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 스스로 포로가 되다
지난 4월15일 17대 총선에서 '박근혜 바람'을 일으킬 때만 해도 박근혜 대표는 한나라당의 구세주였다. 최소한 한나라당의 분위기가 그랬고, 사실 한나라당은 박 대표 덕에 살아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수구언론의 지원과 박 대표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드롬이 작용한 것은 물론이다. 망국적 신(新)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린 것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후폭풍을 맞고 몰락하던 한나라당으로서는 박근혜 대표야말로 은인이었다. 그런데 요즘 '박근혜호(號)'가 난기류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의 간판으로 화려하게 나선지 6개월만이다. 표면상으로는 최근 국가보안법(국보법)에 관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내용이 발단이다.
그는 9월20일 인터뷰에서 "국보법의 정부참칭 조항을 고치고 법이름을 바꾸는 것도 논의할 수 있다"고 얘기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당내 강경 보수파의 반발이 거세지자 박 대표는 "언론에서 앞서간 부분이 있다"며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고 개정은 논의해볼 수 있다는 당초 태도에서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발을 뺐다.
박 대표의 이같은 태도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지난 총선 이후 그의 태도는 적지 않은 변화와 혼란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박 대표는 17대 총선 직후부터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게 정치권의 당리당략적 정쟁과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5월초에는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과 만나 '상생의 정치'을 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당시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의 분위기도 이와 궤를 같이 했다.여야간 최대 쟁점중의 하나인 대북(對北)정책도 상호 접근의 기미를 보였다. 한나라당은 지난 4월말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연찬회에서 '경제협력과 인도적 배려를 통한 따뜻한 대북정책'을 구체적인 실천공약으로 내세웠다. 박 대표 역시 북한에 대한 호의와 함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교류가능성을 내비칠 정도였다. 그러나 상생의 정치는 구두선에 불과했다. 그 이유가 딱히 박근혜 대표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총선 이후 계속돼온 갖가지 여야의 맞불작전으로 대결국면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중 박 대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게 과거사 규명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과 독재 행위가 박 대표에게 위기의식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박 대표는 결국 이 '원죄'의 굴레에 대한 대항마로 "용공과 친북활동도 대상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박 대표의 `원죄'를 탓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과거사 문제야말로 그가 진정으로 나서 극복해야 할 사안이었다는 점이다. 박 대표가 용공과 친북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불행히도 역사에 대한 이해부족이자 정치적 패착으로 보인다.
박 대표의 행보는 이미 '국가 정체성' 논란으로 역사인식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의문사 진상규명과 북방한계선(NLL) 논란에 대한 색깔론적 접근 등은 물론 송두율 교수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 등에 이르기까지 박 대표는 수구언론과 당내 강경 보수세력의 포로가 되는 길을 택한 셈이다. 그는 지난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압도적 지지로 대표에 재선된 이후 이 과거지향적 굴레를 2007년의 대통령직의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합헌적 정권을 앞에 두고 "헌법을 지키지 못하면 대한민국이라는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박 대표는 주장하기도 했다. 필부필부라면 몰라도 제1야당의 대표가 할 얘기는 아니다. 수구세력은 이미 노무현 정권뿐 아니라 박 대표의 발목을 잡기에 이르렀다.
박 대표의 애매모호한 국보법 발언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명확하지 않은 태도 등이 그 배경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표가 스스로 그들의 포로로 남는 한 더욱 힘든 내부싸움을 벌여야 할지 모른다. 그들을 향해 "내가 얼굴마담이냐"고 소리친들 무슨 소용이랴. 누가 '박근혜 일병'을 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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