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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호칼럼] 朴正熙 콤플렉스

홍준호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입력 : 2004.08.03 18:31 31'

▲ 홍준호 논설위원

요즘 말 많은 과거 청산작업은 1988년 13대 국회가 광주와 5공의 문제를 다룬 것이 그 시발이다. 그 이래 김대중 정부에 이르기까지 두 전직 대통령이 포승에 묶이고, 부당한 억압에 희생됐던 많은 이들의 명예가 회복됐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비도 많았고 숱한 곡절을 겪었지만, 바로 직전의 ‘살아 있는 역사’를 검증하고 청산의 대상으로 삼은 작업들이기에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역사였다.
이 정권 들어서 쏟아지는 과거사 캐기 목록은 어떤가. 동학농민혁명, 일제하 친일행위, 제주 4·3사건, 6·25전쟁 전후의 민간인 희생, 각종 의문사…. 이제는 대부분의 주역들이 이승을 떠난, 말 그대로의 과거사들이다. 그 100년 간의 근·현대사를 오늘의 잣대로 새로 재단하고 이를 위해 관(棺) 속의 사람들을 다시 지상으로 불러내는 일들을 ‘국가사업’으로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 시기 이 나라의 처지가 이미 십수년간 과거에 매달려온 것도 부족해 이제는 죽은 자들의 혼까지 불러내 외세와 독재에 ‘부역했냐 안했냐’를 따져야 할 그 어떤 절실한 이유라도 있다는 말인가.

일제를 겪지 않은 광복 이후 세대들이 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 따져보겠다는 친일문제는 일단 접어두자. ‘박정희’란 세 글자가 김영삼, 김대중 시절보다 이 정권 들어 더 빈번하게 유령처럼 떠도는 기막힌 현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박정희 시절 최대 피해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1999년 5월 13일 대구를 방문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이 6·25 이후 실의에 빠진 나라를 ‘우리도 하면 된다. 큰 공장 짓고, 세계 속에 우리 물건을 팔 수도 있고, 고속도로도 놓을 수 있다’고 국민에게 자신감을 부여해준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근대화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민주주의를 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것을 병행해야 한다는 게 진리다.”

이어 그가 내린 결론이다. “미국은 200년 역사지만 국민 마음 속에 대들보 같은 지도자, 워싱턴·제퍼슨·링컨·케네디 같은 사람을 갖고 있다. 우리는 훨씬 많은 역사를 가졌으면서도 그런 지도자는 세종대왕, 이순신 정도를 말하고 있다. 정부 수립 후 전체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는 없다. 박 전 대통령까지 이렇게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는 역사 속에서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이미 그때 박정희시대를 ‘역사’ 속으로 놓아주어도 될 때라고 여긴 것이다. 이를 두고 선거를 앞둔 ‘동진(東進)정책’의 일환으로 사시(斜視)하는 시각도 없지 않았으나 어쨌든 그는 박정희기념관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고자 했다.

이렇듯 누구보다 그 시절을 잘 알고 가장 반대편에 섰던 이가 기념관 속으로 보내려 한 박정희시대를 이 정권이 다시금 끄집어내는 사이 기념관 얘기는 대신 소리 없이 땅 속에 묻히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친일, 반공, 유신의 독재자였고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그 시대의 유산들을 밝혀내지 않고는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이유에서라고 말한다.

이상한 것은 이토록 박정희시대에 거품을 무는 이 정부가 추진 중인 수도 이전이나 자주 국방 등 핵심적인 정책들은 30년 전 그 시대를 연상시킨다는 사실이다. 따라 하고 싶은 건 흉내내고, 욕할 일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때리려 하는 이중심리, 일종의 ‘박정희 콤플렉스’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고 항간의 추론대로 오로지 박 전 대통령 딸의 정치적 성장 때문에 여권이 이러는 것이라면 새삼 시비할 가치조차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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