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의 전모가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가운데, 범인 지충호(50) 씨의 범행 동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적 의도를 가진 ‘정치테러’인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이 벌인 ‘돌출행동’인지에 따라 정국에 큰 파장을 몰고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이미 이번 사건을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으로 규정하고 지씨의 배후를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우발범행으로 판단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적지 않다. 15년가량을 교도소에서 지낸 인물이 사전에 박 대표의 일정을 파악하고 범행을 계획했다는 사실이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고, 사건 현장에서 지씨의 범행에 동조하는 인물이 있었다는 증언도 잇따르는 등 풀리지 않는 의혹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정치테러인가, 우발범행인가=경찰은 일단 지씨의 범행을 ‘비정치적인’ 돌출행동이라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1991년부터 14년4개월 동안 교도소 복역을 했고, 사회에 대한 불만을 여러 국가기관에 호소했지만 외면당하자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는 게 경찰의 얘기다. 지씨가 당뇨병을 앓고 있는 데다 가족과 왕래가 없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살고 있다는 점도 우발범행이란 분석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지씨의 전력과 범행 수법을 보면 한나라당이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는 ‘정치테러’ 의혹을 무시할 수 없다. 경찰 조사 결과, 지씨는 범행 당일(20일)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 일정을 미리 파악하고 자신의 집인 인천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왔고, 범행 도구인 문구용 커터도 미리 준비했다.

특히 지씨가 지난해 12월 사립학교법 개정 장외투쟁 중인 한나라당의 유세 현장을 찾아가 곽성문 의원을 폭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점은 이번 사건에서 정치색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특히 지씨는 지난 4월 새로 구입한 DMB폰으로 2~3명과 집중 통화, 정치적 목적을 가진 배후의 개입에 대한 의혹을 낳고 있다.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지씨가 수사를 받고 있는데도 ‘010-XXX-XXXX’의 발신번호로 수차례 전화가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 번호는 결번으로 나와 해당 전화번호의 주인이 범행 후 전화번호를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불만을 왜 야당 대표에게 풀려 했나=사회불만과 국가권력에 의한 피해망상을 갖고 있는 범인이 범행 대상을 야당 대표로 삼았다는 점도 의혹을 증폭시킨다. 보통 이런 사건의 피의자는 불특정다수나 공공시설 또는 청와대 국회 등과 같은 권력기관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상례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지씨는 특히 ▷15년가량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교도관 등을 자주 폭행한 전력이 있는 데다 ▷박 대표에게 상해를 입힌 정도가 자칫 생명을 위협할 수준이었고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지씨의 휴대전화로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으로부터 계속 전화가 왔다는 점 등도 이번 사건의 ‘성격’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됐을 것이란 추측을 낳는다.

▶공범관계는=지씨가 단독으로 테러를 감행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는 경찰에서 혼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지만, 현장에 있었던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지씨의 범행 뒤에 3~4명이 “죽여라, 죽여”라며 독려하는 소리를 질렀다며, 공범이 존재할 것이라고 강하게 맞서고 있다.

또 수사 결과, 지씨가 범행 전에 인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6개를 구입했다고 진술, 범행 현장에 공범이 있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경찰은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소란을 피운 박모 씨는 지씨와의 공모 가능성이 낮다고 결론지은 상태지만 현장에 있었던 동조세력에 대한 신병을 확보하지 못해 공범 존재 여부에 대해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홍성원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