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몇 덩이 그것은 희망 이였다. [고향 이야기] [2005-10-13 ]
(www.freenk.net에서 펌)
북한에서 식량배급제를 다시 실시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말대로 식량배급제를 재가동 한다면 배는 채우지 못할지라도 식솔들의 하루 한 끼를 위해 그 땅의 여인들이 흘려야 했던 눈물의 한 줄기만큼은 가셔줄 수 있으리라.
2003년 9월 9일 안주역 광장에 있은 일이다.
40대 중반의 한 여인이 광장 한 쪽에서 단속반원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떡을 팔고 있었다. 떡이라고 해봐야 튀긴 강냉이를 가루 내어 만든 옥수수 떡 몇 개, 비싼 자릿세 때문에 시장에서는 팔 수 없어 이른바 도둑 장사를 하는, 북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던 시골아낙네였다. 그 여인을 중심으로 이른바 메뚜기 시장(단속인원이 나타나면 금방 도망친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속어)이 형성되어 있었다.
장사도 장사지만 단속반원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이심전심 주변을 살피는 아낙네들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이 단속반원들을 거느린 보안원(경찰)이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보안원의 출현에 당황해서 두 눈만 껌벅이는 여인 앞으로 다가간 보안원, 그는 보물단지처럼 여인의 품안에 꼭 안겨있는 떡 바구니를 와락 낚아채더니 신명난 축구선수마냥 허공중으로 차 올렸다.
바구니에서 쏟아져 땅으로 떨어지는 떡 몇 덩이를 바라보며 여인은 으흐흐-하는 호곡 비슷한 소리를 내 질렀다. 그리고는 흙과 범벅이 된 떡을 집으려고 엉금엉금 기어갔다. 하지만 그 보다 훨씬 빠르게 보안원이 다가섰고 인정사정없는 구둣발이 떡을 짓뭉개 버렸다. 울며불며 보안원의 바짓가랑이에 매 달린 여인, 용서를 구하는 줄 알았는데 다가가 보니 짓밟힌 떡 덩이를 떼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용서해 주십시요. 아이들이 굶어 죽게 된 지경이야요. 이거라도 안 가져가믄...” “이 간나새끼. 뭘 잘했다구 지랄이야, 지랄이. 명절날에 나오라는 무도회는 안 나오구 도둑 장사나 하는 년이!? 그리구 뭘 구경할거 있다구 모여들어서 누깔들을 껌벅거리고 있는거야, 어?!”
모여들어서 측은한 눈길로 여인을 바라보는 주변사람들을 향해 꽥 하고 소리를 지르던 보안원, 사람들은 서둘러 발길을 돌려버렸고 보안원과 단속반원들마저 사라져버린 역전 공터에서 여인만이 어깨를 들먹이며 서글프게 울고 있었다... ...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여인은 나와 한 동네에서 자랐고 한 학교를 다녔으며 어른이 되어서도 이따금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절친한 고향 친구의 아내였다. 몇 해 전 영양실조로 죽은 남편을 대신해 세 자식을 먹여 살리겠다고 장사에 나섰던 몸인데 그 험한 꼴을 당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식들을 먹여 살릴까 궁리하다가 시집올 때 해가지고 왔던 첫날 이불의 솜을 뽑아 시장에 내다 팔고, 그것을 밑천으로 강냉이 떡 장사에 나선 것인데...자식들을 먹여 살리려던 그 가냘픈 꿈과 희망이 보안원의 구둣발에 무참히 짓밟힌 것이였다. 제 가족도 돌보기 힘든 세상에 누굴 위해 나서겠냐고 애써 외면했던 친구의 아내, 그 여인이 지금 “너는 무엇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냐고 자꾸만 묻는 것 같다.
[박봉수, 2004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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