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름대로 원칙론자라고 자부했으며, 또 나보다 논리적으로 판단할줄 아는 사람은 없는줄 알았다. 그런데 뒤늦게서야 절망적인 사실을 알고 말았다. 특히 박정희의 독재에 대해서는 지겨울 정도로 충분히 비난했지만, 정말 지독한 김일성.김정일의 독재에 대해서는 거의 비난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는 김정일에게는 협력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김대중의 햇볕정책까지도 지지한 입장이었다.
독재자 김정일을 지원해야 하는 입장은, 너무나 잘알려진 바와 같이 굶주리고 있는 북한주민들을 돕는게 인권의 기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나쁜 독재자는 비난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더 악질적인 독재자는 두둔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상황과 체제(조건)의 다름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즉 박정희정권때는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없었지만, 김정일정권하에서는 죽어가고 있으니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박정희 정권하에서는 국민들과 정권을 분리시킬 수 있었다. 즉 박정권 정권을 공격하는 것과 국민들을 상대로 공격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하여 국민들이 입을 피해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마음놓고 정권을 공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김정일 정권은 철저한 사상통제로 국민세뇌교육을 시킨 상태라서 김정일에 대한 공격이 곧, 북한주민들에 대한 공격이라고 생각되어 김정일에 대해서는 함부로 비난하면 안된다고 믿었다.
또 박정희 시대는 개인의 자유가 허용되는 사회여서, 여러가지 교류를 통해 박정희 정권에 투쟁할 것을 독려하는 운동을 전개시키는게 가능했다. 물론 정치적으로야 다소의 제약이 있었지만, 그래도 김대중 김영삼을 비롯한 민주화 인사들이 공식적인 야당까지 결성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수 있을 만큼은 자유로운 사회였다. 그래서 김대중은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며 국제사회를 향해 외칠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난 같은 독재라도 박정희에겐 투쟁하는 것이 선(善)이고, 김정일에겐 지원하는 것이 선(善)이라는 이중적인 잦대를 적용시켰다. 그것은 같은 독재라도 체제의 조건이나 상황의 조건등이 다르면 '인권의 적용조건'도 달라야 한다는 분별없은 생각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정일에게는 협력해야 한다는, 그 피치못할 상황이란 것을 알고보니 상대적으로 훨씬 더 나쁜 독재자는 오히려 도와주어야 해야만 괴변에 불과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피치못할 상황이 발생할수 밖에 없었던 핵심이란, 오로지 더 악랄하고 무능력한 독재정치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즉 김정일은 박정희와는 달리 국민들을 굶어죽게 만들만큼 경제를 망쳐놓았으니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김정일은 박정희와는 달리 국민들의 사상통제를 더 철저히 했으니 비판하지 말아야 하며, 김정일은 박정희와는 달리 북한주민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다록 억압시켰으니 칭찬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상대적으로 덜 나쁜놈은 비난하는게 '정의'이고, 상대적으로 더 나쁜놈 앞에서는 칭찬하는게 '정의'라고 우겼던 셈이다. 그리고는 그러한 핵심을 깨닫지 못하고, 독재자의 책임 문제를 '굶주림의 인권'으로 왜곡시켜 나의 양심을 속여 우리 스스로를 위로했던 셈이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양심을 속인 것은 아니고, 이러한 실상의 핵심을 나의 안목으로는 깨닫지 못하고 황씨 성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겨우 가능했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의 정체를 밝힐수는 없다. 비록 그가 나에게 논리와 양심을 깨닫게 해준 사람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 사람을 밝힐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나처럼 상당한 유명세를 누리는데 성공한 입장에서, 내가 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게 되면 나로인해 그 사람이 덩달아 유명해질까 솔직히 배아프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내가 속한 진보진영은 박살나고 말것이다. 우리는 그를 논리적으로 이길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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