랜 시간 달리면서 화전민처럼 산등성이를 개간한 모습, 거기에 옥수수며 감자를 심고 조를 심어 놓은 모양 등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내준 쌀도 잘 받아서 고맙게 먹고 있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하는 말에서, 그리고 비료는 남한에서 포장한 그대로 농민에게 보내 비료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 수 있게 하고 있다는 것, 이 모든 일들이 지금까지 생각하고 꺼렸던 일들에 대한 저들의 대답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가공된 꾸며진 이미지가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모습을 역력히 읽을 수가 있었다. 전에는 남한 사람들에게 밤 기차 여행을 강요했다는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있는 변화를 몸소 체험하는 것 같은 일인 것이다.

관광 안내원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예민한 부문이라고 생각되어 우리들 스스로가 질문하기에도 주저하는 부분을 먼저 자신이 질문을 받았기에 설명한다는 형식으로 자진하여 설명해 준다. 이렇듯 북한은 아주 조금씩 열려 가고 있고 아주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데 이것은 살길을 모색하고 있는 몸부림으로 보여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