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사기꾼의 공통 점을 말하며 정치를 비꼬는 정치유머가 있다. 현실에서 정치인과 사기꾼은 엄연히 다르다. 정치인은 꿈꾸는 사람이고 사기꾼은 꿈을 파는 사람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기꾼은 다른 사람에게 허황된 꿈을 팔아 자신의 욕망을 채운다. 반면 정치인은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버리고 다수의 행복, 즉 공동 선을 위해 노력한다.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의 전주 덕진 출마 선언으로 민주당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당내반발에도 불구하고 정 전 장관은 ‘정치는 축복이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도구’라며 정치복귀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영 전 장관이 사기꾼이 되지 않으려면 최소한 다음 3가지 질문에 납득할만한 답변을 해야 한다.
# 왜 정동영이어야만 하는가?
1년 전 정동영과 지금의 정동영은 변한 게 없다. 그때 그 사람이다. 책임정치를 하겠다고 떠난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 전 장관은 정치적 책임의 유효기간을 스스로 정하면서 정치적 재기를 꿈꾸고 있다.
정 전 장관은 “이번에 또 정치를 시작했고 정치적 모태인 전주 덕진에서 기회를 얻어 원내에 들어가게 되면 당에 역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정부여당의 헛발질에도 민주당의 지지율은 요지부동인 상황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엔 정치스타가 없기 때문에 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정 전 장관이 던진 메시지의 핵심이다.
한나라당에는 박근혜와 같은 정치적 스타가 있지만 민주당에는 그런 스타가 없고 자신만한 정치스타가 없음을 지적하는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참혹한 과거를 입다문 채 화려했던 자신의 과거를 들먹이며 정 전 장관은 자신의 가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동시에 한나라당 박근혜와 대적할만한 민주당내 정치스타는 자신뿐임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내 정치스타 부재의 틈을 파고들어 정치적 복귀를 하려는 전략적 수사이다.
그러나 왜 정동영인가에 대해 국민들은 의아해하고 있으며 민주당 권력은 정동영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정치인의 존재이유는 정당의 상황에서 찾는 게 아니라 국민 속에서 찾아야 한다. 한마디로 정 전 장관은 어느 쪽으로부터도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다.
# 왜 지금인가?
이 질문에 정 전 장관은 위기상황론을 편다. 나라가 힘들고 민주당이 위기라는 것이다. 난세가 영웅을 부른다고 하지만 정 전 장관에게는 해당 사항이 아니듯 하다. 현 경제위기와 MB정권에 대한 불신 상황의 반사이익을 노려 정치복귀를 하는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정 전 장관은 경제가 다시 살아나면 자신이 정치 복귀할 틈이 없어질 거라는 판단이 있었고 지금이 적기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정 전 장관의 정치복귀는 또 다른 정치적 위기를 부른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이 있는 국민들에게 대선, 총선에서 참패한 정 전 장관은 국민들로부터 신임 받지 못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기회주의적이고 명분 없는 정치를 하는 정치인의 출현은 국민들의 정치불신만 가중시킬 따름이다.
지금 정 전 장관의 정치복귀가 명분이 있으려면 현 경제위기에 대한 분명한 해법을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하고, 그 다음에 정 전 장관이 국민들의 지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정 전 장관을 부를 경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 왜 전주인가?
정 전 장관은 “어려운 상황에서 제일 먼저 몸을 던진 사람이 나이고, 제1당을 만드는데 선봉에 선 것은 물론 의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다”며 당을 위한 자신의 희생을 토로하였다.
당을 위해 초개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정 전 장관은 정작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던가? 국민을 위한 정치가 큰 정치라면 당을 위한 정치는 작은 정치이다. 대권후보였던 정 전 장관이 작은 정치에 연연하는 것은 보기에 흉하다.
통합은 지금 모든 정치인들이 실현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가치이다. 통합은 작은 정치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지역주의 극복과 같은 큰 정치가 없으면 불가능한 가치이다.
그런데 정 전 장관의 전주출마는 지역주의라는 미이라의 부활이고 오래된 정치 무덤을 파내어 3김 시대 유물을 꺼내는 도굴꾼이나 하는 짓이다.
이 나라를 위해 다시 큰 정치를 해야겠다면 정 전 장관은 대구경북에 출마하여야 한다. 그럴 용기가 없다면 시대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맞다. 개인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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