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발가벗기고 고문했다”
개그맨 서세원씨 매니저, 2002년 연예 비리 의혹 수사 당시 가혹 행위 폭로
월드컵 열기로 뜨겁던 2002년 여름. 국민의 눈과 귀는 축구장에서 연예계로 쏠렸다. ‘방송사 PD가 방송 출연을 미끼로 여자 연예인과 성관계를 가졌다’ ‘조직폭력배가 유명 연예인을 거느린 기획사 대표로 변신했다’ ‘조폭과 조폭 자금이 연예계를 접수했다’ ‘유명 연예인이 실세 정치인에게 정기적으로 여성 연예인을 성 상납하고 있다’. 연예인․조폭․뇌물․섹스가 흥미롭게 버무려진 연예계 비리는 단숨에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정계에 대한 연예인 성 상납과 조직폭력배 연계설 등 의혹의 정점에는 개그맨 서세원씨(49)가 있었다. 다음은 연예계 비리 당시 서씨 관련 기사다.
‘검찰은 개그맨 서세원씨가 대표로 있는 ‘서세원프로덕션’이 PD들에게 수천만원의 PR비를 제공한 혐의와 관련, 이날 오전 서세원프로덕션과 서씨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7월27일 조선일보)
‘검찰 관계자는 “개그맨 서세원씨가 대표로 있는 서세원 프로덕션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 조직폭력배 자금이 유입됐다는 첩보를 입수, 이 회사 직원들을 소환해 진위 여부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7월29일 조선일보)
‘서울지검 강력부(부장 김규헌)는 29일 서세원프로덕션에 강남 일대 조직폭력배의 자금이 일부 유입된 사실을 확인, 조만간 서세원씨를 소환할 방침이다.’ (7월29일 오마이뉴스)
‘서세원 프로덕션의 대표 개그맨 서세원이 지난달 30일 홍콩으로 돌연 출국해 KBS2 <서세원쇼>에 비상이 걸렸다.’ (동아일보 8월2일)
‘행방이 묘연한 서세원씨가 마카오 카지노장에서 도박을 즐기는 장면이 교민들에 의해 목격됐다.’(연합뉴스 8월12일)
‘지난달 말 홍콩으로 출국한 서세원씨는 출국 당시 검찰에 “3~4일 일정으로 다녀오겠다”고 한 후 소식이 끊긴 상태다. 검찰은 그동안 서씨가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 조직폭력배 자금이 유입됐다는 첩보에 대해서도 조사할 예정이다. 한편 검찰은 ‘연예인 성(性) 성납’ 의혹에 대해서도 폭넓게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월17일 조선일보)
‘서울지검 강력부(부장 이 삼)는 해외에 체류 중인 SM엔터테인먼트 대주주 이수만씨(50)와 인기 개그맨 서세원씨(46)에 대해 인터폴을 통해 수배를 의뢰하고 외교통상부를 통해 이들의 여권을 무효화했다고 14일 밝혔다.’ (2003년 1월15일 동아일보)
검찰에서 흘려주는 한마디에 언론은 달음질을 쳤다. 서세원씨는 “조․중․동 등 주요 신문들이 사실 확인 없이 검찰의 장단에만 춤을 추었다. <선데이 서울> 수준이었다”라고 말했다.
“머리채 잡고 개처럼 끌고다니며 폭행”
의혹은 어느새 기정 사실이 되어 있었다. 서세원씨가 해외로 도피 중인 상황이어서 사실 확인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범죄 혐의를 가릴 사법부의 판단에 앞서 여론의 판결은 이미 내려진 상태였다.
방송사 홈페이지를 비롯한 각종 포털 사이트 게시판은 서씨에 대한 욕으로 도배되었다. ‘조폭 대부가 조폭 돈으로 ‘조폭 마누라’를 찍었다’ ‘서세원이 ○○○를 ○○○ 전 장관에게 상납했다’ ‘서세원이 원조교제 합의금으로 10억원을 썼다’. 서씨에 대한 비방은 부인 서정희씨와 자식들에게까지도 이어졌다. 일부 네티즌은 서씨의 자식들이 명문 학교에 들어간 것을 두고 시비를 걸었다. ‘전교생 교복을 맞춰주고 학교에 들어갔다’와 ‘도서관을 지어주고 학교에 들어갔다’로 갈려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딸은 MIT 공대 수학과에 다니고, 아들은 일본 와세다 대학에 다닌다. 심지어 서정희씨와 자식들이 닮지 않았다며 친자가 아니라는 소리까지 나왔다. 상황은 통제할 수 없었다.
