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뿌리는 대통령의 新聞觀이다 .... 姜天錫
아무래도 노무현 정권의 최대 급무(急務)는 언론, 그것도 신문인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요즘 정부 돌아가는 모습은 도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북핵(北核)이 급하다’ ‘대미관계가 걱정이다’ ‘경제가 심상치 않다’ ‘이라크 이후는 또 어찌되나’…. 길바닥에 나가보면 다들 이 소리지만, 이건 눈먼 백성들의 우선 순위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물론 이 문제들을 놓고 대통령과 참모들이 머리를 맞대기는 한다. 그러나 무슨 결단을 내리거나 그걸 서두르는 듯한 기색은 없다. 한마디로 여유만만이다. 까놓고 말하면, 북핵문제건 경제문제건 결국은 대미관계로 좁혀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 방면의 최전방 수비수인 국정원장이나 주미대사자리에 전(前) 정권 사람들을 그대로 앉혀두고 있는 걸 보면 정권의 분위기가 짐작이 간다.
묘한 건 신문과 신문기자 쪽으로 몇 걸음만 옮겨도 이 정권의 여유만만은 온데간데가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지 이제 고작 스무 날밖에 되지 않았다.
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신문과 신문기자들을 향해 쏟아진 말과 조치들을 꼽는데는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 방면에 관한 한 단연 ‘준비된 정권’이다. 그 선봉장이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라고 한다. 소설가·시나리오작가·영화감독을 거친 사람이다. 머물던 자리에서마다 굵직한 상을 거머쥐었으니, 역량은 사줘야 한다. “기자들은 공무원 사무실을 출입하지 말라” “특종을 취재해 그 내용을 확인하려 해도 공식발표때까지는 확인해주지 말라” “기자들과 식사자리에 어울리지 말라” “기자들을 만나면 대화 내용을 규정된 양식에 따라 즉각 보고하라” “기자들의 취재에 응할때는 기사에 자신의 실명을 명시하도록 요구하라” “특종은 쓰레기통이나 뒤져서 하려면 하라”등 하나하나가 문제도 되고 화제도 될 만한 내용이다.
더구나 ‘나의 언론관은 대통령의 분신(分身)’이라고까지 나왔으니, 혹(惑)할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소매만 스쳐도 인연이라니, 한마디쯤 던지고 가는 게 도리일지도 모른다.
넥타이를 푼 채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넣고 회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다. 래리 스피크스는 백악관 대변인으로 6년간 레이건 대통령을 모셨다. 그는 휴양지를 제외하고선 바지는 청바지를 입더라도 상의는 꼭 넥타이 차림의 정장을 고집했다. 스피크스는 그가 만나는게 기자들이 아니라 그 너머 국민들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가가 출판업자나 잡지 편집자를 위해 글을 쓰진 않는다. 그가 도달하려는 목적지는 항상 그 너머 독자다. 작가 시절엔 이 장관도 이걸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 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대통령이다. 만사(萬事)는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멋진 구호를 단 참여 정부에서도 이 슬픈 진실은 달라진 게 없다.
그러니 이번 소동도 결국 대통령의 말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욕 먹을 것은 먹어가면서 언론과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장관과 수석비서관들 앞에서 밝힌 노 대통령의 이 원론적(原論的) 언급에는 시빗거리도, 흠잡을 것도 없다. 문제는 여기에는 이 정부가 신문과 신문기자들에게 왜 이러는지를 짐작 할 어떤 단서도 담겨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걸 알려면 각론(各論)쪽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뎌야 한다. ‘언론에 억울한 일을 당하면 가만히 있지 말라’‘앞으로 오보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언론 보도의 진의(眞意)…, 오보에 고의성(故意性)이나 악의(惡意)가 있을…’. 이쯤 되면 대체로 드러난 셈이다. 말하자면 노 대통령은 언젠가 신문의 오보로 상처를 입은 적이 있고, 지금도 그 오보에는 악의와 고의가 작용한 것으로 믿고 있으며, 현 정권의 신문정책에는 대통령의 이 체험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그 때 그 상처가 얼마나 깊고 아픈 것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정치인이 개인적 체험을 일반화해서 정책으로 삼을 때 뒤따르는 위험 때문만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의 주위를‘악의’ ‘고의’ ‘저의’ ‘진의’등 상대의 동기를 의심하는 단어로 둘러싸면 쌀수록 더 고립되고 더 불행해지는 법이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 대통령은 옛 은원(恩怨)을 넘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姜天錫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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