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중장년층에게 "박정희"라는 이름은 하나의 종교와 다를 바 없다. 만약 그들이 인터넷 사용인구의 다수를 차지했더라면, 지금쯤 인터넷은 박정의 前대통령을 찬양하는 자료들로 넘쳐흐르고도 남았을 것이다. 실제로 노인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박정희라는 이름은 거의 언제나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들과 합쳐져 등장하고는 한다. 그들은 박정희 前대통령에게 진정으로 존경과 감사를 느낀다.

박정희 前 대통령

한국의 현대사에서 이처럼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인물은 찾기 힘들 것이다.

확실한 것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박정희 前대통령만큼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반면 청년층의 견해는 이와 많이 다르다. 박정희 前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빈곤의 수렁에서 건져낸 공로는 인정하지만,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결국 "박정희는 나쁜 놈"이다 (물론 "늙은이들은 박정희 前대통령을 좋아하고, 젊은이들은 박정희 前대통령을 싫어한다"라는 무지막지한 이분법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주로 박정희 前대통령의 (인권유린을 수반한) 독재정치를 비판하며, 그의 친일행적과 그의 경제정책의 한계점 역시 비판하고는 한다.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와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극명한 대조처럼, 박정희라는 인간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남성(일명 품바열사)은 노인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는다.

저런 사람들에 대해 미국의 대법원장 루이스 브랜다이즈(1856-1941)는

"자유의 진정한 적은 선량하지만 무식한 열성분자들이다"라는 한 마디로 정리한 바 있다.

그러나 저 (막되먹은) 노랑머리 남성만 욕하지말라. 만약 저 노인이 다수였더라면 그도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른다.

지난 5월, 서울 시청 앞에서 벌어진 일을 듣고 나는 이 대립의 존재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故 노무현 前대통령의 영결식이 거행된 날,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중년 남성(이하 품바왕)이 한 명의 노인에게 욕설을 퍼붓는 동영상(바로 위의 동영상)이 게재되어 큰 파문이 일었다. 품바왕의 호통에서 박정희라는 이름은 또다시 언급되었다: "나이 먹었으면 나이값을 해! 당신들 선거하지 마! 선거하지 말라고! 박정희? 니미 씨발놈 새끼! 박정희 개새끼! 박근혜를 니미 씨발 존중하냐? 인간아!" 자, 생각해보자. 영결식이 진행되던 길 한복판에서 갑자기 박정희 前대통령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은 적다. 품바왕의 머리속에서는 "노인 = 박정희"라는 등식이 미리 성립되어 있었을 것이며, 그랬기 때문에 박정희에 대한 언급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품바왕은 노인을 "박정희교"의 신자로 본 것이고, 그에게 모욕을 퍼붓기 위해 그의 우상 박정희 前대통령을 모욕한 것이다 (노랑머리 남성은 "노무현교"의 신자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박정희 前대통령의 존재의 본질을 알 수 있다 - 박정희는 하나의 상징인 것이다. 품바왕은 노인의 존재, 그리고 노인이 주장하는 바를 박정희라는 상징에 가져다 붙였다. 그리고 박정희 前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이토록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이유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그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동일한 상징에 극단적으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저 노랑머리 남성을 위시한 청년층에게 박정희란 부정적 의미 - 독재, 인권 유린, 유신헌법, 철권통치 - 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렇다면 박정희를 지지하는 노인들은 박정희라는 상징에 어떤 의미를 결부시킬까? 찬찬히 생각해본 결과, 나는 노인들이 박정희 前대통령이라는 상징에 희망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왜 박정희라는 이름에 희망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을까? 나의 추론은 이렇다.

사실 추론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역사적 사실을 가만히 훝으면 지금의 노인들은 박정희 前 대통령 (이하 박정희)이라는 인물이 주는 희망에 자신들의 청춘을 걸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50세부터 90세까지의, 혹은 그 이상의 노인들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겪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대공황을 전후해서 태어났고, 잔혹한 식민통치와 태평양전쟁 말기의 수탈을 겪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전쟁이라는 최악의 비극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특히 한국 전쟁 직후의 시대는 그야말로 생존 자체가 고난이자 투쟁이었던 시절이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절망적인 언명이 진리로 받아들여졌을 정도였다. 남한의 적화를 막아낸 맥아더 원수 역시 전쟁으로 초토화되어버린 한반도를 돌아보며 이 땅이 전쟁의 상처에서 치유되는데 "한 세기는 걸릴 것이다"라고 장담했다. 내가 미국에서 만났던 한국전쟁 참전용사도 한국이 그렇게 빨리 재건에 성공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재건"이 아니라 "기적"이다). 그가 한국에서 보았던 것은 오로지 끝없는 빈곤과 절망 뿐이었다. 10살도 안 된 어린이들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깡통을 들고 거리를 부랑하고, 죽음과 범죄자들과 창녀들이 우글거리던 곳, 그곳이 바로 그가 본 서울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 한국인들의 진정한 고통은 지금의 추위와 배고픔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절망이었다.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의 한 조각 -

당시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 중 하나였으며,

필리핀보다도, 심지어 북한보다도 가난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는 경제를 운영할 산업기반 자체가 완전히 붕괴했었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일제가 남긴 산업시설을 기반으로 60년대까지는 남한을 경제적으로 앞지를 수 있었다.

