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차기 대통령이 되려면...

노무현 탄핵의 후폭풍에 휘말려 생존자체가 불투명했던 한나라당이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박근혜의 공로다. 이후 재보선 40:0의 대승과 당 지지율을 40%대로 끌어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박근혜의 공로다. 요컨대 오늘의 한나라당은 박근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문제는 그렇게해서 한나라당이 정상궤도에 오른 이후, 박근혜의 행보다.

당시 박근혜는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였다. 한나라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주역으로서의 당연한 보상이었다. 당에 대한 공로로만 따지자면 박근혜를 따라 올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정치판은 그런 단선적인 계산법에 의하여 움직여지지 않는다. 공부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가장 크게 출세하는 것이 아니듯이 당에 대한 공헌도가 가장 높다하여 그가 꼭 대통령 후보가 되란 법은 없다.

박근혜의 열정과 헌신으로 한나라당이 정상궤도에 올랐다면 그 자체가 박근혜의 명예인 것이다. 그 명예가 꼭 대통령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되려 박근혜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다. 박근혜가 다 죽어가는 한나라당을 살렸고, 그래서 한나라당이 오늘날 정상궤도에 올랐다면, 박근혜는 주어진 임무를 100% 달성한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그녀만의 명예와 자랑이다.

박정희의 명예는 대한민국의 산업화였다. 그러나 산업화되어 먹고 살만해진 국민들은 민주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의식주의 욕구가 채워지자 다른 욕구에 눈을 뜬 것이다. 그러나 그런 국민들을 배은망덕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유신헌법은 인간의 본성을 물리적으로 억압한 독재적 발상이었고, 그것은 결국 10.26 사태라는 비극을 낳게 되었다.

한 사람이 모든 걸 다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장본인은 모세였고, 당연히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여호수아에게 맡기신다. 모세가 여호수아보다 열등한 인물이기 때문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주어진 역할이 다를 뿐이다. 모세의 측근들이 볼 때는 "어디 감히 여호수아를 모세에게 견주느냐?" 고 불쾌해 하겠지만 그건 진영논리에 갇힌 그들만의 원성일 뿐이다.

당을 살린 박근혜 못지않게 서울시장직을 훌륭하게 수행한 이명박 역시 출중한 대통령 감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의 정권탈환에 사활을 걸다시피한 보수우파는 두 사람이 공정한 경선을 거쳐서 끝까지 함께 가기를 열망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어딜 감히 이명박 따위를 근혜님께 견주느냐?" 며 박근혜가 아니면 다 필요없다는 식의 횡포가 우파의 전체 분위기에 찬물을 확 끼얹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면 그녀가 실패한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모세가 실패한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모세를 여호수아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보수우파의 정권탈환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 박근혜의 공로와 명예는 대통령 자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박근혜가 그런 순수함을 끝까지 지켜주길 바랬다.

그러나 막상 이명박과 박근혜의 경선이 시작되자 박근혜 측의 네거티브가 활화산처럼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들은 당시 열우당이 문제 삼았던 BBK와 도곡동 땅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급기야는 박근혜의 입에서까지 "도곡동 땅이 누구 땅이냐?" 라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정권연장에 혈안이 된 친북좌파들의 기획된 모함에 박근혜까지 들러리를 선 꼴이었다.

이명박은 경선기간 내내 박근혜에 대하여 일체의 비난을 삼갔다. 지지율이 많이 앞서 나갔던 여유도 있었겠지만, 그의 맨탈리티가 원래 그렇다. 상대가 워낙 심하게 나올 땐 "해도 해도 정말 너무 한다" 라고 탄식을 토했을 뿐이다. 이명박에 대한 숱한 네거티브는 결국 카더라성 유언비어로 밝혀졌고, 이명박은 정동영에게 500만표차 이상의 대승을 거두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렇게 국민들의 직접 선거에 의하여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지만,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인정치 않는 세 부류가 있다. 장군님 만세족, 슨상님 만세족, 그리고 근혜님 만세족이다. 저들은 이 대통령의 취임 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이명박의 발목잡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국가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저들은 나라야 망하든 말든 오로지 정략적인 이해득실에 몰두하여 계산기를 두드리기에 여념이 없다.

김정일은 개성공단을 철수시키며 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압박하고 있고, 김대중은 민주당과 민노당이 결집하여 반정부투쟁을 벌일 것을 선동하고 있고, 박근혜는 수도권 규제철폐를 반대하며 각을 세우고 있다. 김무성은 박근혜가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는 자리에서 축사를 통해 "아름다운 승복은 있었지만 아름다운 동행은 없었다" 라고 말했다.

나는 김무성의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렇다. 아름다운 승복은 있었지만 아름다운 동행은 없었다. 박근혜의 경선승복은 아름다웠으나 그 이후의 박근혜의 행보는 그녀의 경선승복이 단지 팬 관리차원의 립서비스에 불과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경선 이후, 親朴세력의 규합과 확산, 그리고 차기 대통령의 몽상에 젖어 보편적인 사고체계에 혼선이 생긴 것처럼 이상한 언동을 보였다.

박근혜는 지난 총선에서 박사모가 강기갑을 밀어 줄 때 일언반구도 없었고, 촛불난동이 한창일 때 미국과의 쇠고기 재협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아름다운 동행을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 이명박과의 경선에서 쌓인 구원(舊怨)이 그녀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고 치자. 그러나 그걸 극복하지 못하면 그녀가 바라는 차기 대통령의 꿈은 단지 복수심의 발로일 뿐이다.

박근혜가 위기에 놓인 한나라당을 구해내고, 재보선 40:0이라는 전대미문의 쾌거를 거두고, 한나라당 지지율을 50% 가까이 끌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사심없는 애국심이 국민들의 가슴에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그 순수함은 경선 때부터 빛을 바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곧 원칙이며 무오류라는 듯한 인상을 주기 시작했다.

우리 국민들은 박근혜의 순수한 애국심을 좋아했지 완벽주의에 빠진 공주님을 좋아한 게 아니다. 박근혜는 초심으로 돌아와야 한다. 얼마 전, 그녀가 정치학 박사학위 수여 인사말에서 했던 내용들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그 발언들이 왠지 허탈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최근 행동들과는 너무나 유리된 '원칙론'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차기 대통령을 꿈꾼다면, 그녀는 현재 이 나라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며,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자신을 神처럼 떠받드는 측근들에 둘러싸여 허망한 욕망에 재를 사르는 어리석은 착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제부터는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하여 사심없이 헌신해야 한다. 그럴 때 이명박 정부의 성공은 그녀의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