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의 산물인 조서 대신 공판중심재판이 도입될 경우 검찰이 유명무실한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공판중심재판이냐 조서중심재판이냐를 사이에 두고 법원과 검찰 사이에 진검승부가 예상되고 있다. 그동안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아온 이유는 강압수사에 의하여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불공평관행 때문이었다. 재벌이나 권력자들은 아예 기소조차 하지 않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으나 수십만 원에 불과한 생계형사범에게는 청룡언월도로 엄벌해온 관행을 검찰당국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이미 법원과 검찰은 사법제도개혁추진위가 내놓은 공판중심주의재판도입을 위한 형사소송법개정안 때문에 한판 승부를 겨룬 바 있었다. 지난해 5월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을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형소법개정안을 사법제도개혁추진위가 내놓자 평검사집단이 발발하고 나선 것이다. 검찰은 증거능력이 전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며 펄쩍 뛰었고, 법원은 모든 것은 법정에서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양측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형사소송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므로 언제든 충돌재발은 불가피해 보인다.
대법원이 주장하는 공판중심재판이 도입되면 검찰조서는 절대적인 증거에서 피고인의 진술과 같은 주장에 그치게 된다. 검찰로서는 공판주도권을 빼앗기고 일방적으로 끌려가게 된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예컨대 뇌물이나 성범죄, 조직폭력범죄 등 은밀한 범죄의 경우 자백이 주요 증거가 되는데 재판정에서 진술을 번복할 경우 검찰수사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게 검찰의 논리다. 허위진술에 대한 처벌이나 증거확보를 위한 사전형량조정제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판중심재판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공판중심재판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은데 일방적으로 법원이 밀어붙인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공교롭게도 이용훈 대법원장의 지방순시 이후 영장기각률이 평균 15%에서 24%로 높아짐에 따라 검찰이 불만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검찰의 불만표출 움직임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평소소신인 검찰개혁의지에 대한 반발일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부터 대법원은 보수일색을 탈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대법원장은 대법관 8명을 제청하면서 고위법관을 중심으로 해오던 인선관행을 무시하고 40대의 노동법전문가인 김지형 서울고법부장판사와 2003년 대법관제청파문 당시 옷을 벗었던 박시환 변호사를 제청하는 파격인사를 단행한 바 있었다. 이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26일 취임사에서 사법부과거사청산을 약속했고 국민에게 끼친 심려에 대해 반성한다면서 잘못된 재판사례를 수집하라고 지시했었다. 이에 따라 1972부터 1987년 사이의 시국공안사건판결문 6500여건에 대한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유전무죄무전유죄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법원의 양형과 무분별한 영장발부가 문제라는 생각을 전부터 해왔다고 한다. 이 대법원장이 지난 2월 두산그룹 총수일가집행유예판결을 비판한 것도 유전무죄판결로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반영했다는 지적이다. 이 발언으로 재판권침해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일선지법에서 뇌물죄나 경제사범 등을 엄하게 처벌하는 양형기준을 마련하는 성과를 이끌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법개혁으로 유전무죄무전유죄관행이 사라지길 빌 뿐이다.
/이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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