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대종상 시상식에서 박지원이가 김희선하고 같이 시상식에 나오는 장면이 있었죠. 그 때 박지원의 눈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기억에 생생합니다. 옆에 있던 문성근이가 무안해할 정도였죠. 더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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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년이 뜰려면 몸파는 게 최고지 크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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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가 전라도 정권의 개가 된 시초는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대중 독재정권은 도무지 전도가 되지 않는 언론들을 장악하기 위한 고도의 전술을 구사하고 있었고 대표적인 사례가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의 구속이었다.
그러면 왜 조선일보는 손을 대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언론장악공작의 주도자였던 박지원의 성추문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조선일보가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박지원의 유명 탤런트 C와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는 그 당시부터 형성되고 있었고 하루는 박지원과 그녀가 서울 모 호텔에 투숙하는 장면을 조선일보의 모 기자가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참고로 C양은 원래 무명이었으나 박지원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모백화점에서 박지원이 사준 시계를 바꿔간 사건으로 항간에 그들간의 관계가 회자되곤 했다. 2001년에는 강남 삼성동의 모 한정식집에서 박지원이 자랑삼아 'C양을 30분내에 불러보이겠다'라고 떠벌렸는데 실제로 그녀가 30분만에 나타나 동석자들을 놀라게 했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박지원의 언론장악공작은 이로 인해 타격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놈은 C를 잠시 당시 MBC 사장이던 이득렬에게 빌려 주었다. 한번 키워줄 겸 너도 한번 맛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나이든 이득렬이가 C와의 정사도중 복상사를 해버린 것이다. 그 어리버리한 C양이 119를 부른 바람에 일이 더 커졌다. 당시 MBC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보도했는지를 보면 지금도 웃음이 나와 참지 못할 지경이다.
아래는 내가 기억하는 그 당시의 보도내용이다.
엄기영: 우리 언론사에 크나큰 발자취를 남긴 이득렬 사장이 오늘 오전 뇌일혈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위의 보도와 함께 이득렬의 지나간 행적에 대한 보도가 짤막하게 나가는 것으로 그의 사망에 대한 보도는 끝났다. 자사 사장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해명도 없이 뉴스 서두에 3-4분 정도 보도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는 것 자체가 그의 죽음에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MBC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전라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간부들의 대부분이 전라도것들로 교체되기 시작했다. 이득렬의 죽음은 MBC가 전라도화되는 과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현재 MBC 사장의 물망에 오르고 있는 엄기영의 파리 특파원 시절의 일화를 소개한다. 하루는 당시 앵커(이득렬로 기억함)가 파리 특파원을 연결했을 때 통화가 되지 않자 앵커는 당황을 했고 10여분 후 통화를 시도했을 때 그가 연결이 되었다. 아래는 내가 기억하는 그들의 대화다.
앵커: (화난 목소리로)엄특파원! 아까는 통화가 안 됐는데 뭐하고 있었죠?
엄기영: 잠시 놀다가 늦었습니다!
앵커: (어이가 없어서)?????!!!!!!
엄기영의 객기가 빚은 어처구니 없는 방송사고였다.
엄기영의 객기처럼 전라도 정권의 개 MBC는 지금도 독재정권 옹호와 왜곡보도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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