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합법화 찬반논란 “안보는 과할수록 좋다” 노무현 대통령은 17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한총련 문제를 시대변화에 맞춰 진지하게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화해와 통합의 차원에서 대통령 취임기념 특별사면을 단행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한 가운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 이번 사면대상에 포함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더 나아가 노 대통령이 후보시절 보안법 폐지를 언급했던 만큼 이적단체로 규정돼 있는 한총련이 합법화 될 수도 있다는 반응이다.
반면, 법치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검찰에게 이적단체에 대해 전향적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검찰에게 직무유기를 강요하는 것과 같다는 의견도 있다.
청와대 브리핑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이날 한총련의 법적 지위와 관련해 “언제까지 반국가집단으로 (해석해서) 수배할 것인지 참 답답하다”면서 “그렇다고 대학이 이적단체가 될 것인지 고민인데, 이 수준이라면 뭐가 달라졌다는 것인지, 검찰도 세상의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며 이 문제를 검찰이 진지하게 검토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총련 합법화 논란은 지난 96년 ‘연세대점거농성’을 주도한 제5기 한총련을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판결한 이후 지금까지 불거지고 있다.
대법원은 97년 “한총련은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노선과 활동을 찬양·고무하고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이적단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한총련의 이적성 여부 판단을 정강·정책 등에 나타난 단체의 성격과 그에 따른 활동에서 중시했다.
이후 한총련은 강령 내용 가운데 이적 규정의 주요 근거가 됐던 ‘연방제 통일’ 대목을 ‘6·15 남북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내용으로 2001년 바꾸는 노력을 보였다.
이 일로 한총련이 스스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며 한총련이 이적단체가 된 것은 그들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므로 기성사회의 가치와 법이 한총련을 위해 맞춰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한총련 학생들은 “매년 수백명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합법적인 선거를 통하여 각 학교의 학생 대표가 되고 한총련 규약에 의하여 한총련의 대의원이 된다”며 “그러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한총련에 가입하는 동시에 수배자가 된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한총련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강령에서 삭제하고 폭력 시위를 자제하는 것은 외형상 변화에 불과하다”며 “내부적으로는 북한의 대남투쟁 노선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먼저 한총련을 해체하고 합법적인 단체를 새로 구성해 법적인 판단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국가안전, 공공복리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예비적 행위는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총련 가입 자체를 처벌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에 근거한 법집행임을 분명히 했다.
서울시내 한 경찰서 보안과 관계자는 “총학생회장만 하면 자동적으로 반국가 이적단체 가입 활동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되는 현실을 그들은 억울해 하나 현행법으로는 위법행위에 해당돼 경찰로선 이들을 수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유시민연대 김구부 사무총장은 노 대통령의 한총련 관련 발언에 대해 “안보와 직결된 사안에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불안케 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노 대통령은 누누이 강조했던 법과 원칙을 한총련 문제에서도 적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사무총장은 “노 대통령이 법원의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시킨다면 법치주의를 무너뜨렸다는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을 엄중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상에서 네티즌들도 한총련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아이디가 ‘연중제안’인 네티즌은 “한총련을 군부시절에는 야당탄압용으로 사용하고 선거 때도 야당탄압으로 이어온 것이 사실이다”며 “앞으로는 이적단체니 좌경이니 용공이니 빨갱이로 몰아 부치는 음모는 사라져야한다”면서 “한총련 수배자도 가족의 품으로 하루빨리 돌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필명이 ‘대학생’인 네티즌은 “한총련을 대학 내의 총학생회의 연합집단쯤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며 “그들이 신입생 환영회 행사에서 틀어놓는 그 선동적인 노래와 구호외침과 투쟁 방식 등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대다수의 학생들에게는 정말 생소하고 낯설다”면서 “한총련은 민주화 운동을 한다고 내걸고 있으나 내부적으로 굉장히 서열적이고 폐쇄적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총학생회장을 소개할 때는 무슨 인민군 전당대회 뺨칠 만큼 ‘모두 기립박수’이러는 게 예사”라며 “순수한 학생조직이라면 학생복지를 위해 일하라”고 충고했다.
또 다른 네티즌 ‘echo666’은 “한총련이 순수한 학생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된 자들이며, 북의 체제에 동조하는 조직임을 알면서도 법적 기준으로 접근하지 않으려는 노 대통령은 과연 어느 쪽에 있는 사람인가”라고 반문했다.
이혜원 기자 hwlee@independent.co.kr
<자유시민연대 성명> 대통령은 지금 검찰에게 직무유기를 요구하는 것인가
1. 노무현 대통령이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된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한총련)과 관련, ?언제까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간주해 수배할 것인지 참 답답하다?며 검찰의 전향적 검토를 당부한 데 이어 청와대가 이른바 '국민화해와 통합'이라는 명분으로 오는 5월 8일 석가탄신일 이전에 대통령 취임기념 특별사면을 단행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소식은 이 정부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것이다.
2.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이 검찰에게 이적단체에 대해 전향적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검찰에게 직무유기를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은 법에 따라 이적단체 구성원들을 수배해 왔을 뿐이며,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엄연한 이적단체 구성원들에 대한 수배를 포기한다면 이는 법치주의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3. 법원의 판결은 법원만이 뒤집을 수 있다. 법원의 판결을 행정부가 뒤집는 것은 법치국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설혹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한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한총련의 개개 구성원들에 대한 것일 뿐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법원의 판결 자체를 '없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4. 대통령도 물론 정치인이고, 따라서 표를 의식하리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된 지금은 후보자 시절과는 달리 국가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특히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안에 대해서는 더더욱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한미동맹관계 등 안보와 관련된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도 위험수위를 넘는 경솔한 발언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가 하면 국론을 분열케 했다는 사실이다. 이번 한총련 관련 발언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또 한번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불안케 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5. 우리는 노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누누이 강조해 왔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한총련 문제도 바로 노 대통령이 강조한 바와 같이 법과 원칙 위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노대통령이 법원의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시킨다면 법치주의를 무너뜨렸다는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을 엄중 경고한다.
6. 이에 덧붙여 우리는 최근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 수사 등 기존 공안부의 대공 수사권을 없애고, 이를 일반 형사부가 맡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것과 관련, 이 정부가 반국가단체에 대해 방어포기적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공안부 업무를 일반 형사부가 맡아서 과연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우리는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무부가 공안부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이 정부가 안보를 소홀히 여기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7. 안보는 바늘 끝만큼의 빈틈도 허용해서는 안된다. 한총련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나 법무부 장관의 방어포기적 발언은 그런 점에서 이 정부가 과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는 지 의심케 만드는 것이다. 대다수 국민은 이 정부가 대중인기에 영합하여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 알 수 없다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이 정부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이 정부는 이를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2003년 3월 17일
자유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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