박정희가 나타나기 직전의 상황(1961년)도 전쟁 직후와 별 다를 바 없이 비참했다. 4.19 혁명으로 자유당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권이 창출되었지만, "데모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치는 불안했고, 사람들은 지독하다 못해 살인적인 가난과 하루하루 싸워야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가 안 되었다). 그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던 사람들은 민주주의도, 자유도 아닌 밥과 안정을 갈구했다.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허황된 소리들은 어디까지나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보리고개가 과거의 기억이 아닌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었던 그 시절, 밥의 문제보다 중요한 문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독재정권이든, 왕이든, 하느님이건, 밥의 문제만 해결해준다면 그만이었다. 실제로 쿠테타가 발생한 바로 다음 날, 미8군 사령관 매그루더는 미국 합참의장 렘니처 대장에게 한국인 열 명 중 여섯 명 꼴로 쿠테타를 지지하고 있다는 요지의 전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만약 당신의 조부모의 생각을 당신이 이해할 수 없다면 그 분들이 에티오피아나 방글라데시에서 오신 분이라고 생각해보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육군 소장 박정희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과연 그의 6대 혁명 공약에는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 경제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이라는 공약이 들어있었다. 한 마디로 "우리가 밥을 해결해주겠다"라는 선언이었다.

5.16 혁명 당시 주한미국대사 마셜 그린의 1993년 인터뷰

MBC의 "제3공화국"이라는 역사 드라마에 삽입되었다.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매그루더는 운보선 대통령에게 "쿠테타군의 병력은 겨우 3천6백 정도이니,

이한림 장군의 제1군을 3만6천 정도만 동원해서 진압하자"라고 건의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런 작전은 수행되지 않았다.

윤보선 대통령은 무엇을 생각했던 것일까.

그저 문약해빠진 사람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아무 실권도 없는 대통령 자리에 염증을 느꼈던 것일까...

6개월 전만 하더라도, 위키피디아에서 한국의 경제를 찾아보면 이 그래프부터 나오고는 했다.

자세히 보면 대단히 어설픈 그래프이지만, 한국의 경제가 미증유의 기적을 달성했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박정희 前대통령은 그들에게 안정과 밥을 주는데 성공했다. 모래사장 뿐이던 포항에 제철소를 건설한다는 정신 나간 계획도,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미친 도전도 박정희는 기어코 성공시켰다. 세계은행도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던 (그리고 융자도 거부했던) 포항제철은 순식간에 세계 최고의 제철소 중 하나가 되었으며, 김영삼과 김대중이 그토록 반대한 경부고속도로는 국가의 대동맥이 되었다.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도 학부시절에 경제발전 자본을 마련하려는 박정희의 계획, 즉 한일국교정상화의 대가로 받아내는 대일식민통치보상금 수령에 반대한 바 있다. 군인들 특유의 무지막지한 추진력으로, 박정희는 결국 "조국근대화"라는 이상을 실현해냈다.

그러나 지도자가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국민들의 마음이 무너져 있으면 성과를 거두기 힘든 법이다. 어떻게 해서든 국민들에게 빈곤이라는 운명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뛰어갈 의지를 심어줘야만 했다. 이를 위해 박정희 前대통령은 국민들을 고무하는데 나치의 괴벨스와 쌍벽을 이룰 정도의 노력을 경주했다. 국민들을 고무시키기 위한 그와 그의 부하들의 노력은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라는 이 언명은 사실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위정자 계급이 "잘 먹고 잘 살자"고 국민들을 고무했던 적은 5000년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었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고 외치는 지도자에 감화된 당시의 젊은이들은, 즉 지금의 노인들은 열약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 정말 죽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온 몸이 부서져라고 일하면서 지금의 고생이 훗날의 행복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위로부터 희망이 주어졌던 시절이었다. 뭐라도 가지고 있는 지금이 잃을 것조차 없었던 과거보다는 나았고, 미래는 반드시 지금보다도 나아질 것이라는 그런 기대가 국민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이 기대는 공식적으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