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쌓였는데… 팔짱낀 ‘조정회의’
[조선일보] 2006년 06월 10일(토)
[조선일보 정혜전기자]지난 4월 21일 오전 8시 30분 과천 정부청사 재정경제부 7층 대회의실. 한덕수(韓悳洙)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주재로 ‘경제정책조정회의’가 열렸다. 복지부·기획예산처 장관, 공정거래위원장, 산자부·건교부 차관 등 총 15명의 장·차관들이 참석한 이 회의의 안건은 ▲퇴직연금제 추진 현황 ▲올해 수해 대비 대책 ▲1분기 정부조달사업 실적 등이었다. 일주일 뒤인 28일 한 부총리 주재로 경제정책조정회의가 또 열렸고 이날 안건은 ‘일자리 창출 대책 종합보고’였다. 지난달 하순 한국경제를 뒤흔든 경제이슈는 환율과 유가였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8년6개월 만에 930원대로 떨어지자 금융시장이 요동쳤고 수출기업들은 비명을 질렀다. 국제유가도 배럴당 68달러(두바이유 기준)를 돌파하며 연일 사상최고치 행진을 거듭했다. 고유가, 원화 강세, 금리인상 등 ‘신3고(高)’의 먹구름이 한국경제를 뒤덮는 상황인데도 정작 극복대책을 논의해야 할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선 핵심 이슈가 계속 빠져 있었다.
◆무력화된 정부 경제팀
올 들어 11차례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가 대개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 ‘부동산 버블(거품) 붕괴론’으로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던 지난달 26일, 이 회의에서 15명의 장관들이 1시간30분 가량 논의한 안건은 ▲한류 짝퉁 피해 방안과 ▲국가환경지수 제고 방안이었다. 이번 지방선거 후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등에서 논란이 일었던 부동산 정책 수정 여부도 경제정책조정회의 테이블에는 안건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이처럼 경제정책조정회의가 핵심을 다루지 못하고 겉도는 것은 좌장인 경제부총리(재경부 장관)의 힘이 빠져 주요 정책방향을 결정할 영향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서강대 김광두 교수는 “청와대, 여당, 총리실 등이 부동산 정책 등 중요 이슈들을 독점하다보니 경제정책조정회의가 그 기능을 상실했다”면서 “경제팀의 맏형 격인 재경부는 실무적인 일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경제팀의 수장인 한덕수 부총리의 리더십 부족도 거론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 이헌재 전 부총리는 대통령 주변의 386세력들과 싸워가며 외부 입김을 견제했는데 지금은 그런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측은 “경제정책조정회의가 법안 개정을 위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필수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안건이 올라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정책 컨트롤 타워 재정립해야
우리나라 경제정책라인은 경제 부총리~청와대 정책실~여당 정책위원회가 중심축이다. 과거에도 청와대와 여당이 주요 사안에 대해선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해왔지만 재경부(경제 부총리)가 주요 현안을 직접 챙기며 지휘탑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비대해진 청와대 위원회들이 정책 방향은 물론 정책수단까지 챙기고, 이해찬 전 총리 때부터 총리실의 입김이 막강해졌다. 게다가 복지부·노동부 등의 정치인 출신 장관들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재경부의 정책조율 기능이 크게 약해졌다. 이 때문에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개방, 기업, 교육정책 등에서 혼선이 생기고 정책 효율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한양대 나성린 교수는 “청와대와 위원회들은 장기적인 비전만 제시하고 재경부가 중·단기적인 정책들을 주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정책혼선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정혜전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cooljj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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