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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이 같은 딸 잘못됐을까 미칠것 같아"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8.06.09 03:38 | 최종수정 2008.06.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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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가족과 33년간 생이별 윤종수씨 北가족과 탈북하다 처·딸은 붙잡혀

1975년 8월 동해상에서 조업 중 납북된 어선 '천왕호'의 선원 윤종수(66)씨가 33년 만에 북한 탈출에 성공했다. 윤씨는 아내(67)와 외동딸(25)을 데리고 '일가족 탈출'을 시도했지만 아내와 딸은 탈북 도중 북한 당국에 체포된 것으로 8일 알려졌다.

↑ 윤종수씨가 지난달 중국 모처에서 북에 남겨진 아내와 딸의 구명을 호소하며 울먹이고 있다. 안준호 기자
윤씨는 지난달 본지가 보도한 납북어부 31명의 사진 속에 포함된 인물이다. 〈본지 5월19일자 A1면 참조〉 그는 납북된 뒤 1976년 6월부터 평안남도 개천군 농기계작업장에 배치돼 2002년까지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지난달 초 혼자 두만강을 건넜으며 5월 20일 중국 내의 한국 공관에 무사히 들어왔다. 납북된 천왕호 선원 33명 중 고명섭(64)씨는 2005년 귀환했고, 최욱일(68)씨와 이한섭(60)씨는 2007년 고향 땅을 밟았다. 윤씨는 무사 귀환하는 네 번째 천왕호 선원이자 여덟 번째 납북 어부가 될 전망이다.

◆처와 딸은 도마에 올려놓은 고기
"내 처와 딸은 이제 도마에 올려놓은 고기입니다. 언제 난도질당할지 몰라요. 제발 살려주세요."

지난달 중국 모처에서 본지 기자와 만난 윤씨는 내내 울먹였다. 북한에서 결혼한 재일동포 출신인 아내와는 두만강을 눈앞에 두고 양강도 혜산에서 헤어졌고, 딸과는 평안남도 개천군 집에서 이별했다.

윤씨가 아내와 함께 개천을 떠난 것은 지난달 1일. 우여곡절 끝에 5월 4일 혜산에 도착했지만 국경 일대에는 이미 윤씨에 대한 수배령이 떨어진 상태였다. 개천에 남은 딸도 무사할 리 없었다. 딸은 일가족이 한꺼번에 집을 비우면 의심을 살까봐 부모부터 탈출시킨 뒤 뒤따라 빠져 나오려고 했었다.

"우리 딸은 삯바느질을 해서 부모 봉양을 한 심청이오. 그런 딸이 잘못됐을 거라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소. 내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오."

딸을 걱정하던 윤씨의 부인은 돌연 탈출을 포기했다. 늙은 아내는 눈물로 윤씨를 떠나 보냈다.

◆사선을 넘어…7시간 산행, 익사 위기
5월 5일 저녁 윤씨는 홀로 혜산을 출발해 해발 2000m가 넘는 험준한 산속을 7시간 넘게 헤맨 끝에 이튿날 새벽 두만강에 도착했다. 강 폭은 10여m밖에 되지 않았지만 물살은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급했다.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지만, 그만 세찬 물살에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다. 몸은 거센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중국쪽 강기슭에 닿기 위해 필사적으로 팔을 허우적댔다. 30여m쯤 흘러내려 왔을까. 물살이 좀 약한 곳에 이르러서야 겨우 발이 땅에 닿았다. 지난달 1일 평안남도 개천에 있는 집을 떠난 지 6일 만이었다.

하지만 탈출에 성공해 남한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과 설렘도 잠시. 윤씨는 북에 남겨둔 처자식 걱정에 다시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늙고 병든 아내와 어린 딸이 어떤 험한 꼴을 당했을지도 모르는데…. 살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어요. 제발 제 처와 딸자식을 살려주세요."

윤씨는 북받쳐 오르는 슬픔에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훔쳤다.
윤씨의 탈북을 도운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와 윤씨의 남측 가족은 9일 서울 중구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윤씨 가족의 무사 귀환을 위해 정부가 노력해줄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는다.

[중국=안용현 기자 [email protected] ]
[안준호 기자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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