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력 재력가로 행세하면서 해외자본 투자를 유치해주겠다고 속여 벤처기업 등으로 부터 거액을 가로채고 여교수와 사기 결혼까지 한 '희대'의 사기범이 경찰에 검거됐다.
21일 경찰이 구속한 이모씨(46)의 사기 행각은 한편의 영화를 연상하게 한다.
지난 94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이씨는 미국에서 여권 위조로 처벌받자 2000년에 국내로 들어와 본격적인 사기 행각을 시작한다.
이씨는 지난해 초 서울에 유령 펀드회사를 차린 뒤 자신을 미국의 유명 투자회사 아시아 지역 책임자라고 속여 벤처기업과 부동산 임대업자, 회계법인 관계자들을 접촉했다.
"골프장 건설과 미군 기지 인근 개발 등에 해외자본 투자를 유치해주겠다"며 수수료 명목으로 11억원을 받아 가로챘다. "1억 5천만달러가 들어있다"며 미국은행의 잔고증명과 수표 등을 위조해 피해자들을 믿게 했다.
미국서 위조여권 처벌 받고 한국 와서 본격적인 사기 행각
위조한 서류는 미국 항공 운송편으로 송부된 다른 컴퓨터 수입 서류 등과 함께 보여주면서 미국 본사에서 직접 보낸 문서로 위장했다.
또 실제로 미국인인 동생의 처를 대주주의 딸이라고 속인 다음 피해자들에게 "투자금을 본사에 직접 입금해야 한다"면서 동생 처 계좌로 입금시키도록 했다.
이씨는 사기로 가로챈 돈으로 유력 재력가로 변신했다.
강남에 고급 사무실을 차린 뒤 국내 유명 대학원 출신 직원 10여명을 고용하고 고급 외제차 2대를 굴렸다.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서초동의 36평형 고급 아파트에서 월세 280여만원을 주고 살고 있다.
특히 전직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 교수 등이 참여하는 고급 사교클럽에도 가입했다.
가입 절차가 까다로웠지만 친분있는 회원의 소개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이와함께 기업 인수합병 전문가와 회계법인 등과 실제로 업무 제휴계약까지 체결하고 주한 외국투자기관 협의회 회원사로 등록까지 했다.
지난달에는 기혼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유명 사립대학 여자 교수와 결혼까지 했다. 미국에서 전화하는 것 처럼 속이기 위해 인터넷 전화까지 사용할 정도로 이씨의 사기 행각은 교묘하고도 치밀했다.
경찰조사결과 여교수는 물론 측근들까지 4-5년동안 이씨의 실체를 전혀 알지 못했다.
사기 결혼 4-5년 동안 몰라…경찰, "화려한 겉모습 보고 쉽게 속아 넘어갔다"
이씨는 182센티미터의 훤칠한 키에 미남형은 아니지만 호남형으로, 경찰 관계자는 "모 중견 탤런트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서울청 외사2계 진정무 계장은 "피해자들은 이씨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쉽게 속아 넘어갔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공모 여부를 수사하고 있으며, 같은 수법의 사기 행각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한편 이같은 이씨의 화려한 사기행각은 한 피해자의 제보로 덜미가 잡혔다.
CBS 사회부 도성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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