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 칼럼/인사이드 월드] 김정일 이후 한반도 통일은 일방적인 지레짐작 아닐까
현장 통치를 특기로 하는 북한 김정일이 지난 8월14일 이후 잠행을 계속하고 있어 이른바 북한 急變時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진다. 물론 有備無患은 정부 당국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세이고 여러 가지 시나리오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긴 하다. 김정일이 축구를 관람했다는 사진도 나오고 있지만 그의 유고는 언젠간 닥칠 일이다.

그러나 김정일 이후 한반도가 당연히 우리 주도로 통일된다고 단정하는 건 지나치게 성급하고 일방적인 지레짐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군부 쿠데타로 확실한 대체권력이 등장한 5.16은 그렇다 치고 4.19의 이승만 下野, 유신 반대 시위 격화와 중앙정보부장에 의한 박정희 弑害, 5.18 光州사태 같은 남한 급변과 최고 권력자 유고 사태 때 북한이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들은 자신들 주도에 의한 통일의 호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했을까, 아마 무척 흥분하고 고무됐을 것이다. 그러다가 남한 국민들의 대북 인식, 국군의 태도, 미국과 미군의 대응에 생각이 미치고 결국 단념하지 않았을까.

당시 우리는 어떠했는가. 자동적으로 휴전선 경계를 강화했을망정 우리의 비상사태를 틈타 북한이 무력으로 남침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내부 혼란을 자체적으로 수습하는데 신경 썼지 통일, 특히 북이 주도하는 통일은 語不成說이었다. 다만 북의 오판에 의한 도발을 경계했을 뿐이다. 중국이나 일본도 남한의 정치적 혼란이 한반도 전쟁으로 비화되는 사태를 결코 용인하지 않았다.

북한 급변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다. 북한은 우리의 미국과 같은 존재인 중국의 절대적인 후원과 지원, 보호 아래 자체적인 해결을 모색할 것이고 그 와중에 우리가 끼어들 여지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북진해서 무력으로 인민군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남북통일을 달성한다는 건 일단 100% 불가능한 일이다. 세 아들 중에 누가 후계자가 되던, 어떤 군부 실력자가 등장하던, 집단지도체제가 되던 결국 親中정권이 수립된다고 봐야 한다. 우리의 정치적 격변기를 돌아보면 대충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일단 북한 지배계층은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한에의 흡수통일은 원치 않는다. 예컨대 우리의 요즘 대북관계 보도에 접한 북한 군부 강경파 반응을 생각해 볼 때 “이런 종간나 새끼들, 확 밀어버린다” 하지는 않을까. 心身이 지친 김정일이 몽롱한 상태에서 나 죽고 너 죽자 식으로 나올 가능성은 없는가. 오랜 동안 순치되고 세뇌되고 게다가 국제사회에서 격리돼 우물안 개구리 처지인 북한 민중에게서 항쟁의 의지라도 기대할 수 있을까.

주변 4대국 가운데 중국과 일본은 이왕 분단된 한반도가 다시 통일되는 걸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건 우리의 지정학적 숙명이다. 특히 옛날의 한사군, 임진왜란과 6.25의 군사개입, 최근의 동북공정에서 들어나듯 역사적으로 적대 세력과의 직접적인 접경을 회피해 온 중국의 북한에 대한 이해는 크다. 일본도 이웃나라가 보다 강해지는 꼴을 보기 원치 않을 것이다.

같은 분단국가였지만 서로 전쟁을 하지 않은 동서독과 우리의 사정은 크게 다르다. 동독의 후원국이었던 소련은 당시 붕괴 직전으로 제 코가 석자였고 영국, 프랑스는 미국의 의사에 순응해 동서독 통일에 협조했다. 베트남은 무력통일에 성공했다. 미국은 엄청난 희생을 치루면서 개입했지만 남베트남을 포기한 채 철수하고 말았다. 우리에게 유비무환이 필요함을 깨우쳐 준 교훈적 사례다.

결론적으로 요즘의 북한 급변 사태를 상정한 통일 운운은 김치국부터 마시는 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통일의 기회는 북한 급변 사태 이후 새로운 정권이 몇 차례 들어서고 북한이 충분히 변하고 주변국들도 변한 후에야 찾아올 것이라고 봐야 한다. 지금은 누울 자리를 보고 발 뻗으랬다고, 북한의 급변사태가 통일로 연결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조용하게 제대로 준비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의표를 찔린다고 할까, 어느 쪽에서든 자만과 방심, 오판이 초래할 끔찍한 사태는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통일문제를 떠나 북한의 내란이나 김정일 有故 같은 급변사태가 벌어질 경우 북한 내 강경세력이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탈취 또는 대규모 탈북자가 발생하는 상황, 금강산이나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사태 등 모든 시나리오에 대한 대처 방안을 준비해 두는 건 절대 필요하다. 이런 경우들은 언제든 우리에게 닥칠 수 있다. 그중 하나 또는 몇 개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면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국가 비상사태를 맞을 수밖에 없다.

ㅁ 前 연합뉴스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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