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선배분에게 김 칠섭 소령의 사고 소식을 듣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너무나 좋아했던 친구이자 동기생이었기에 아니 사실 김 소령을 존경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항상,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고 솔선하던 김 소령의 모습은 저에게는 하나의 지표와 같았습니다. 평상시의 생활로 봐서 그런 상황에서의 김 소령이라면 아마도 그랬을 것이란 생각과 함께 너무나 가슴이 아파옵니다.
이제는 너무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동기생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동기생의 기억을 여러분들에게 알리기에 앞서 그 기억들을 제 머릿속에 뚜렷이 각인시켜 놓으려 이 글을 씁니다.
92년 3월 O.B.C(육군 기초 군사 훈련반으로 소대장 임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이 이루어집니다)교육을 위해 광주에 있는 육군 보병학교에 입교했을 때가 김 소령과의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그리운 그 시절이지만, 그 때 당시에는 조금은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훈련에 모두들 지쳐있었으니까요. 교육 기간 중 모두들 피곤해있던 어느 날 같은 내무반의 동기생들끼리 담당 구역의 청소 문제로 다툼이 생겼습니다. 아마 너는 왜 청소 시간에는 어디 가서 청소를 소홀히 하느냐, 왜 어떤 사람만 청소를 하느냐 뭐 이런 다툼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렇게 서로 티격태격 다투고 있는데, 당시 김 칠섭 소위가 싸우고 있는 동기생들 사이에 끼어들어 얘들아 싸우지들 마라, 담당 구역 청소는 나 혼자 다 할테니 제발 싸우지들 말라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찌나 제 자신이 부끄럽던지……
김 소령과 저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소대장 교육을 마치고 같은 대대에 소대장으로 명령을 받았습니다. 김 소령은 언제나 저보다 앞서 나갔고 누구보다도 군 생활에 열심이었습니다. 특히나 부러웠던 것은 소대장 보직을 마치고 대대 교육장교로 보직 변경을 명령받았을 때 당시 김 칠섭 중위가 담당하고 있던 소대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가지 않으시면 안되냐고 했던 모습에 전 솔직히 질투를 느껴야만 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려야 할 내용이 있네요. 당시 제가 군 생활을 했던 90년대 초․중반에는 군의 민주화라고 해서 兵主主義라는 슬로건이 한창 유행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전령이라고 불리우는 통신병들이 타주던 밥도 장교들이 직접 타다 먹으라는 지시가 수시로 내려오던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움직임에 찬성하는 입장이고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좀 다른 측면에서 이 일화를 소개해야겠습니다. 김 소령은 대대 교육장교로 저는 대대 정보장교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정보 장교, 교육 장교는 간혹 저녁 늦게까지 작업을 해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러다보니 대대 취사장에서 같이 식사를 하기 위해 저랑 같이 식판을 들고 서 있는데 과거 소대원이었던 병사가 김 소령 곁으로 다가오더니 아무리 상급 부대 지시가 있어도 교육장교님 식사는 제가 타 드려야 되겠다고 거의 식판을 빼앗다시피 가져가는 모습을 보고 전 또 한번 초라해질 수밖에 없더군요.
이번 일도 훈련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만, 사실 야외 훈련이란 게 그냥 밖으로 훈련 나가 며칠 천막 생활하고 오면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야외 훈련(FTX) 한번 하려면 참모부의 장교들은 밤․낮없이 야간 작업을 해야만 합니다. 전술 훈련을 나가서 함께 상황 근무를 서고 있는데 언뜻 자기의 속내를 털어 놓더군요. 정보 장교, 나 너무 피곤하다. 정말 좀 자고 싶구나. 사실 나 오늘로 일주일째 한 숨 못 자고 작업하고 있어. 그 간 야간 작업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인줄은 몰랐었습니다. 너무나 성실하고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던 동기생, 저는 지금 전역해서 사회에 나와 있지만, 지금도 잊지 못할 동기생, 아니 앞에서도 말했지만, 존경스러웠던 그리고 지금도 저에게는 하나의 지표로 남아있는 동기생이 그런 사고를 당했다니 가슴이 미어진다는 표현은 너무 상투적이군요. 저는 우리 군과 사회가 김 소령과 같은 분들로 인해서 실질적으로 유지되고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노자 도덕경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不言之敎 天下稀有及之(말하지 않는 가르침, 천하에 이에 이르는 자가 드물게 있구나)라는 구절처럼 김 소령이 보여준 짧은 삶은 저에게는 너무도 존경스러운 것이었고 그의 마지막은 그래서 너무도 그답지만 저는 당분간은 심한 가슴앓이를 해야만 할 듯 하군요. 도덕경의 주석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恃爵而後尊貴者 非實尊貴也 (벼슬에 의지한 연후에 존귀한 자는 실제로 존귀한 자가 아니다)라는 해설이 나옵니다. 정말 고귀한 삶이란 지위가 높거나, 권력을 많이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의 계급은 고작 육두품 소령이었고 그위 권력 또한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더 많은 것을 웅변해 줍니다. 그의 삶과 마지막이 보여준 교훈은 저에게는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아니 뼈에 사무치는 것이었고 그는 자신의 삶 자체로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 특히 지위, 부, 권력에 의지해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준열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김 소령, 많이 좋아했고 존경했다.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너를 생각하며, 너는 나를 떠나지만, 나는 너를 영원히 보낼 수 없다는 詩句를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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