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 무책임한 재신임 발언에 대한 저의 입장
국회의원 김 형 오
노무현 대통령의 돌발적인 재신임 발언으로 정국이 또다시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임기 8개월 된 대통령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식 밖의 발언이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실상 하야 성명으로까지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번 발언은 총체적 국정난맥과 측근들의 부패로 궁지에 몰린 현 난국을 돌파해보려는 '노무현식 충격 정치'에 불과하다. 임기 8개월만에 국민지지도가 20%대로 주저앉자 사실상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힘들어진 상황에서 국민을 상대로 일종의 도박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발언의 직접적인 계기로 최도술씨의 거액 뇌물수수사건을 언급했다. 정권의 도덕성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도술씨의 비리건에 관해서는 검찰 수사를 기다리지 말고 대통령 스스로 알고있는 모든 것을 국민 앞에 솔직히 고백하고 사죄할 것은 사죄하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헌법이 정한바대로 임기 후에 적법한 절차를 밟으면 된다.
현행 헌법상 탄핵소추 외에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책임을 물을 법적 장치는 없다. 헌법 제72조에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것이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때문에 야당의 일각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돌출발언을 계기로 즉각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초법적 발상으로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절차의 정당성을 무시하고 정략적 차원에서 자칫 권력만 탐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대중정치를 동원한 정면돌파의 노림수라는 지적도 있다.
국회의원 총선거가 내년 4월이다. 총선이 바로 노무현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이며 재신임을 묻는 정치적 행위다. 총선을 통해 심판받으면 된다. 그러나 이것도 법률적으로 교묘히 회피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노대통령은 무당적 상태이다. 그래서 어느당을 통해 심판하기가 어렵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그가 지금이라도 정상적으로 신당행을 선언하고 신당이 내년선거에 안정의석을 얻지 못하면 국민으로부터 불신임받은 것으로 알고 물러나야 한다. 신당도 더 이상 애매모호한 말로 회피하지 말고 정정당당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대통령이 재신임 받겠다고 하는 발상자체를 찬성하기 어렵지만 굳이 재신임 받겠다면 이 방법이 그래도 가장 나을 것이다. 최도술씨 문제는 이와 별도로 엄정하고 신속한 사법절차를 밟아야 한다. 아무래도 최도술 비자금 불똥이 대통령으로 비화되는 것을 사전차단하기 위한 승부수라는 세간의 의혹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당당하게 이 문제에 임해야 한다.
노대통령이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한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재신임에 관해 공론에 부쳐 적절한 안을 찾겠다 말했지만 벌써부터 각 당이 정파적 이해관계를 따지며 심각한 국론분열만 초래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시간을 끌며 국민을 지치게 하여 정치권전체를 정치불신으로 몰아가서 어물쩡 넘어가고자 하는 의도라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도 고개를 들것이다. 한나라당과 언론으로 비판의 화살을 돌릴 수도 있다.
현행 헌법 하에서 프랑스 드골대통령의 예처럼 정책과 연계하여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해도 불신임 방식과 기준 등에 대한 규정도 없어 현실적으로 사퇴여부는 결국 대통령 스스로 정치적 결단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법률가 출신인 노 대통령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무책임한 선언을 내부 의논도 없이 불과 하루 이틀사이에 결심했다고 한다. 국민들의 입에서 대통령 잘못 뽑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이제 사실상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정상적인 국정수행이 어렵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이미 임기가 끝난 대통령이나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사태를 즐기거나 이용하고자하는 어떠한 기도도 경계해야 한다.
정치권은 이 사태를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노무현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안겨줄 기폭제이기 때문이다. 국가 대외 신인도 추락과 통치권의 누수로 인한 국정혼란을 막아야한다. 대통령의 이번 돌출발언으로 정국이 극도로 불투명해진 상황이 내년 총선 정국과 맞물려 정치권에 또다시 태풍처럼 몰아친다면 대한민국은 어디로 흘러가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은 대통령 스스로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정치적 파산선고 행위이다. 벼랑끝으로 국민을 몰고가서 억지로 동의를 구하는 방식이 더 이상 통해서는 안된다. 자기의 안위를 위해서, 자신의 방법으로 국민을 불안 속으로 제발 몰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국가적 불행이다.
국민 앞에 선언한 정치적 약속이니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이다. 더 이상 정치권 전체가 이문제로 소용돌이에 빠지고 국정혼란이 가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 문제의 매듭은 대통령 자신밖에 풀 수 없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국민과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2003. 10. 11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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