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출생했다. 그는 세종대왕의 형으로 유명한 양녕대군의 16대손으로, 혈연 상으로는 조선 왕실의 종친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집안은 직계 7대조로부터 이승만에 이르기까지 벼슬에 오른 사람이나 생원·진사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몰락한 왕손 집안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왕족의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이승만의 내면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준 것으로 보이며, 후일 그가 미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대외적으로 왕족 의식을 표명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승만은 비교적 일찍부터 서구 문물에 눈을 떴고, 이를 바탕으로 1890년대부터 각종 개화 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1895년 미국 선교사들이 설립한 배재학당에 입학했으며, 1896년부터는 배재학당 내의 청년단체인 협성회에 적극 참여하고 이를 기반으로 언론·정치 분야의 청년 개혁가로 활동을 개시했다. 1898년에는 만민공동회에 연사로 참여하면서 독립협회 활동에 적극 가담했고, 『제국신문』의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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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군현 수를 기준으로 보면 1회에 배출되는 생원·진사 200명은 군현 단위에서는 상당히 희소하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생원·진사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그 분포를 보면 시기적으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서울 거주자의 비율이 37.4퍼센트를 넘은 점을 보아 지방 군현 차원에서 생원·진사의 배출 인원은 더욱 희소하였다고 하겠다. 실제로 생원·진사의 거주지별 통계를 보면 전체 군현의 절반 이상에서 평균 10년에 1명꼴로 합격자가 나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생원·진사시에 합격한다는 사실은 개인뿐만아니라 가문을 명예롭게 하는 것이었으며, 나아가 군현 차원에서도 큰 영예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향촌사회에서 대부분의 사족들은 문과뿐만 아니라문과가 어려울 때는 생원·진사시에 온 힘을 기울였다. 조선시대 생원·진사시 합격연령을 분석한 통계를 보면, 시기가 내려올수록 평균연령이 많아지고있다.
16세기 후반부터 평균연령이 30세를 넘었고, 생원의 경우 19세기 후반에는 평균연령이 40세 정도로 나타나는 등 합격연령이 상당히 늦다. 이토록 늦은 나이에 합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생원·진사시의 합격이 그만큼 어려웠으며 또한 생원·진사가 되기 위해서 일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수환 (2010). 조선 향촌사회 속의 생원진사. 한국사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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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집안에서 생원, 진사가 나오지 않았고, 다른 대통령들도 집안에 생원, 진사가 있었다는 자료는 없다.
다만 윤보선의 조상 중에 생원, 진사가 있었다고 한다.
집안 좋다고 소문난 이회창의 조상도 생원, 진사는 없다.
이회창의 집안은 일제시대 초에 그 집안 어른이 전부 정신차리라고 호통치고 매를 들어 훈육한 결과라고 한다.
필자의 친할아버지의 형님께서는1891년 (고종 28년) 증광시에서 17세의 나이로 생원에 급제하셨다.
위의 자료를 보면 생원에 급제하는 나이가 평균 40세라고 하는데 필자의 종조부는 10대 후반에
급제하셨으니 매우 총명하신 분이다.
생원이나 진사는 지방 유지의 가문에서 주로 나왔다고 한다.
필자의 친할아버지는 전주이씨 의안대군파 집성촌인 황해도 서흥에서 천석꾼이셨다.
그러므로 생원인 종조부도 마찬가지로 부유하셨다.
이념을 따질 때 필자의 생각으로는 150년 정도 계속 보수우익이어야 진짜 보수우익이라고 생각한다.
신흥 세력 중에는 이념을 마구 왔다갔다하는 일이 많아서 신뢰하기가 힘들다.
쿠베르탱이 창시한 근대 올림픽은 1896년 최초로 개최되었는데 이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보수우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올림픽과 함께 치부를 한 것은 신흥세력의 주장이다.
올림픽은 보수우익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인터넷 게시판에 조선시대와 관련된 글이 매우 많이 사라졌다.
박근혜는 신흥세력이지 조선시대와 관련된 정통 보수 우익 반공주의자가 아니다.
근대화가 좋기는 좋아도 그 근본을 중시하지 않으면 오늘날과 같은 이념의 대혼란이 나타난다.
그리고 박정희파는 대일개인청구권 자금을 당사자들에게 되돌려 주기를 바란다.
버스 운전사와 차장 같은 박정희와 박근혜의 삥땅을 왜 전통적인 보수우익 후손이 겪어야 하는가?
월남자로서 남한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든 정통 보수우익의 후손들이 너무 젊잖게 있는 듯하다.
글쓴이: 이은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