귀국 직후 허리 수술을 받은 서씨는 2003년 10월8일 구속되었다. 2001년 3～6월 서세원프로덕션을 운영하면서 영화 <조폭마누라>와 소속 연예인을 홍보하기 위해 방송사 PD 등에게 홍보비 8백만원을 건넨 혐의였다. 구속 직전 허위 세금계산서를 작성해 세금 3억7천만원을 포탈한 혐의가 추가되었다. 법원에서 서씨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서씨가 대표로 있는 (주)서세원 프로덕션은 벌금 1억5천만원형을 받았다.
2002년 10월 서울지검 강력부는 조직폭력배 사이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면서 고문을 해 피의자를 숨지게 했다.당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들이 현장 조사를 위해 서울지검을 방문한 모습.
하지만 검찰과 언론이 묘사했던 죄목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더구나 조직폭력배와 관련된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조폭자금 유입, 성 상납, 마카오 도박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한 검사는 “수사 과정에서 단서가 잡히지 않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 정도 혐의를 가지고 인터폴 수배까지 한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피의 사실을 지나치게 공표한 부분도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방송사 PD 3명에게 100만원, 3백만원, 4백만원 등 총 8백만원을 건넨 부분도 다툼의 여지가 많다. 서세원씨는 “연기자들이 돌아가면서 밥을 산 것을 뇌물이라고 하면 방송국에는 죄인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 일은 매니저 하씨의 독자적인 판단이었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더구나 검찰 수사 자체가 구타와 욕설 등 고문으로 얼룩졌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예상된다. 당시 서씨의 매니저이자 서세원 프로덕션의 이사였던 하 아무개씨(38)는 2002년 8월4일 아침부터 8월5일 저녁까지 검찰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씨는 “수사관들이 옷을 모두 벗기고 수갑을 뒤로 채운 채 무릎을 꿇린 후 무릎을 밟았다. 머리채를 잡고 개처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무지막지하게 폭행해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공판 검사가 증언 번복하라고 협박”
검찰청에서 풀려난 하씨는 바로 서울 강남의 방주병원에 6일간 입원했다. 진료 기록과 진단서에는 ‘양쪽 허벅지와 좌측 머리 뒷부분에 다발성 좌상의 소견 및 그로 인한 부종과 통증 및 운동장애 소견이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퇴원한 지 얼마 후 검찰은 다시 하씨를 불렀다. 조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었다. “허리 등이 왜 아팠는가요?” “원래 허리가 아파 군대를 면제받았고 어깨․목 등도 허리가 안 좋아 아팠던 것입니다.” “검찰에서 조사받으면서 구타 등으로 허리가 아픈 것인가요?” “아닙니다. 조사 중에 폭행을 당하거나 구타를 당한 일은 없습니다.” 하씨는 “왜 병원에 갔느냐고 수사관이 물어서 ‘맞아서 아프다’고 말했더니 욕을 하고 협박을 했다. 그래서 수사관이 쓴 그대로 조서에 사인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하씨는 서세원씨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진술을 했다. 하지만 하씨는 “공판 검사가 검사실로 세 차례나 불러 증언을 번복하지 않으면 위증죄로 구속하겠다고 협박했다”라고 말했다.
수사 검사 “가혹 행위를 하거나 본 적 없다”
지난 6월30일 서세원씨는 고문을 했다는 두 수사관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검찰의 과오를 검찰 스스로 명명백백하게 밝히라는 바람이라고 했다. 서세원씨는 “검찰이 힘 없는 사람의 인권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짓밟았다. 보복을 당할 것이라며 주위에서 만류했지만, 모든 것을 잃더라도 힘 없는 국민에게 검찰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고발했다”라고 말했다. 이덕우 변호사는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친일 경찰의 잔재에서 검찰이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몰라보고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는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 사안에 대해 말을 아끼며 사태를 파악 중이다. 당시 연예 비리 수사를 지휘했던 김규헌 서울고검 부장검사(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는 “고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국가 주요 범죄를 저지른 사범이나 조직폭력배도 아닌데 일개 매니저를 상대로 가혹 행위를 했다는 주장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매니저 하씨를 수사했던 청주지검 강여찬 부장검사는 “가혹 행위를 하거나 본 사실이 없다. 이 사건에 대해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씨 이외에도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연예계 인사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어 검찰은 곤란한 처지이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들과 수사관 거의 대부분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시사저널 주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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